주간동아 550

2006.08.29

미국, Great 서 Good으로 가는가

지식인들 국가적 쇠퇴에 잇단 경고 … 정부 늑장 정책, BRICs 성장 ‘위기 요인’ 꼽아

  • 보스턴=선대인 통신원 battiman@daumcorp.com

    입력2006-08-23 1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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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Great 서  Good으로 가는가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짐 콜린스.

    달도 차면 기울 듯, 인류 역사는 각 나라의 국운 또한 차고 기운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현대판 제국’ 미국도 예외일 수는 없는 모양이다. 겉으로는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는 듯하지만, 미국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미국 쇠퇴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위기의식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의 저자이자 저명한 경영학자인 짐 콜린스의 경고다. 그는 6월 하버드 케네디스쿨 공공리더십센터의 초청으로 케네디스쿨에서 강연을 했다. 강연 내용은 공공영역에서 ‘Good to Great’의 내용을 어떻게 적용할지에 관한 것.

    콜린스는 강연 말미에 “오늘날 우리가 국내에서 마주하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미국이 지금 위대한 상태에서 괜찮은 상태(Great to Good)’로 가는 언저리에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단순히 현 정부의 집권기간을 넘어 최근 몇십 년 동안 우리는 공민으로서의 리더십과 팔로워십(followership)의 부족을 경험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숭고한 지위를 위협하는 요인이 아닌지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공민으로서 리더십과 팔로워십 부족 경험”

    이에 리더십 연구의 권위자인 케네디스쿨 데이비드 거겐 교수가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콜린스는 “아직 확신할 단계는 아니지만 내가 모으고 있는 여러 데이터를 보면 그런 징후가 엿보인다”면서 “구체적인 내용은 데이터가 좀더 명확해진 다음 밝히겠다”며 말을 아꼈다.



    그런데 그의 강연에 유추할 만한 힌트가 숨겨 있었다. 그는 “위대한 기업이나 조직이 그렇게 된 이유와 관련해 우리는 리더의 중요성만을 강조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산에 오를 때는 함께하는 동료가 있기에 오를 수 있다”면서 팀으로서의 ‘단계 5의 리더십’을 강조했다. 콜린스는 책에 “위대한 기업에는 중대한 전환기에 단계 5의 리더십을 지닌 경영자가 있었다”고 썼다(이러한 경영자들의 특징은 언뜻 상반돼 보이는 덕목인 개인적 겸양과 강렬한 직업적 의지를 겸비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성과를 일궈낸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콜린스는 “강한 권한을 가진 잘못된 리더는 한 기업을 망칠 수 있다. 이는 정부나 공공조직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콜린스의 말이 인상 깊었는지 거겐 교수는 6월 말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리포트’지에 ‘Great to Good?’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는 이 글에서 “지금 정치권의 눈은 부시 대통령의 부침에 붙박여 있지만, 엄혹한 현실은 이 나라의 정치권이 우리를 짓누르는 중요한 문제들을 다루는 데 거의 기능 장애 수준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에너지 정책부터 교육, 지구온난화, 건강보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분야에서 위험할 정도로 진전이 느리다”면서 “시간은 결코 우리 편이 아니다”라고 걱정했다.

    하버드대학의 저명한 노동경제학자 리처드 프리먼 교수도 거겐 교수와 같은 맥락의 진단을 했다. 프리먼 교수는 “중국과 인도, 러시아 등의 브릭스(BRICs) 국가들이 향후 가져올 충격을 미국이 직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프리먼 교수에 따르면 이들 국가의 세계시장 편입과 성장으로 인해 세계는 역사상 전례 없는 두 가지 전환을 겪고 있다. 첫째는 20세기 말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던 노동인구가 15억명이었다면, 21세기는 그 두 배인 30억명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 둘째는 이들 세 나라가 과거 일본과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과학, 공학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미국의 박사 배출 인력이 1970년에 전 세계의 50% 수준이었지만 2010년경에는 15%로 떨어질 것”이라며 “중국, 인도, 러시아가 교육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미국이 쉽게 우위를 지켜갈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우려했다.



    사실 이 같은 위기감은 꽤 널리 확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쓴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도 이 같은 위기의식의 산물이다. 그는 이 책에서 “낮아진 무역장벽과 디지털 기술 혁명의 영향으로 수십억 인구가 지구 건너편 사람들과 동시에 접속할 수 있게 됨으로써 세계 곳곳의 경쟁 조건이 매우 빠른 속도로 동일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따라서 미국이 교육과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를 혁신하지 않는다면, 몇십 년 전 굶주림을 걱정했던 다른 나라 젊은이들이 ‘우리’ 아이들의 빵을 빼앗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이 책이 2005년 4월 출간된 이래 계속해서 ‘뉴욕타임스’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위기의식이 큰 공감대를 형성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비즈니스위크’ 등 시사지들이 올 들어 비슷한 주제의 특집을 심심찮게 내놓는 이유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다.

    눈길을 돌려 국내를 보면 어떨까. 20세기를 일제 식민지로 시작한 나라가 세계 11위의 교역국이 되고, 시민의 힘으로 민주화를 성취했다는 점에서 우리의 도약은 눈부시다. 하지만 ‘위대한 국가’나 심지어 ‘좋은 국가’에 이르기도 전에 지속적인 도약에 실패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현 정권 차원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관(官) 주도의 개발경제에서 첨단기술과 지식경제 시대로 옮겨가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지만, 진전은 더디기만 하다. 평지를 달릴 때 사용하던 기어를 변속하지 않은 채 오르막을 오르는 느낌이다.

    청와대는 세계 흐름에 발맞춰 정부 구조를 혁신해야 하지만, 소리만 요란한 ‘정부 혁신’에 안주해 있는 느낌이다. 정치권 역시 주택, 교육, 육아, 일자리, 사회복지 등 삶의 문제는 밀쳐두고 시대착오적인 이념 논쟁과 상대방 흠집내기에 중독돼 있다. 정부 관료들은 체질화된 관료주의를 털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리더들과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해야 할 팔로워(follower)로서의 국민은 정치권과 언론의 이간질에 분열된 상태다.

    거겐 교수는 “위대함은 쉽게 보존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각 세대마다 새롭게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초경쟁적(hypercompetitive)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앞에 놓인 질문은 현재 권력을 쥔 기성세대가 필요한 자질을 갖추고 있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에게도 절실한 질문이다. 한국의 기성세대는 ‘위대한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자질과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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