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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에 방사선 쬐면 식중독 원천차단?

원자력 硏 , 단체급식 식자재에 추진 논란 … 안전성 OK, 실현까지는 걸림돌 많아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식품에 방사선 쬐면 식중독 원천차단?

식품에 방사선 쬐면 식중독 원천차단?

6월28일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급식재료를 점검하는 서울시학교보건진흥원 관계자와 학부모들(좌).
6월 집단 식중독 사고로 학교 보건실에 누워 있는 학생들(우).

과학기술부 산하 한국원자력연구소가 최근 단체급식 식자재에 대한 방사선 조사(照射)를 추진하면서 조사 식품의 안전성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 방사선 조사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과학기술부, 식품의약품안전청, 교육인적자원부 등 관계부처 및 기관이 협의체를 구성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지만, 취재 결과 이는 와전된 것으로 확인됐다.

과기부 방사선안전과 관계자는 “방사선 조사 허용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식약청에 있다. 7월24일 관계부처 실무자들이 한 차례 논의한 적은 있지만, 별도의 협의체를 꾸릴 계획이 잡힌 건 아니다”며 난감한 심경을 털어놨다. 식약청의 한 관계자 역시 “협의체 구성을 운위한 건 일방적 보도”라며 “단체급식 식자재에 대한 방사선 조사가 언제 허용될지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결국 이번 논란은 원자력연구소 측이 전담 연구기관의 입장에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데서 비롯된 해프닝인 셈이다.

알려진 대로, 원자력연구소가 ‘방사선 식품 조사(Food Irradiation)’ 문제를 제기하게 된 계기는 6월 발생한 사상 최악의 학교급식 식중독 사고다. 원자력연구소는 이미 6월28일 단체급식 안전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식중독 유발 위험이 높은 축육·수산 제품에 방사선 조사를 하는 것이 대안일 수 있다는 의견을 적극 개진했다.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된 노로바이러스는 물론 O-157, 살모넬라 같은 균도 쉽게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감마선 쪼여 식품 멸균 처리



원자력연구소는 1995년부터 2001년까지는 식육류,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가공식품류에 대한 방사선 조사 기술을 자체 개발했고, 그 연구결과에 대한 특허까지 등록한 상태다.

방사선 식품 조사는 식품이나 식재료를 본래 상태에 가깝게 보존하거나 품질 및 위생을 개선할 목적으로 방사선에 일정 시간 노출시킴으로써 살균, 살충, 발아 억제 등을 유도하는 신(新)식품처리기술. 방사선이 지닌 강력한 투과력은 포장된 식품의 살균 처리를 가능하게 하고, 가열 등 기존의 방법과 달리 식품의 영양 파괴나 외관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

식품에 방사선 쬐면 식중독 원천차단?
그렇다면 방사선을 쬔 식품은 과연 안전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견해가 압도적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방사선(radiation)’과 ‘방사능(radioactivity)’을 혼동한다. 원전 사고 등을 떠올리며 ‘방사선 조사’를 ‘방사능 오염’쯤으로 여긴다. 방사선 조사 식품에 대한 불안과 불신도 여기서 비롯된다. 그러나 조사한 방사선이 식품에 남아 방사능 오염이 발생할 위험성은 전혀 없다.”

원자력연구소 변명우 방사선이용연구부장은 “방사선을 쬔 식품이 유전독성학적으로 유해한 물질로 변할 수 있지 않느냐는 의심과 관련해 동물과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문제가 없는 것으로 입증됐다”며 잘라 말한다.

방사능은 불안정한 일부 원소의 핵이 붕괴돼 다른 안정된 원자핵으로 변환되는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분출되는 것이 방사선. 알파(α), 베타(β), 감마(γ)선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식품 조사에 사용되는 방사선 동위원소인 Co(코발트)-60이나 Cs(세슘)-137은 방출 에너지가 적어 방사선량에 상관없이 어떤 방사능도 유출하지 않는다고 한다.

식품 조사에 주로 쓰이는 것은 감마선. 국내 식품공전에서 허용한 방사선의 최대치는 10kGy[Gy(그레이·gray)는 방사선 조사선량의 단위]다. 물론 이 정도의 조사선량이라도 직접 조사될 경우 사람이나 동물이 즉사할 수 있다. 하지만 방사선을 쬔 식품엔 방사능이 잔류하지 않기 때문에 해당 식품을 섭취해도 인체엔 해가 없다. 180~200℃의 기름에 튀겼다고 해서 튀김이 그만한 에너지를 유지하는 것은 아닌 점과 비슷한 이치다. 방사선을 조사해도 온도 상승은 2.4℃(물을 기준으로 했을 때)에 불과해 조사 식품의 단백질, 탄수화물 같은 영양소의 손실은 없다.

실제로 1990년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식량농업기구(FAO), 국제원자력기구(IAEA) 방사선 조사 식품 안전성 평가 공동전문가위원회는 평균 10kGy 이하의 방사선에 조사된 식품은 독성학적 장해를 일으키지 않고, 독성 실험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으며, 영양학적·미생물학적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때문인지, 원자력연구소가 2000년 9월 냉동·냉장 육류 및 축산물 가공품의 방사선 조사 허가를 신청한 이후 2004년 식약청 심의과정에서 ‘국민 정서’에 맞지 않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누락될 때까지 줄곧 반대 입장을 표명하던 소비자 단체들의 반발도 지금은 많이 약해졌다.

그렇지만, 설령 단체급식 식자재의 방사선 조사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식중독 사고를 100% 원천차단하기란 불가능하다. 축육·수산 제품 이외의 모든 식자재에 방사선 조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방사선을 쪼일 수 없는 식품도 있다. 예컨대, 우유처럼 지방 성분이 많은 식품은 방사선을 조사하면 산패한다. 날달걀의 경우 방사선을 쏘아 에너지를 가하면 노른자위가 물러진다. 결국 방사선은 식중독 근절을 위한 ‘마법의 빛’이 되진 못한다는 뜻이다. 좀더 근본적으로는 식중독 발생이 오염된 식품을 취급하는 사람들의 ‘위생관념’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녹색소비자연대 조윤미 상임위원은 “방사선 조사 식품의 안전성에 대해선 국내외 전문가들의 과학적 판단이 나와 있고, 방사선 조사가 약품이나 가스 등을 사용하는 다른 멸균 방식보다 뛰어난 선진 기술인 만큼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조 위원은 “만의 하나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위해가 새롭게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추후 그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리기 위해서나 소비자의 알 권리와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유럽연합(EU)처럼 방사선 조사 여부를 반드시 식품에 표시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식품에 방사선 쬐면 식중독 원천차단?

미국의 슈퍼마켓에서 팔리고 있는 방사선 조사 식육과 가공품들.

식중독 100% 근절은 불가능

현재 국내에선 식품위생법에 따라 방사선 조사 식품의 포장이나 용기에 직경 5cm 이상의 조사 마크를 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완제품에만 해당한다. 표시제가 엄격히 시행되지 않으면 소비자는 어떤 식품에 어느 정도의 방사선이 조사됐는지 알 도리가 없다.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식품의 방사선 조사 여부조차 알 수 없는 것이다.

방사선 조사에 대한 유관 업체의 참여도가 낮을 우려 또한 없지 않다. 식품에 대한 방사선 조사는 2005년 현재 세계 52개국에서 250여 품목에 이뤄지고 있다. 식중독균 제거, 곰팡이 및 해충 방제 등이 목적이다. 국내에서 방사선 조사가 허가된 식품은 감자, 마늘, 된장, 고추장, 건조 채소류 등 26종. 하지만 실제 방사선을 쬐는 품목은 건조 채소류 등에 국한된다. 그나마도 검역상 방사선 조사가 불가피한 수출 상품이 대다수다. 감자, 마늘, 양파, 밤 등 발아 억제를 위한 품목엔 방사선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는 방사선 조사에 상품 가격의 약 1%에 달하는 추가 비용이 발생해 제품 단가가 올라가므로 해당 업자들이 꺼리기 때문. 국내엔 현재 2개의 식품 방사선 처리 업체가 있지만, 방사선 조사가 허용된 식품의 국내 소비량을 모두 조사 처리하려면 최소한 5개 업체가 더 필요하다. 원자력연구소가 보유한 2개의 방사선 조사 시설은 자체 연구용이다.

방사선 조사는 식중독 사고의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한때 논란의 대상으로 떠올랐다가 막상 시판된 이후엔 수많은 소비자들의 기억에서 잊힌 유전자변형식품(GMO)의 전철을 밟게 될까.



주간동아 2006.08.29 550호 (p26~27)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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