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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파주 개벽’

초라한 군인동네 간 곳 없고 첨단 신도시 ‘화려한 변신’

남북 정상회담 후 거센 변화 바람 … 대기업 속속 입주, 도시 규모 자고 나면 커져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초라한 군인동네 간 곳 없고 첨단 신도시 ‘화려한 변신’

초라한 군인동네 간 곳 없고 첨단 신도시 ‘화려한 변신’

파주시 청사가 소재한 금촌 1, 2동 전경. 90년대 후반의 모습(우)과 천양지차다.

불과 10년 6개월 전만 해도 파주시는 없었다. 1996년 3월1일 시로 승격되기 전까지 파주군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군 내의 읍이나 면 단위 동네라고 해봤자 인적 드문 조그마한 농촌이나 미군 기지촌이 고작이었다.

경기 북서부 휴전선 접경지역인 파주는 ‘DMZ’ ‘임진각’ ‘땅굴’ 등으로 더 유명했다. 개발이나 발전과는 거리가 먼 땅으로, 남북 분단의 긴장 속에서 거의 전 지역이 군사지역으로 묶인 채 오랜 세월 방치되고 소외돼왔다. 마치 쓸모없어 버려둔 ‘유물(留物)’처럼.

“마을에 외지 사람이라고는 군인밖에 없었어요. 도로를 오가는 차들도 군용 지프나 트럭뿐이었죠. 군인들이 지역경제를 먹여살렸어요. 훈련이 있는 날엔 가게들이 개점휴업을 한 것 같았으니까요.”

파주시청 앞에서 만난 한 시민의 10년 전 파주에 대한 기억이다. 하지만 지금 파주는 과거와는 전혀 다르다. 완전히 탈바꿈했다. ‘대명천지(大明天地)’에 이만한 ‘개벽(開闢)’이 없을 법하다.

자유로나 통일로를 따라 일산을 거쳐 파주시 초입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G·G PAJU’라는 표기에서부터 변화의 바람이 느껴진다. G·G는 파주시가 이미지 통합(CI)을 위해 만든 로고로 ‘Good and Great’의 약자다.



초라한 군인동네 간 곳 없고 첨단 신도시 ‘화려한 변신’
파주시 이근 G·G 팀장은 “변화와 경쟁을 통해 살기 좋고 위대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의지이자 비전 제시”라고 강조했다. 이 팀장의 이어지는 설명이다.

“파주시의 면적은 672.6km2로 서울과 안양을 합친 정도의 크기다. 서울과 인천공항에서 가까워 지리적 이점이 충분한데도 그동안 개발되지 못한 이유는 냉전시기의 위기감으로 인해 어느 누구도 휴전선 일대에 쉽게 투자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머지않아 대한민국 대표도시가 될 것이다.”

인구 10년 새 11만명 늘어 총 28만여 명

시내로 들어서면 변화의 모습은 한눈에 들어온다. 8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벼가 여물어가는 논과 짙푸른 산 중간 중간에 벼락같이 들어선 대규모 아파트 군락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진다. 아파트 한쪽에서는 이삿짐을 나르는 지게차 리프트가 부산하게 오르내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파트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논과 밭은 그렇게 조금씩 도심에 편입되어가고 있었다.

초라한 군인동네 간 곳 없고 첨단 신도시 ‘화려한 변신’

올해 1월부터 가동 중인 LG-Philips LCD 공장(좌). 대단위 산업단지의 배후도시로 개발 중인 파주운정 신도시에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현재 개발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 중인 곳은 교하읍 ‘파주운정신도시’ 조성사업 지구. 1, 2단계로 나눠서 진행 중인 개발면적은 1단계 142만평, 2단계 143만평 등 모두 285만평에 달한다. 입주세대는 모두 4만6000세대. 시는 이곳에 12만5000명 정도의 인구가 입주할 것으로 추산하며, 아파트 입주 예정 시기는 2008년 12월부터다. 이전부터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8888가구 2만6664명을 합하면 5만4888가구, 인구 15만1600여 명 규모의 거대 신도시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파주시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1996년 17만2000명이었던 파주시 인구는 올해 7월31일 현재 28만2400명으로, 10년 사이에 11만명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최근 5년간 인구가 줄어든 다른 지방 지자체와 달리 매년 1~2만명씩 꾸준히 증가한 사실이다. 파주시는 이런 추세를 감안해 2008년 인구 수는 32만2000여 명, 운정신도시 아파트 입주가 완료되는 2009년 말에는 45만여 명으로 급증하리라 예상하고 있다.

파주시 곳곳에서는 도로 확장이나 포장공사, 도로 개설공사도 한창이다. 도로망은 도시 개발규모나 범위를 결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건설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2004년 일반국도와 지방도 시·군도를 포함해 394km였던 파주 시내 도로의 총 길이가 올해 42km 정도 늘어나 436km가 될 예정이다.

LCD 클러스터 영향 시내 공장용지 7년 새 두 배로

파주시의 변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이끌고 있는 것은 새롭게 조성 중인 대규모 LCD 클러스터(cluster). 파주시 월롱면에 50만평 규모로 건설 중인 파주 LG-Philips LCD(이하 LPL) 산업단지를 포함해 문산 LCD 협력단지 60만평, 문산 LG계열사 단지 30만평 등 모두 140만평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연구개발 생산지구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2004년 3월부터 시작된 대규모 공사는 올해 1월 LPL 산업단지에 14만평 규모의 ‘7세대 TFT-LCD 대형패널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1단계 공사를 마친 상태다.

2012년까지 투입될 공사 비용은 자그마치 27조원. 공사가 완료되면 LPL 단지 2만5000명, 협력단지 1만명, LG계열사 7000명 등 모두 4만2000명이 근무할 예정이다.

LCD 클러스터 개발은 관련 기업들을 파주시로 이전시키는 파급효과까지 낳으며 시 전역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 결과 1999년 375만㎡였던 시내 공장용지가 올해 7월 말 현재 710만㎡로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와 도로, 공장이 하드웨어적인 변화를 이끌었다면 영어마을과 북 시티, 헤이리 예술인마을 등은 소프트웨어적인 변화를 이끈 주역으로, 파주시의 이미지 변신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즉, 파주시가 군사도시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고 교육과 문화, 예술의 도시로 탈바꿈한 것이다.

파주시의 이 같은 파격적인 변화에 가장 민감한 사람은 자영업자들이다. 올해로 5년째 대형냉면집을 운영하는 심모 씨는 “다른 지역은 경기가 별로 좋지 않다는데 여기는 그나마 괜찮다”면서 “신도시와 공단 주변에 음식점들이 많이 생겨서 경쟁은 치열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파주시의 변화는 언제부터 시작됐고, 그 배경은 무엇일까. 1975년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올해로 31년째 파주시청에서 근무하는 박재홍 기획재정국장은 파주시의 산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국장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도라산역이 생기고 경의선 철도가 연결되어 남북간 긴장이 완화되면서 파주시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전까지 투자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모토로라나 LPL 같은 대기업들이 파주시에 공장 신축을 결정하고 대규모 아파트단지들이 들어서면서 급격한 변화가 촉발됐다”고 말했다.

자연스레 시 연간 예산도 크게 늘었다. 올해 예산은 4861억8000여 만원으로 80년대 초반에 비해 10배 이상 급증했으며, 2001년 예산 2210여 억원과 비교해도 두 배 이상 증가한 액수다.

“LCD 공단이 들어서면서 요즘 러시아워가 생겼다. 3~4년 전만 해도 통일로와 자유로가 막히는 일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주말에는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로 인해 도로가 막힌다. 신도시 개발로 신흥부자들이 많이 생겨서 고급 외제차도 눈에 띄게 늘었다.” 박 국장이 요즘 피부로 느끼는 변화다.

급격한 변화는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 요즘 파주시는 땅값이 너무 올라 공공사업이 많이 힘들어졌다. 땅을 매입하기가 쉽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이는 부동산 투기꾼들이 몰려든 것과 무관치 않다.

파주읍 봉암1, 2리 이희걸 이장은 “이 지역에 대학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서울의 부동산업자들이 몰려들어 평당 10만원도 안 되던 땅이 30만~40만원까지 치솟았다”면서 “이제 주민들이 갖고 있는 땅은 20%도 채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급격한 개발로 땅값 급등 등 부작용도

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개발에 따른 땅값 상승은 자연스럽고 어쩔 수 없는 결과”라면서 “대규모 공단이 들어서고 학교와 연구원 등 다양한 시설이 늘어나면 세입도 확대되는 만큼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파트단지와 산업단지가 대규모로 조성돼 논과 밭이 줄면서 도시의 자족기능이 떨어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해 시는 벼농사를 할 때 제초제를 뿌리지 않도록 함으로써 쌀을 특화하는 대안을 마련한 상태다.

이 이장은 “제초제를 뿌리면 시에서 수매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농민들이 시의 정책을 따르고 있다”면서 “우리도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어서 힘이 들긴 하지만 별다른 불만은 없다”고 말했다.

파주시의 변화와 이에 따른 시 정책은 각종 평가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파주시는 행정자치부 주관 ‘2005 전국시군구 민원행정추진상황종합평가’ 대상(대통령상), 경기도 주관 ‘2006 춘계 도로정비 심사’ 도농복합시 부분 1위 등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20여 개의 상을 받았다. 또 파주시를 벤치마킹하기 위한 교육인적자원부, 행정자치부, 보건복지부 등 정부부처와 전국의 지자체 공무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환경 친화적인 남북교류협력의 거점도시, 첨단 디스플레이산업과 문화예술이 공존하는 2025년의 미래 도시를 향해 파주시는 현재 순항 중이다.

단골 물난리 오명 어떻게 벗었나

수년간 수해방지 시스템 구축 ‘드디어 결실’


초라한 군인동네 간 곳 없고 첨단 신도시 ‘화려한 변신’

1996년 경기 북부지역에 쏟아진 폭우로 침수된 파주시 문산 읍내 문산역 일대.

파주시는 지리적 여건상 상습 침수지역일 수밖에 없다. 한강과 임진강 상류를 포함한 중부지역에 폭우가 쏟아질 경우, 임진강을 타고 넘실대며 서해로 흐르는 물줄기가 한강과 부딪히면 갈 곳은 지대가 낮은 파주뿐이다. 상류에서 밀려 내려온 빗물로 가득 찬 한강에 임진강의 물줄기가 끼어들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대로가 막히면 지선의 정체가 더욱 극심해지는 이치다. 여기에 서해의 만조가 겹치면 최악의 상황이 된다. 삼재(三災)가 겹치는 셈이다.

1996년과 98년, 99년 3년 연속 파주는 이 삼재가 겹쳐 큰 수해를 입었다. 35명이 사망하고 1787억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하지만 그 이후 파주에서는 수해가 사라졌다. 7월11일부터 20일까지 열흘간 중부지역에 740mm가 넘는 집중호우가 쏟아졌지만 파주시에서는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예전 같으면 물에 잠겼을 법한 호우였다. 이는 철저한 수해방지 시스템 구축의 결과다.

시는 그동안 저지대 주택침수를 막기 위해 3300억원의 예산을 들여 50개소의 배수펌프장을 만들었다. 전국 지자체 가운데 배수펌프장 수가 가장 많다. 시는 또 매년 거액의 예산을 들여 임진강 하류에서부터 제방을 축조하고 하천 바닥의 퇴적물을 제거하는 등 하천 정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정비 구간 356km 중 36km를 제외한 전 구간의 정비가 끝난 상태로, 개수율이 90%에 육박한다.

또한 현장에 가지 않고도 과학적인 수해 예방이 가능하도록 수위관측기와 CCTV 등 최첨단 시스템을 재해 취약지와 교량 및 방재시설물 등에 설치했다. 재난안전대책상황실 관계자들은 이를 통해 즉각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대응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시 재난관리과 사무실은 24시간 언제든지 상황실로 전환이 가능하도록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시가 마련한 이 같은 대책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7월 폭우 때 수해를 당하지 않은 것에 대한 언론의 대대적인 호평이 부담스러운 이유다. 파주시 재난관리과 안배옥 과장은 “수해는 일시적인 사업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랜 시간과 장기적인 투자를 통해 최소화할 수 있을 뿐”이라면서 “더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 과장이 주장하는 근본적인 대책은 두 가지다. 임진강 하류의 수계를 북한의 영향에서 벗어나 남한 자체적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한탄강 댐을 건설하는 것과 서해로 물이 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한강하구 준설작업을 하는 것. 댐 건설은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지만 한강하구 준설작업은 남북간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현재 댐 건설은 국무조정실에서 타당성을 검토해 8월 말까지 결론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한강하구 준설사업은 12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합의했지만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아직 착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주간동아 2006.08.29 550호 (p32~35)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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