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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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라이벌 ‘애증의 두 남자’

노무현-김근태 냉탕 온탕 오간 17년 … 임기 말 서로 각 세우며 도전과 응전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6-08-21 11: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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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과 라이벌 ‘애증의 두 남자’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이 청와대를 찾기 전인 8월 초, 김 의장과 참모들이 서울 여의도 한 사무실에 모였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언급할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만나자마자 이병완 비서실장과 박남춘 인사수석을 자르라고 얘기하십시오.”

    참모들은 당·청 4자 회동 등에서 논의한 내용이 청와대에 전달되지 않고 대통령에게 두 번이나 면담 요청을 했는데도 무시당한 배경에 두 사람이 있다고 보고 초강경 인사를 요구한 것. 또 다른 참모가 말을 꺼냈다.

    “대통령이 문재인 카드를 뽑아들면 ‘탈당하겠다’고 강경하게 맞서십시오.”

    대통령의 인사권에 도전하라는 주문이었다. 김 의장은 말 없이 참모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8월6일 청와대 오찬장. 김 의장과 노무현 대통령이 마주 앉았다. 알려진 대로 노 대통령이 분위기를 압도하며 선공에 나섰다.

    “대통령 한번 해보려고 대통령을 때려서 잘된 사람은 하나도 못 봤다.”

    예상치 못한 초강수였다. “외부에서 좋은 선장이 탈 수도 있다”는 말도 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지금 열린우리당에는 좋은 선장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명색이 여당의 차기 대권주자인 김 의장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준 것이다.

    이 발언을 전해 들은 김 의장 참모들은 “노 대통령이 작심하고 김 의장을 깼다”며 울분을 토했다. 언론의 관전평도 이와 별반 차이가 없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노 대통령이 김 의장을 직공(直攻)했을까.

    청와대 측은 김 의장이 ‘의도적으로’ 청와대에 각을 세운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인사권에 도전하고, 일방적으로 정책(뉴딜)을 추진하는 것 등에 대해 청와대 측은 매우 민감하다. 대통령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본다. 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도전과 응전론으로 관전평을 대신한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대해 청와대는 김 의장의 도전으로 인식한 듯하다. 불쾌하다는 반응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노 대통령이 작심하고 응전한 것 같다.”

    임기 말 권력투쟁이란 지적이다. 권력의 생리로 보면 있을 수 있는 현상이다. 한편으로는 17여 년에 걸친 두 사람의 애증(愛憎)사도 거론된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때는 1989년 3월. 한 여성지가 마련한 시국대담 자리에서였다. 이 자리에서 5공 청문회 스타였던 노 대통령은 재야의 대부였던 김 의장에게 “평소 연모해왔다”며 호의적인 감정을 표현했다. 이 만남 후 두 사람은 진보와 개혁의 축으로 서로를 깍듯하게 대하며 10년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권력은 나눌 수 없다’고 했던가. 이들은 각자의 정치적 비중이 커지면서 적잖은 갈등을 보였다.

    “서로 인정하기 어려운 사이”

    권력과 라이벌 ‘애증의 두 남자’

    8월16일 노무현 대통령(오른쪽)이 김근태 의장(왼쪽)과 오찬회동을 마친 뒤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02년 대선을 1년여 앞둔 2001년 여름, 민주당 내 잠룡들이 저마다 고개를 들자 두 인사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정체성과 지지성향이 비슷한 두 인사는 당내 재야파와 운동권 출신 인사들에게서 ‘후보단일화에 나서라’는 요청을 받았다. 고민하던 노 대통령이 김 의장을 찾아가 “국민 지지율로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한때 “우리 두 사람이라면 가위바위보로 대선후보를 정할 수 있을 것 같다”던 노 대통령이 대중성을 들고 나온 것. 김 의장은 노 대통령의 이 제의에 동의하지 않았다. ‘민주화 과정에서의 역할과 상징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대화는 겉돌았고 후보단일화는 실패했다. 이후 두 사람은 수시로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2002년 6월, 노풍(盧風)이 스러지자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 노 대통령이 김 의장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우군이 없다. 도와달라.”

    김 의장은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9월경 노 대통령이 “선대본부장직을 맡아달라”며 두 번째 청을 넣었지만 김 의장은 묵묵부답이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여전히 편치 않았다. 2004년 4월, 장관 자리를 놓고 갈등을 빚기도 했으며, ‘계급장을 떼고 붙자’는 격한 말도 나왔다. 두 사람은 왜 이렇게 부딪쳤을까.

    열린우리당 한 관계자는 두 인사의 독특한 캐릭터에서 그 배경을 찾는다. 그는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서로를 인정하기 어려운 사이”라고 말한다. 일종의 라이벌 의식 때문이다. 원칙이 서면 충돌마저 피하지 않는 강직한 성격도 강강(强强) 대결의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두 사람은 서로의 가치관, 정치적 역량 등에 대한 평가를 달리한다. 노 대통령 측은 김 의장의 리더십에 의문을 표하는 경우가 많다. 결정적 시기에 좌고우면하는 햄릿형에 가깝다는 것. 또한 김 의장은 원칙을 꺾지 않고 살아온 과거에 스스로 자부심을 갖지만 노 대통령 측은 이를 ‘운동권 순혈주의’로 본다.

    김 의장 측은 노 대통령의 삶의 행적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린다. 검증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주장이다. 김 의장은 노 대통령의 2002년 경선 통과를 ‘강남의 벼락부자’로 보는 것 같다.

    열린우리당의 대주주로, 집권당 의장으로 자리잡은 요즘에도 이런 불신은 걷히지 않는다. 두 사람은 전화통화를 포함한 대화와 회동 자체가 극히 드물다. 대화를 하더라도 언론이나 제삼자 등 메신저를 내세운다. 김 의장이 6월16일 당 의장에 당선된 이후 노 대통령과 독대한 것은 한 번뿐이다. 독대를 하더라도 대화가 겉도는 경우가 많다.

    정면 충돌 ‘뇌관’ 아직도 많아

    이를 알 수 있는 사례 한 토막. 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내정을 앞둔 6월29일, 노 대통령을 만나고 온 김 의장은 오후 9시 측근들을 불러놓고 노 대통령과의 대화 내용을 설명했다.

    “(교육부총리에) 김병준은 아닌 것 같다. 권오규와 문재인은 맞는 것 같다. 권오규는 경제 쪽인데 문은 어느 쪽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김병준이 아니니 다행 아니냐.”

    그러나 7월3일 청와대는 김병준 교육부총리 내정 사실을 발표했다. 김 의장은 언론 보도가 나올 때까지 개각 내용을 몰랐다고 한다. 참모들은 김 의장에게 “청와대에 항의 전화를 하라”고 건의했다. 그러나 그 전화를 받은 사람은 노 대통령이 아니라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이었다.

    김 의장은 김 부총리가 사퇴하는 과정에서도 철저하게 ‘왕따’를 당했다. 김 의장은 8월2일 오전 10시 김 부총리가 사퇴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순간까지도 김 부총리의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이런 상황을 감지한 김 의장 측에서 불만이 없을 리 없다. “두 번 다시 청와대에 가지 말라”거나 결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김 의장은 “아직 때가 아니다”라며 이들을 말렸다.

    과거 두 사람을 갈라놓은 것은 감정과 앙금이 내재한 신경전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경쟁의 성격이 달라진다. 정치 일정상 현재의 권력과 미래의 권력이 진검을 들고 본격적으로 대결할 수밖에 없다.

    당과 청와대가 갈 길이 다르다는 점에서 비극은 시작된다. 열린우리당과 김 의장은 ‘정권 재창출’이 당면 과제요, 목표다. 이를 위해 민심을 수용하는 정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김 의장이 뉴딜 정책에 매달리는 이유다.

    반면 노 대통령은 레임덕을 방지해야 한다. 좀더 욕심을 낸다면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기 위한 기반을 확보하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자면 정치 개혁과 경제 체질개선의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국민들로서는 피곤한 길이다.

    당분간 두 사람은 경쟁과 대립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그렇다고 정면 충돌이나 탈당 같은 극단적 방법을 선택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 그러나 ‘뇌관’은 많다. 김 의장이 꺼내든 ‘뉴딜’에서부터 8·15 재벌총수 사면 문제 등 민감한 현안은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두 사람은 2001년 “우리 둘은 언제나 함께 간다. DJ와 YS처럼 분열의 길은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현재의 권력과 미래의 권력이 펼치는 도전과 응전을 지켜본 사람들은 이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18년 애증사는 이제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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