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7

2006.08.08

“아나운서 이미지 훼손” vs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

  • 배국남 마이데일리 대중문화 전문기자 knbae24@hanmail.net

    입력2006-08-02 18: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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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운서 이미지 훼손” vs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
    SBS 뉴스 프로그램 ‘생방송 모닝 와이드’를 진행하고 있는 김주희 아나운서(사진)의 미스 유니버스 참가를 두고 아나운서의 위상에 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누리꾼(네티즌)과 시청자들은 비판론과 옹호론으로 나뉘어 인터넷상에서 격론을 벌일 정도다.

    논란은 MBC 성경환 아나운서국장의 입에서 시작됐다. 성 국장은 최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김주희 아나운서의 (미인대회) 출전은 아나운서의 이미지 문제다.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로서 선정적인 장면이 예상되는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나가는 것은 심각하게 고려했어야 한다. 뉴스의 신뢰성과 앵커의 선정성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아나운서들이 지키고자 하는 이미지에 걸맞지 않은 이미지를 형성할 우려가 있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SBS의 입장은 좀 다른 것 같다. 성 국장의 발언이 보도된 직후 SBS 아나운서국 박영만 팀장은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도 (성 국장) 기사를 봤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이다. 아나운서의 위상을 그런 식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동종업계에 있다는 것이 더 답답하다”고 반박하면서 논란을 증폭시켰다.

    김주희 아나운서의 미인대회 참가 논란은 아나운서들의 오락 프로그램, 시트콤, 드라마 출연이 가져왔던 정체성, 역할 논란과도 맥을 같이한다. KBS 강수정 아나운서가 오락 프로그램 ‘해피 선데이’의 한 코너인‘여걸 식스’에 출연하는 것이나 같은 방송국의 노현정 아나운서가 예능 프로그램인 ‘상상플러스’에 출연하는 것 등은 방송계 내에서뿐 아니라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을 불러온 바 있다. 이 논란은 ‘아나운서의 연예인’화에 대한 비판론과 옹호론을 야기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논란의 핵심은 따로 있다. 급변하고 있는 방송환경, 아나운서 역할과 위상의 변화라는 시대적인 맥락이 논란의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1927년 라디오 방송의 역사가 열린 이래 아나운서는 방송의 전면에 나서 대중과 만나는 대표적인 자리로 기능했다. 특히 1961년 KBS TV의 개국으로 열린 텔레비전 시대에서 아나운서는 뉴스에서 교양 프로그램까지 전방위 방송인으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1970년대 변웅전 아나운서가 오락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나서기는 했지만 역시 아나운서의 본령은 교양과 품위를 유지하는 데 있다는 게 대다수 방송인과 시청자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시청률 경쟁이 본격화하고 방송인의 역할이 변화하고, 오락과 교양의 퓨전 바람이 일고, 연예인의 방송 진출이 늘면서 아나운서의 역할과 인식도 급변했다. 먼저 아나운서의 대표적인 무대가 됐던 뉴스 영역에서 아나운서의 역할이 크게 감소했다. 미국 등 서구의 경우처럼 취재기자가 직접 앵커를 맡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아나운서의 역할이 줄어든 것이다. 또한 오락 프로그램에선 개그맨과 프리랜서 MC의 독식 현상이 가속화하고, 교양 프로그램마저 시청률 경쟁의 영향으로 연예인과 전문가 MC가 대거 투입되면서 아나운서의 설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세대 아나운서들은 기존의 규범적이고 획일적인 아나운서상을 거부하며 개성을 발현하기 시작했다. 오락 프로그램에 적극 진출해 개인기에서부터 연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끼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아나운서의 연예인화가 빠르게 진행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벌어진 아나운서의 정체성 논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규범적이며 전통적인 아나운서 역할론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타당하지만, 시대의 상황에 따른 역할 변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강수정, 김주희 아나운서로 시작된 ‘논란’이 아나운서의 정체성에 대한 발전적인 논의의 장으로 연결되기를, 그래서 위기를 맞고 있는 아나운서계에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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