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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 이슈로 ‘어게인 2008’?

앨 고어 ‘불편한 진실’ 책과 영화 뜨거운 관심… “고어를 다시 보게 됐다” 위상 제고

  • 보스턴=선대인 통신원 battiman@daumcorp.com

지구온난화 이슈로 ‘어게인 2008’?

지구온난화 이슈로 ‘어게인 2008’?
“인류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몇 년 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세계 정·재계 지도자들의 모임인 다보스포럼에서 받은 질문이다. 이때 그는 주저 없이 지구온난화 문제를 꼽았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신문의 국제면을 장식하는 것은 대량살상무기나 국제분쟁, 경제현황 등에 관한 기사다. 이런 판에 그는 왜 ‘한가롭게’ 지구온난화 문제를 거론했을까.

클린턴의 국정 파트너였던 앨 고어 전 부통령에 의해 이에 대한 답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지난달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이라는 책을 펴냈다. 동시에 같은 제목의 영화가 미국 사회에서 화제에 오르고 있다. 책은 ‘뉴욕타임스’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 2위에까지 올랐고,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닷컴 등에서도 높은 판매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블록버스터 영화에는 비할 바 아니지만, 영화도 미 전역 120여 개 영화관에서 상영돼 수십만 명이 관람했다.

“심각한 지구 문제 생생히 깨달아’

이전에도 지구온난화를 다룬 책은 많았다. 특히 올 들어 ‘기후 창조자(The Weather Makers)’ 등 주요 저작들이 잇따라 출간됐지만 대중성 측면에서는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 이런 점에서 ‘불편한 진실’은 지구온난화 문제를 대중적으로 각성시키는 데 큰 구실을 했다.



고어의 책과 영화는 북극 빙하의 급격한 위축, 사막화로 인한 기아 발생, 홍수·폭우·폭염·허리케인 빈발 등의 이상기후 현상이 모두 지구온난화 현상과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는 환경주의자로서 그의 오랜 신념과 탄탄한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그래프, 사진, 영상 등이 일궈낸 성과다. 최근 이 영화를 본 하버드 케네디스쿨 학생 마틴슨은 “막연히 환경론자들의 이슈라고만 생각했던 지구온난화가 얼마나 심각한 전 지구적 문제인지 생생하게 깨달았다”며 “고어를 다시 보게 됐다”고 말했다.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한국 유학생 김인송 씨도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 ‘불편한 진실’이 화제”라며 “많은 학생들이 지구온난화 문제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고어의 정치적 위상도 다시 높아졌다. 2000년 뼈아픈 대선 패배 이후 사실상 정계를 은퇴한 그다. 그런데도 그를 2008년 민주당 대선 후보로 다시 내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성향의 주간지 ‘뉴 리퍼블릭’의 편집장 마틴 페레츠는 6월22일자에 ‘최상의 선택-앨 고어를 2008년 대선에(Prime Choice-Al Gore in 2008)’라는 칼럼을 썼다. 그는 칼럼에서 “정치적 온건주의자와 자유주의자들이 지적으로 확신할 수 있으며, 심리적으로 열광할 수 있는 고어가 2008년 민주당 대선 후보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구온난화 현상이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이 과학계 내에서는 기정사실이 된 지 오래다. 에너지 정책의 권위자인 하버드대학 존 홀드런 교수는 “온실가스 배출 등으로 지구온난화가 급속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압도적인 수의 과학자들이 사실로 받아들인다”며 “누군가 지구온난화가 자연적 현상이라고 한다면 과학계 내부에서는 비웃음을 살 것”이라고 말했다.

고어 전 부통령이 ‘불편한 진실’에서 강조하는 것도 과학계가 인정하는 다섯 가지 기본 사실이다. △지구온난화는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 △인간 활동이 온난화의 근본 원인이다 △온난화의 영향이 매우 심각하며 더욱 악화되고 있다 △빠른 시일 안에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심각한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인류가 이 문제를 바로잡을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고어는 “지구온난화 문제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며, 정파를 초월해 공동 대응해야 하는 도덕적 문제”라고 강조한다.

지구온난화 이슈로 ‘어게인 2008’?

영화 ‘불편한 진실’에 출연한 앨 고어(좌)와 동명의 책 표지.

이 같은 고어의 호소로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의 에너지 및 환경 정책이 바뀔 수 있을까. 잘 알려진 대로 미국은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위한 전 지구적 협약인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한 4개국 중 하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올 초 연두교서에서 “에탄올 연료 개발과 보급에 힘쓰겠다”고 했지만 그의 전반적인 정책 기조가 달라질 것으로 보는 것은 무리다. 석유기업 경영자 출신인 데다 여당인 공화당이 에너지업계로부터 막대한 후원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석탄업계가 공화당에 후원한 금액만 해도 2000년 이후 4100만 달러(약 390억원)에 이른다.

이 때문인지 부시 행정부는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것을 넘어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부시 대통령이 석유업계 로비스트였던 필립 쿠니를 환경정책 담당 보좌관으로 기용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쿠니는 보좌관으로 있는 동안 미 환경보호국(EPA) 등이 작성한 10여 건의 보고서 가운데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내용을 수정하거나 삭제했다. 고어가 유명 작가인 고 업턴 싱클레어의 말을 빌려 “어떤 사안을 이해하지 않는 것에 생계가 달려 있는 사람에게 그 사안을 이해시키는 일은 어렵다”고 비판한 대목 그대로다.

하지만 상반되는 흐름도 강하게 일고 있다. 이미 뉴욕, 워싱턴, 시카고 등 미국 내 218개 도시들이 자체적으로 교토의정서를 비준해 정책을 시행 중이다. 미네소타주를 필두로 친환경 에너지인 E85(바이오에탄올 85%를 휘발유와 섞은 연료) 사용을 확대하는 주도 늘고 있다. 제너럴 일렉트릭(GE) 같은 대기업들도 과거 입장에서 선회, 속속 지구온난화와의 전쟁에 나서고 있다. 심지어 부시 행정부의 정치적 우군으로 여겨졌던 85개 복음주의 교회 목사들도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기로 했다.

국제경쟁력 강화에도 도움

고어는 그의 책에서 미국 자동차업계의 잘못된 선택이 어떻게 환경과 경제, 그리고 업계 자체에 해를 입혔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미국 자동차업계는 연비 개선을 등한시하면서 정부의 연비 기준 강화에 반대해왔다. 결과적으로 현재 미국 자동차의 연비 기준은 일본의 절반 수준이며 중국보다도 낮다. 이제 미국 자동차업계는 연비 기준 때문에 중국에도 수출할 수 없게 됐다. 기름값이 오르자 미국 소비자들은 기름을 적게 먹는 일본 차를 더욱 선호하고 있다. 미국 자동차업계 스스로가 무덤을 판 것이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올바른 대처가 인류의 ‘도덕적 책무’일 뿐만 아니라 국제경쟁력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환경이 경쟁력인 현시대의 흐름을 한국은 제대로 읽고 있는가.



주간동아 547호 (p50~51)

보스턴=선대인 통신원 battiman@daum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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