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7

2006.08.08

균형발전특별회계 예산 ‘못 따면 바보’?

의원들 나눠먹기용 전락 … 주무부처, ‘부적절 사업’ 의견에도 요구만 하면 척척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6-08-02 15: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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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균형발전특별회계 예산 ‘못 따면 바보’?
    서갑원 의원 “저도 하나만 말씀드릴까요? 종합심사에서 개진했습니다만, 개신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100년이 지났습니다. …순천 같은 경우에 선교 100주년이 됐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묶어 기독교 선교성지로 개발해 관광자원화하면 아주 의미 있는 사업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총 사업비가 240억원 들어가는데,지방비에서 대부분 부담하고 국비에서 93억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선 설계비로 한 10억원 정도를 반영해줬으면 합니다.”

    소위원장 강봉균 “위원님들, 죽 얘기하세요. 골라서 조금씩 주는 것이니까 의견을 말씀하세요. 주고 싶은 데도 이야기하시고, 깎고 싶은 데도 이야기하세요.”

    김영춘 의원 “서갑원 의원이 말씀하신 것은 꼭 해줍시다. 자기 지역이고 하니….”

    지난해 12월2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조정소위원회 제6차 정기회의 회의록 내용 중 일부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이하 예결위) 소위원회는 열린우리당 서갑원 의원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 전남 순천 ‘매산 유적지 관광자원화 사업’에 10억원의 국고를 배정했다. 배정된 예산은 국가균형발전 특별회계(이하 균특)의 예산. 순천이 서 의원의 지역구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과적으로 서 의원은 지역구를 위해 예산을 챙긴 셈이다.



    지자체조차 “국고 지원 예상 못했던 일”

    전혀 예상치 못한 예산을 확보한 순천시는 뒤늦게 후속조치를 취하느라 바쁜 모습이다. 시 관계자는 “이 사업은 몇 년 전 전라남도에 신청했다가 반려된 적이 있다. 비슷한 사업을 여수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부적절하다는 이유에서였다”면서 “이렇게 국고가 지원될 것이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에 따르면 순천시는 지난 연말까지 매산 유적지 사업에 대한 재정투융자 심사도 마치지 못한 상태였다. 지방재정법상 도 예산은 물론이고 국고를 지원받기 위해서는 도 단위 투융자심사위원회의 심사를 받도록 돼 있다.

    순천시는 올해 5월에서야 심사위원회로부터 조건부 승인을 받아낸 데 이어, 시의회의 추경예산 심사에서 이 사업을 위한 지방비 책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균특 예산은 ‘50대 50’의 매칭펀드로, 지방예산이 50% 이상 확보된 사업에 한해서만 지원이 가능하다. 시가 사업에 필요한 지방예산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에는 국고를 지원받을 수 없다.

    관련 법과 규정상 원칙대로라면, 시는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짜고 재정투융자 심사를 거쳐 지방예산을 우선적으로 확보한 다음 국고지원을 요청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매산 유적지 사업은 완전히 거꾸로 진행되고 있다.

    균형발전특별회계 예산 ‘못 따면 바보’?

    ‘인라인롤러스케이트장’예정 부지로 알려진 대구 달성군 화원읍 명곡리 일대.

    지난해 예결위 소위원회에서 균특 예산 8억2000만원이 새로 배정된 대구시 달성군 인라인롤러스케이트장 신축사업도 마찬가지다. 달성군은 지방예산 확보와 부지 매입은 고사하고 신축 예정지조차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군 관계자는 “달성군 화원읍 명곡리 명곡체육공원에 2008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라고 설명하지만, 인근 지역주민은 물론 부동산업자들조차 ‘명곡체육공원’이라는 곳이 어딘지도 잘 모른다.

    이 지역 의원은 한나라당 전 대표인 박근혜 의원이다. 하지만 취재 결과 인라인롤러스케이트장 신축사업은 인접지역인 달서구의 한나라당 박종근 의원의 작품이었다.

    달성군 관계자는 “박종근 의원이 대구시장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시장이 시 단위 사업으로는 어렵다고 말해 구 단위 사업으로 조정됐고, 그래서 박 의원이 달성군수와 협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는 달성군수의 지시를 받아 기본계획을 수립해 의원실로 보냈는데, 나중에 보니 균특 예산을 지원받는 것으로 결정됐다”고 덧붙였다.

    달성군 자체적으로 사업계획을 수립해 규정 절차를 거친 뒤 시와 해당 부처에 예산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의원실의 요청에 의해 진행된 사업이었던 것.

    박 의원은 이에 대해 “전국 대부분 지역에 인라인롤러스케이트장이 있는데 대구에만 없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단체장과 협의해 적격지를 찾았다. 예산은 예결위 의원들에게 부탁하지 않고 내가 직접 기획예산처에 사업의 타당성을 설명해서 받아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획예산처가 사업의 타당성을 인정해서 받아들인 것이고, 이를 예결위 소위원회 위원들이 통과시킨 것이라는 말이다.

    지역구 챙기기냐? 꼭 필요한 사업이냐?

    경남 마산 내서운동장 신축을 위한 균특 예산 7억원을 따낸 한나라당 안흥준 의원 측도 같은 주장을 편다.

    “마산 인구가 7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 운동장 하나가 없다. 오래된 숙원사업이다. 그동안 시에서 여러 차례 예산을 신청했는데 기획예산처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안 의원이 관련 자료를 가지고 예산처 관계자를 직접 만나서 설명하고 설득해 받아냈다. 다른 끼워넣기식 예산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획예산처는 지난해 4월 마산 내서운동장 신축사업비에 대한 실무 심사과정에서 부지 매입이 완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예산배정을 거부한 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점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일부 의원실은 끼워넣기라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더라도 지역구 발전을 위한 예산 확보에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예결위 의원인 민주당 김효석 의원은 지난해 전남 담양 친환경농자재 생산업체 지원을 위해 5억원의 균특 예산을 배정받은 바 있다.

    2006년 국가균형발전 특별회계 예산 증액 내역(본회의 통과) (단위 : 백만원)
    (열링우리당-우, 한나라당-한, 민주당-민, 국민중심당-국중)
    소관
    사업명
    정부안
    증액
    해당 지역구 의원
    문화관광부
    .앙코르-경주세계문화엑스포 지원
    -
    2,000
     
    .지방체육시설 지원
    49,174
    2,370
     
    (마산 내서운동장)
     
    (700)
    안홍준(한)
    (달성 인라인롤러스케이트장)
     
    (820)
    박근혜(한)
    (진안 공설운동장)
     
    (850)
    정세균(우)
    .기초 관광지원 개발
    162,546
    3,000
     
    (보성 강골전통마을 조성)
     
    (2,000)
    신중식(민)
    (매산 유적지 관광지원화)
     
    (1,000)
    서갑원(우, 예결 예산소위)
    농림부
    .국가균형발전 지역특화사업
    87,260
    680
     
    (담양 친환경농자재생산)
     
    (500)
    김효석(민, 예결위)
    (태안 백합종구 생산단지)
     
    (180)
    문석호(우,예결위)
    .농업생산기반 정비(장수군 소규모 용수개발)
    362,280
    150
    정세균(우)
    해양수산부
    .연안정비사업(당진군)
    19,229
    1500
    김낙성(국중)
    산업자원부
    .지역전략산업진흥(지역혁신사업 기반 구축)
    421,500
    5,000
     
    중소기업청
    .재래시장 활성화
    112,409
    10,428
     
    환경부
    .강변여과수개발사업(김해)
    2,000
    1,000
    최철국(우), 김정권(한)
    건설교통부
    .개발제한구역 주민지원사업(군포)
    55,100
    2,000
    김부겸(우)
    .국가지원 지방도 건설
    547,813
    9,585
     
    (조리-법원)
     
    (1,000)
     
    (영월-정양)
     
    (1,987)
     
    (부용-청원)
     
    (118)
     
    (서산-성연)
     
    (2,791)
     
    (송현-남평)
     
    (1,144)
     
    (앵남-화순)
     
    (1,144)
     
    (본덕-임곡1)
     
    (228)
     
    (우곡교)
     
    (1,173)
     
    .유통단지 진입도로(서울동남권)
    28,303
    (500)
     
    .주거환경 개선사업(무주군)
    119,617
    910
    정세균(우)
    합계
     
     
    39,123
     


    김 의원 측 관계자는 이에 대해 “예결위 심의과정에서 기획예산처 담당자와 소위원회에 참석한 의원들에게 협조요청을 했다”면서 “끼워넣기라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지역구 의원 입장에서는 지역예산을 단돈 1000만원이라도 확충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 노웅래 의원이 지난해 회계결산 내역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예결특위 소위원회가 균특 예산안 5조9357억원 중 681억원을 감액하고, 391억2300만원을 증액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가운데 증액된 예산은 당초 정부의 예산안은 물론 해당 상임위에서조차 정식으로 논의되지 않았던 사업들을 위해 새롭게 편성된 것이다(표 참조).

    균형발전특별회계 예산 ‘못 따면 바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 계수조정소위원회(위원장 강봉균)가 지난해 11월 말 2006년 예산안 및 기금 운용 계획에 대한 세부 심의를 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해당 부처조차도 예산심의 결과를 통보받기 전까지 신규로 예산이 편성된 사업내용을 전혀 모르는 다소 황당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문화관광부의 한 사무관은 “사업내용을 보면 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나 다름없다”면서 “하지만 예산을 늘려준다는 데 반대할 이유도 없고, 정색하고 국회에 문제제기를 하기도 곤란해서 그냥 (예산심의 결과를)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증액된 균특 예산이 모두 의원들의 이해관계에 의한 것은 아니다. 균특 예산을 분배하는 기획예산처와 각 부처의 의견도 상당 부분 반영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균특 예산이 의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나눠먹기식 예산으로 전락했다는 것.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균특 회계는 그동안 중앙부처가 7개의 회계로 나눠 추진하던 지방 균형발전 관련사업을 2005년 1월1일부로 하나로 통합한 것. 이 회계로 관리되는 균특 예산은 일반 예산과 다르다. 균특 예산은 지자체 총액배분제로 지자체에 자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 예산이다. 예결위에서 깎이면 그것으로 끝나는 일반 예산과는 달리, 균특 예산은 예산을 삭감당한 지자체가 다른 사업으로 예산을 보전받을 수 있는 것. 그래서 지자체가 요구하는 예산은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대부분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반면 해당 부처의 의견은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지자체 의견은 수용, 해당 부처 의견은 미반영

    기획예산처가 노웅래 의원실에 제출한 ‘균특 사업 부처의견 반영 현황’ 자료에 따르면, 문광부는 각 지자체가 요구한 2006년 문화 및 관광 관련 균특 사업 중 모두 54건에 대해 ‘부적정’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수익사업으로 국고지원 부적정’ ‘재정투융자 심사 미이행’ ‘부지매입비 지원 불가’ ‘사업내역 불부합’ ‘이월액 과다’ ‘행정절차 미이행’ 등의 이유였다. 그러나 문광부의 의견에 따라 지자체의 예산 요구가 거부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균특 예산은 이처럼 정부부처보다는 지자체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반영되는 예산인 만큼 해당 지역 의원들의 입김이 작용할 여지가 크다.

    노 의원은 이에 따라 “균특 사업의 예산 편성에 있어서 해당 부처장의 권한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법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획예산처도 이 같은 지적에 동의한다. 기획예산처가 노 의원실에 제출한 법개정 필요성에 대한 입장이다.

    “균특 회계의 설립 취지인 지자체의 자율성을 제고하면서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역할및 권한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재원 배분에 대해서는 지자체가 총액 내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배분된 규모 내에서의 사업추진에 대해서는 중앙정부가 관리, 감독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지자체에 자율성을 부과한 데 따른 책임성 강화를 위해 사후평가 및 집행실적 관리 등을 더욱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한편 균특 예산은 국고와 지방비가 50대 50의 비율로 책정되는 ‘매칭펀드’라는 점에서 현실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방재정이 풍부한 지자체는 얼마든지 예산을 가져다가 쓸 수 있는 반면 궁핍한 지자체는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

    국회사무처 예결위의 한 조사관은 “돈이 없는 지자체일수록 사업예산 집행률이 떨어지는데, 그렇다고 예산을 다 깎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할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이 깎아야 할 경우에는 그만큼 되돌려주는 일이 현실적으로 필요하다. 해당 지역 의원들은 그 과정에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조사관은 그러나 “예결위 소위원회 회의가 공개되면서 상임위나 예결위 전체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피력된 의사만 반영되는 분위기로 바뀌어가고 있다”면서 “해가 갈수록 예결위 소위원회에서 의원들이 개인적인 필요에 따라 특정 사업예산을 끼워넣을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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