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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창|‘벤허’

한센병에 대한 오해와 편견

  • 이명재 자유기고가

한센병에 대한 오해와 편견

한센병에 대한 오해와 편견

‘벤허’

갑작스런 타계로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린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이종욱 박사. 생전에 슈바이처 박사처럼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는 그의 꿈은 젊은 시절 나자로 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를 돌봤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험이 젊은 의학도의 삶에 그토록 큰 영향을 끼쳤다면, 그건 달리 말해 한센병 환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그만큼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증거라고 할 것이다. 한센병이라는 새 이름을 얻기 전에는 ‘나병’ ‘문둥병’으로 불리며 천형(天刑)으로 여겨졌던 질병. 만약 질병에도 계급이 있다면 한센병이야말로 가장 밑바닥에 있는 병이 아닐까.

성경에서 예수의 기적을 얘기할 때 많이 나오는 장면이 ‘문둥병자’를 고치는 모습이다. 가령 마태복음에는 산상수훈을 마친 예수가 가장 먼저 베푼 이적이 환자를 고친 일로 기록돼 있다.

성경을 실제 역사의 기록만이 아닌 상징과 은유로 해석하는 관점을 취한다면 ‘문둥병자 치유’ 장면이 반복되는 것에서 한센병의 사회적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즉 성경 속의 나병 환자들은 가족이 있어도 함께할 수 없는, 모든 사람에게 따돌림 받고 소외된, 그 사회 가장 낮은 곳에서 억눌린 이들이었던 것이다.

한센인들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과 편견은 이미 구약성경에도 나와 있다. 구약 레위기에는 ‘문둥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진데 밖에서 살지라’고 씌어 있다.



한센은 육체적 증상 그 자체보다 사회적 고통까지 함께 받아야 했다는 점에서 무서운 질병이었다. 성경에서 ‘문둥병’이라는 말이 한센병만이 아니라 점차 심한 피부병을 지칭하는 병명으로 뜻이 넓어진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영화 ‘벤허’는 당시 한센인들의 비참한 처지와 이들에게 임하는 구세주의 이적이라는 극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유대의 귀족 집안인 벤허 가문에 닥친 일련의 불행은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나병에 걸리는 데서 절정을 맞는다. 어머니와 동생은 나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골짜기에 따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쏟아지는 빗방울을 얼굴에 맞으면서 어머니와 여동생은 나병이 깨끗이 낫는 기적을 경험한다. 성령으로밖에는 치유할 길이 없는 불치의 병, 이것이 동서를 통틀어 인류가 오랫동안 갖고 있던 한센병에 대한 두려움을 말해준다.

한센병의 병리학적 실체는 1873년에 한센이라는 의사에 의해 규명되었다. 전염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러나 병에 대한 두려움은 벤허의 시대로부터 2000년이 지난 근대에 들어와서도 여전했다. 1930년대 무렵을 배경으로 한 영화 ‘빠삐용’에도 한센병 환자들은 지옥섬의 간수보다도 두려운 이미지로 그려진다. 감옥을 탈출한 주인공 앙리는 나병 환자들의 수용소가 있는 섬으로 가는데, 여기서 그는 탈옥보다 어려운 시험대에 오른다. 한 한센 환자가 한센병 환자들 앞에서 자신이 물고 있던 담배를 피우라며 건네준 것이다. 이 순간은 앙리에게 탈옥보다 어려운, 자기의 목숨을 내건 모험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야 한센병에 대한 진실이 알려지고 있다. 한센병에 대한 오랜 오해와 편견은 ‘질병에 대한 사회적 재해석에 반대한다’는 작가 수전 손택의 지적을 환기시켜준다. ‘질병은 단지 질병일 뿐’이다.



주간동아 2006.06.06 538호 (p77~77)

이명재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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