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8

2006.06.06

선거폭력 그 후, 웃는 자와 우는 자

  • eastphill@donga.com

    입력2006-06-01 13: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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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4대 대통령 선거일을 사흘 앞둔 1992년 12월15일. 서울 잠실에서 대규모 유세를 마친 김영삼(YS) 민자당 후보는 최창윤 비서실장으로부터 ‘초원복집 사건’과 관련한 국민당 발표를 보고받았다. 부산 기관장들이 초원복집에서 아침식사를 하며 나눈 대화를 도청한 녹취록에는 “다른 사람이 되면, 부산·경남 사람들은 영도다리에서 물에 빠져 죽자” 등의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민감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사안의 심각성에 격노한 YS는 즉각 당사로 가 기자회견을 하겠다며 준비를 지시했다. 그러나 측근들이 “흥분해서는 안 된다”며 설득해 당직자들이 모여 있던 여의도 63빌딩으로 차를 돌렸다.

    63빌딩에 도착한 뒤에도 YS는 유세 기간에 전혀 마시지 않던 와인을 연거푸 들이켰다. 그만큼 흥분한 탓이다. 하지만 도청의 부도덕성에 초점을 맞춘 전략이 여론의 흐름을 바꾸는 데 성공하고, 위기의식을 느낀 영남표가 결집하는 부메랑 효과까지 가져오면서 YS는 대승을 거뒀다.

    선거 후 기자가 YS를 만나 “초원복집 사건이 오히려 득표에 도움이 된 게 아니냐”고 묻자 그는 “당시는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이기기는 했지만 사건 직전 서울에서 2%가량 앞서 있었는데 결국 7만여 표를 져 아쉽다”고 대답했다.

    초원복집 사건처럼 돌발변수가 선거에 영향을 미친 경우가 적지 않다. 직선제 개헌 투쟁이 결실을 맺어 이뤄진 1987년 대선에서는 선거 17일 전인 11월29일 미얀마 상공에서 발생한 김현희의 KAL 858기 폭파사건이 보수층의 결집을 불러와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승세를 굳히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또 전주 유세장에서 날아오는 돌을 방패로 막아가며 유세하는 노 후보의 모습이 TV에 방영되면서 노 후보와 YS로 갈려 있던 영남표가 노 후보에게로 쏠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폭력이라는 돌발변수가 판세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또 하나의 선거는 1991년 광역지방의회 선거였다. 당시 학생들의 잇따른 분신 및 투신 ‘열병’ 속에서 총리에 지명된 정원식 총리서리는 자신이 맡은 특강의 마지막 수업을 하러 서울 한국외국어대 교육대학원에 갔다가 학부 학생들한테서 달걀과 밀가루 세례와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했고, 이 일로 학생운동권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긴장했던 민자당이 한숨을 돌렸음은 물론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테러 사건이 지방선거의 지형을 결정짓는 돌발변수로 등장했다. 사건 이후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은 그동안 열세로 분류됐던 대전과 제주에서 선두를 추격할 발판을 마련했고, 호남을 제외한 지역에서 압도적 우세를 확립했다. 수도권에서의 막판 역전을 꿈꾸던 열린우리당은 역전은커녕 전북과 대전이라는 ‘집토끼’ 지키기에도 힘겨워 보인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나온 돌발변수는 순풍을 타는 정당에는 행운이겠지만 역풍을 맞는 정당에는 결정타로 작용한다. 그게 바로 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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