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5

2006.05.16

브레이크 없는 정보화

  • 이재열 서울대 교수·사회학

    입력2006-05-10 17: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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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레이크 없는 정보화
    영국의 리버풀과 맨체스터 간 64km의 철로 위로 처음 기차가 달린 것은 1814년의 일이다. 놀라운 기술진보의 결과 기차 속도를 시속 100km까지 끌어올리는 데는 몇 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조지 웨스팅하우스가 19세기 후반에 압축공기를 이용한 브레이크를 만들기 전까지 철도의 역사는 대형 재난의 역사였다. 2~3km 앞에 장애물이나 다른 기차가 서 있어도 속도를 줄일 수 없어 추돌하곤 했던 것이다.

    정보화가 가져온 편의성과 효율성은 눈부시다 못해 현란하다. 한국은 다른 어느 나라도 경험하지 못한 최첨단 기술을 상용화했다. 서울의 값싸고 빠른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 여행자에게 런던이나 뉴욕의 느리고 터무니없이 비싼 인터넷 서비스는 답답함을 넘어 짜증을 불러온다. 휴대전화 단말기는 카메라, 전자사전, MP3, 게임기, 전자수첩 등의 기능을 융합해나가면서도 크기나 모양새는 날로 날렵해지고 있다. 와이브로나 EVDO 이동형 인터넷, DMB 등의 방송 서비스들도 한국에서 가장 처음 상용화했다. 앞으로 유비쿼터스 사회를 처음으로 구현할 나라는 한국이라는 것이 외국 언론들의 예측이다.

    우리는 정보화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인 ‘공간성’의 해체에서 파생되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논산의 딸기농가나 양평의 채소농가가 서울의 아파트 주민과 직접 연결돼 직거래가 이뤄진다. 또한 미국 명문 대학의 강의를 온라인으로 들을 수도 있다. 전자정부는 시민들에게 신속하고 편리한 온라인 민원서비스를 제공하고 뉴욕, 런던, 도쿄, 서울의 주식시장은 실시간으로 연결돼 빛의 속도로 자본의 회전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정보화가 가져온 그림자도 점점 짙어지고 있다. 연결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까지 ‘돌발적으로’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밀실에 머물렀어야 할 은밀하고 사적인 영상이 순간적으로 광장에 내던져지면,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백주에 적나라한 공개상영관으로 올라간다. 호기심 어린 엿보기, 정치적 음모 등이 인터넷과 결합하면 결코 되담을 수 없는 치명적인 마녀사냥의 처형장이 만들어진다. 아무리 복제해도 원본은 손상되지 않고, 유통기한도 없어 자연 소멸되지도 않는 주홍글씨를 남기는 것이다. 좌절한 사람끼리 만나는 자살사이트는 집단자살을 부추기고, 뒷골목에서도 밀려난 성매매는 온라인상으로 옮겨져 ‘홍등가’의 경계를 넘어선 성매매의 일상화를 촉진하고 있다.

    온라인 지배 새 규범 필요, 그러나 현실은 먼 길

    이러한 변화의 맥락에는 광범위한 누리꾼을 단기간에 연결시켜 돌발적인 감정의 폭발과 동원을 가능하게 만든 인터넷의 멱함수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한두 다리만 거치면 모두 연결되는 복잡계적 특징이 인터넷을 인격살인과 사회 해체의 지뢰밭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유비쿼터스 사회에 대한 전망이 더 밝아질수록, 모든 움직임과 정보가 분류되고 어딘가에 기록돼 축적됨으로써 구조화될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브레이크가 과연 제대로 장착되어 있는지 걱정스럽다. 정부가 앞장서서 그려내는 장밋빛 미래사회의 편리함과 효율성의 이면에는 사소한 실수나 악의적인 침투에 의해 이 사회가 순식간에 감시 체제로 전환될 수 있는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압축공기를 이용한 브레이크와 역사(驛舍) 간 통신기술의 발달이 고속으로 질주하는 기차의 안전사고를 줄였지만, 고속 질주하는 정보화의 위험은 기술발전만으로 줄어들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법률과 제도뿐 아니라 온라인을 지배하는 새로운 규범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정치인들조차 폭로와 마녀사냥의 불나비가 되어 불꽃 위를 날아다니는 현실은 우리에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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