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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 시장, 권력에 취해 ‘네트’에 걸렸나

  •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학 kangwt@ssu.ac.kr

이 시장, 권력에 취해 ‘네트’에 걸렸나

이 시장, 권력에 취해 ‘네트’에 걸렸나
요즘은 사정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5공화국 권위주의 시절의 군대 이야기다. 운동을 잘했던 한 친구는 이른바 테니스 당번병이었다. 그 친구의 임무는 사령관이나 고위 장교들이 테니스를 칠 때 함께 ‘놀아주는’ 일이었다. 테니스장을 관리하고 고위 장교들이 도착하기 전 코트 상태는 물론 샤워장이나 여타 시설을 점검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일도 중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였다. 이 때문에 하위 장교들이나 고참 사병들의 테니스장 사용을 막아서 미움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 친구에 따르면, 사령관을 비롯한 고위 장교들과 함께 하는 테니스 경기에서는 절대 경기가 일방적으로 흐르지 않게, 그러나 반드시 높은 분의 팀이 이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다른 보직에 비해 편하다고 주변에서 부러워했다지만 높은 분들이 언제 테니스를 치겠다고 나타날지 몰라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하루 종일 대기해야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나름의 고충도 토로했다. 그러나 훈련에서 열외 받고, 외박이나 부식 등에서 일반 사병들에 비해 큰 혜택을 누리기는 했다고 한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이른바 ‘황제 테니스’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황제 테니스 논란의 출발은 남산 실내테니스장을 2년 가까이 이용하면서도 비용을 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 시장이 테니스 비용을 내지 않은 사실을 뒤늦게 알고 그 일부를 지불했다고 했을 때만 해도 그저 유명세로 인한 일회성 해프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뒤 잇달아 언론에 제기된 의혹을 보면서 문득 오래전 사령관의 테니스 당번병이었던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시장은 전 국가대표 선수들과 테니스를 쳤고, 이들은 이 시장의 예약 상황에 따라 수시로 테니스장에서 대기해야 했다. 이 시장의 테니스 실력이 얼마나 출중한지는 알 수 없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국가대표 선수급들과 맞붙을 정도로 잘 칠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들이 대기까지 하면서 이 시장과 테니스를 친 이유는 테니스 당번병이었던 친구의 고백대로 ‘영감님’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시 체육회 고위 간부의 ‘부탁’ 때문이었거나, 그게 아니라면 높은 분과 ‘안면을 익히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이 시장으로서는 그러한 배려 뒤에 오게 될 청탁이나 반대급부에 대해 주의했어야 했다. 서울 잠원동 실내테니스장 건립을 비롯한 특혜 의혹이 언론에 제기되는 것은 그런 점에서 당연한 일인 것 같다. 그러나 이 시장은 이런 배려를 그저 즐긴 듯이 보인다.

독점적 코트 사용 배려 뒤엔 반대급부 없었을까



이 시장은 주말 황금시간대에 독점적으로 테니스 코트를 사용해왔다. 시민을 위한 시설이라고 하지만, 이 시장이 언제 테니스를 치러 올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 종일 예약해두었다는 설명처럼 주말 시간은 사실상 이 시장 1인을 위한 시설로 사용돼온 셈이다. 돈을 내지 않고 테니스장을 이용했다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공공시설을 특정 권력자만을 위해 배타적으로 이용하도록 했다는 사실이다.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주자로 이 시장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오직 이 시장만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권력의 기생자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증거로 보인다.

폭우에 테니스를 친 것보다, 파업 중에 테니스를 즐긴 것보다 이번 테니스 파문의 충격이 더 큰 것은 이 시장이 그동안 자신의 권력에 도취했고, 그 특권을 즐겨왔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민주화된 지 20년이 돼가지만 성공적인 민선 시장의 모습 속에서 과거 권위주의 시절 군 사령관의 행태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일은 권력이 얼마나 유혹적인 것인지, 또 얼마나 쉽게 빠져들게 되는지, 그래서 그만큼 공직자의 자기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돌아보게 한다.



주간동아 529호 (p104~104)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학 kangwt@s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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