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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의 茶人기행|자하 신위

유배 길에도 차 마시며 풍류 즐겨

유배 길에도 차 마시며 풍류 즐겨

유배 길에도 차 마시며 풍류 즐겨

신위의 흉상이 모셔져 있는 관악산 호수공원 전경.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7)가 성장했던 유적지를 오랫동안 찾다가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을 실감했다. 그가 완도와 제주도 사이에 있는 추자도로 유배 간 것은 알았으나 정작 그의 성장지가 관악산 부근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기 때문이다. 나그네가 남도 산중으로 들어오기 전 서울 생활 시절 일요일마다 올랐던 산이 관악산이고 보니 더욱 그렇다.

지인에게서 서울대 캠퍼스 산자락에 신위 조부의 문인석(文人石)이 있다는 것과 관악산 호수공원 가에 신위의 흉상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신위의 호가 왜 자하인지도 풀렸다. 지금도 과천의 시흥향교 쪽에서 연주암 가는 계곡을 자하동천(紫霞洞天)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순탄치 않은 벼슬길 … 시서화에 능해 ‘삼절’로 불려

유배 길에도 차 마시며 풍류 즐겨

신위 조부의 문인석.

다인들은 신위를 가리켜 차에 일가(一家)를 이뤘다고 해서 그의 이름 앞에 다가(茶家)를 붙인다. 그의 다시(茶詩)에는 차의 모든 것들이 소재가 되고 있다. 가령 떡차(餠茶 혹은 茶餠)로 차를 달이는 풍경을 소재로 한 ‘이천 사람이 돌냄비를 선물하기에 방두샘물을 길어 용 등뼈 모양의 떡차를 달이며 짓다(伊川人贈石 汲方泉煮龍脊茶餠有作)’라는 다시가 있다.

돌냄비에 차 달이니 떡차 향기 나고/ 구리병에 길은 물은 금옥 부딪치는 소리 낸다/ 문서(案牘)들로 몸이 피로하여 하품과 기지개 켤 때/ 이미 솔바람 소리(물 끓는 소리) 나고 두 번째 찻물이 끓네(石烹茶貢餠香 銅甁汲水佩聲 勞形案牘欠伸頃 已過松風第二湯).



신위의 자는 한수(漢), 호는 자하 또는 경수당(警修堂)이다. 아버지는 대사헌 대승(大升)이며, 그는 정조 23년(1799)에 알성문과에 급제해 초계문신(抄啓文臣)으로 발탁된다. 순조 12년(1812)에는 주청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갔는데 이때 신위는 벌써 차 마시기에 익숙했던 듯하다. 만주를 지나다 동정수(東井水)를 길어 찻물로 이용했다는 다시가 보인다. 신위는 청나라 대학자 옹방강(翁方綱)을 만나 학문의 눈이 열렸다. 이후 시서화(詩書畵) 삼절로 불렸는데 신위 사후에 김택영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그림은 시에 버금가는데, 묵죽화에 더욱 묘하여 중국인들이 다투어 보배로 삼았고, 글씨 또한 그림에 버금가므로 세상에서는 삼절이라고 말한다.’

중국인들이 신위의 묵죽화를 욕심냈던 것을 보면 그림의 품격을 짐작할 만한데, 그의 벼슬살이는 순탄치 못했다. 요직에 들지 못하고 내직과 외직을 들락거린다. 병조참지에서 곡산부사로, 다시 승지에서 춘천부사로, 병조참판에서 강화유수로 나간다. 1870년 7월 시흥 자하동천(현 과천)으로 물러나 은거하기도 하지만 한 달 뒤 강화유수 때 국가재정을 남용했다는 윤상도의 모함을 받고 추자도로 유배를 간다. 신위는 옥에 갇히거나 유배를 가면서도 차 도구를 가지고 다닐 정도로 차에 인이 박인 차꾼이었다. 유배지 추자도에서 지은 듯한 다시에 차 도구인 차 화로와 구리병이 나온다.

‘비 그치자 벌레소리 나고/ 안개 자욱하니 온갖 풀이 젖네/ 방울 져 떨어지는 소리 치자나무 담 집에 맴돌고/ 남은 물기는 베개풀에 스미네/ 작은 쑥집에 머무르려면/ 여울 지나걸랑 짧은 노를 멎으시게나/ 차 화로에 불이 있는 듯 없는 듯/ 또르르또르르 구리병이 우네(雨止蟲聲作 空 百草濕 淋鈴在 宇 餘潤枕 襲 如寄小蓬屋 過灘停短楫 茶爐有火否 銅甁泣).’

1831년 4월 귀양에서 풀려나는 길에 신위는 초의선사가 주석하는 해남 대흥사 북선원(北禪院)에 들러 초의시고(草衣詩藁)의 서문을 써준다. 초의와는 구면이었다. 초의가 자하동천에 은거하던 신위를 찾아와 그의 스승인 완호삼여탑명(玩虎三如塔銘)의 서문과 글씨를 써달라고 했던 것이다. 다인으로서 재조명할 인물이 있다면 나그네는 단연 신위를 먼저 꼽는다. 그는 어디서나 차 도구를 펼쳐놓고 풍류 삼아 홀로 차를 마시며 차에 심취했던 차꾼이었던 것이다.

☞ 가는 길

경기 과천 시흥향교 쪽에서 연주암 가는 길에 자하동천이 있고, 서울대 캠퍼스 안에 신위의 별장 터라고 알려진 자하연이 있다.



주간동아 2006.02.28 524호 (p5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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