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4

2006.02.28

혁신과 변화로 세계 빅3 야망

LG전자, 글로벌 경영 박차 … 전통 가전에서 첨단 디지털 제품까지 일류상품 ‘무장’

  • 이상록/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myzodan@donga.com

    입력2006-02-27 09: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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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과 변화로 세계 빅3 야망

    러시아 모스크바 시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약속 장소가 된 LG다리. 모스크바강을 가로질러 크렘린궁으로 연결된다.

    TV보다 라디오가 더 많던 1960~7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이라면 왕관 모양의 ‘금성사’ 마크가 새겨진 라디오로 방송을 들으며 밤을 보낸 경험이 한두 번쯤 있을 것이다. 초창기 한국 전자산업을 개척해온 금성사는 일찍부터 소비자들과 함께해온 것이다.

    1958년 10월 설립된 전자회사 금성사에서 출발한 LG전자는 다음해 11월 한국 최초의 라디오 ‘A-501’을 개발해 소비자들에게 선보였다. 이후 △냉장고(65년) △흑백 TV(66년) △에어컨(67년) △세탁기(69년) 등을 잇따라 최초로 국산화하며 한국의 주요 전자기업으로 성장했다. LG전자는 ‘디지털(digital)’이 전자, 정보기술(IT) 분야의 화두로 떠오른 90년대 후반부터 ‘디지털 LG’를 선포한 뒤 세계시장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도전과 결정’의 역사

    LG전자의 성장 뒤에는 중대한 결정을 과감하게 추진한 ‘뚝심’이 숨어 있다. 이 회사는 82년 10월 미국 앨라배마주 헌츠빌에 450만 달러를 들여 컬러TV 공장을 지었다. 한국 민간 기업이 해외에 지은 최초의 공장이었다.

    당시 국내외 언론은 대단한 관심을 보였다. LG전자(당시 금성사)가 6·25전쟁(1950)을 딛고 일어서 ‘한강의 기적’을 일궜던 한국에서 급성장해온 기업이긴 했지만, 전후 30여년 만에 전자제품의 본고장인 미국에까지 ‘도전장’을 던질 줄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



    이 공장은 이후 전자레인지, 비디오테이프리코더 등 다른 전자제품까지 만들며 규모가 더욱 커졌다. LG전자의 해외공장 설립은 삼성 등 다른 국내 기업들에도 영향을 미쳐 82년 삼성전자의 포르투갈 현지생산법인 설립을 시작으로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잇따랐다.

    하지만 LG전자의 미국 공장 설립 결정이 쉽게 이뤄진 것은 아니다. 당시 구자경 금성사 회장은 투자 여부를 놓고 상당히 고민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다른 기업들처럼 금성사도 수출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데 주력하고 있었기 때문. 그러나 구 회장은 고민 끝에 ‘미래’를 내다본 앞선 투자를 결정했고, 이는 오늘날 LG전자 글로벌 경영의 원동력이 됐다.

    2002년 LG전자가 LG 브랜드를 미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알리고 ‘프리미엄 경쟁’에 뛰어들었을 때 모험이라고 우려하는 사람이 많았다. 기존의 ‘골드스타(Gold Star)’나 ‘제니스(Zenith)’로 만들어진 중저가 제품 이미지가 너무 강했기 때문. 제니스는 LG전자가 미국 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90년대 후반에 인수한 미국 내 자회사다.

    LG전자는 먼저 미국의 대형 전자 유통업체인 ‘베스트 바이(Best Buy)’와 제휴한 뒤 고급 제품을 중심으로 LG 브랜드를 알리는 전략을 폈다. 고급 제품에는 LG 상표를 붙이고, 중저가 제품에 골드스타나 제니스 상표를 붙여 차별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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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베이징 시내 전자제품 전문매장인 야아오 다중 LG전자 매장에서 고객들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런 프리미엄 전략은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2003년 66억 달러(약 6조6000억원) 수준이던 LG전자의 북미 시장 매출은 지난해 92억 달러로 늘어났다.

    현재 ‘LG전자호’의 선장은 김쌍수 부회장이 맡고 있다. 김 부회장은 69년 이 회사에 입사한 뒤 냉장고 공장장과 DA 사업본부장 등을 거쳤다. 그는 ‘실행(execution)’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하는 현장 중심 경영자다.

    김 부회장이 올해 1월 LG전자의 2006년 경영전략으로 내놓은 ‘블루오션’ 경영의 핵심은 실행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운 것. 블루오션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며, 결국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LG전자의 사업부 구성과 역할

    LG전자는 △모바일 커뮤니케이션(MC, 이동통신) △디지털 어플라이언스(DA, 디지털 가전) △디지털 디스플레이(DD) △디지털 미디어(DM) 등 4개 사업본부로 나뉘어져 있다. 또 76개 해외 현지 법인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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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쌍수 부회장.

    MC 사업본부는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과 유럽통화방식(GSM) 등 다양한 휴대전화 단말기와 관련 기간 시스템을 개발, 생산한다. 광대역 부호분할다중접속(WCDMA) 방식을 채용한 3세대(G) 휴대전화 단말기 및 휴대인터넷을 이용한 차세대 단말기 개발을 위해 관련 업체들과의 제휴도 확대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4분기(10~12월)에 3분기(7~9월)보다 5% 늘어난 1620만 대의 휴대전화를 팔아 이 부문에서 197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는 3분기보다 60.7%, 2004년 같은 기간보다 38.5% 늘어난 수치다.

    DA 사업본부는 에어컨과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등 LG전자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가전제품들을 생산한다. 공기청정기와 전자오븐, 전자레인지, 식기세척기 등도 모두 여기서 만들어진다. 최근에는 양문형 냉장고나 드럼 세탁기, 벽걸이형 에어컨 등 ‘프리미엄 제품’ 개발 및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DD 사업본부는 액정표시장치(LCD) TV와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TV 등 디지털 TV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PDP 패널 등을 생산한다. 각종 모니터와 프로젝터, 휴대용 저장장치인 USB 메모리와 플래시 메모리 카드 등도 이 사업부에서 만들어낸다.

    DM 사업본부는 개인용 컴퓨터(PC)와 디지털 종합영상음향(AV) 등 홈시어터 시스템, DVD 플레이어, 광 스토리지 등의 제품을 만든다. 최근 전자제품 사이의 디지털 컨버전스(융합)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복합 제품 개발을 위한 전략적 제휴에 더욱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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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전자 창원공장 에어컨 생산라인.

    LG전자가 꿈꾸는 미래는 ‘위대한 기업(Great Company)’이다. 과감한 연구·개발(R&D) 투자와 적극적인 글로벌 마케팅,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2010년까지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전자, 정보통신 기업이 되겠다는 게 이 회사의 목표다. 이를 위해 경영전략과 인재육성, 조직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강력한 혁신과 변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김 부회장은 1월 LG전자의 2006년 경영전략을 발표하면서 “블루오션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이미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잘나가는 제품’은 계속 밀어주면서 한편으로는 경쟁자들이 따라올 수 없는 신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이를 위해 올해 디지털 TV의 수익 기반을 강화하기로 하고, PDP 라인 등 시설과 R&D에 각각 1조1000억원과 1조4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시스템 에어컨 전담사업팀을 새로 만드는 등 에어컨 사업도 확대하기로 했다. 이를 기반으로 2010년까지 매출과 이익률, 주주 가치를 각각 2배씩 달성하겠다는 ‘2BY10’이라는 슬로건도 확정했다.

    하지만 LG전자의 야심찬 계획이 순조롭게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최근 1, 2년 동안 지속적인 환율 하락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인해 수출에 주력하는 LG전자를 비롯한 한국 전자업계의 경영 환경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 실제 LG전자의 지난해 실적은 지지난해보다 나빠졌다.

    2005년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23조7742억원과 9146억원. 이는 2004년 매출액(24조6593억원)이나 영업이익(1조2497억원)보다 각각 3.6%, 26.8% 줄어든 것. 순이익(7028억원)은 2004년의 1조5460억원보다 54.5%나 감소했다. 따라서 LG전자가 올해부터 계획하고 있는 대규모 R&D 투자와 새로운 사업 개발의 성공 여부가 LG전자의 미래 위상을 가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LG전자가 처음 국산 라디오를 만들고 미국에 공장을 지을 때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 새로운 ‘꿈’을 이루고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할지 주목된다.

    초콜릿폰 대박의 비결

    깔끔한 디자인과 귀여운 이름 ‘고객 감성 자극’


    혁신과 변화로 세계 빅3 야망
    오랜만에 국내 단말기 시장에 ‘대박’ 제품이 등장했다. LG전자가 지난해 11월 말 내놓은 이래 올 2월 초까지 10만 대 정도가 개통된 초콜릿폰(KV5900)이 바로 그 제품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소비자들이 휴대전화 보조금을 바라고 구매를 늦추면서 휴대전화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올린 실적이라 더욱 돋보인다”고 말한다. 초콜릿폰은 개당 55만원으로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도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어젖힌 것이다.

    초콜릿폰 디자인의 총책임을 맡았던 차강희 책임디자이너(사진)는 일약 스타 디자이너로 떠올랐다. 그는 삼성전자와 대우전자를 거쳐 1991년부터 LG전자에서 DVD 플레이어, 오디오 기기 등 디지털 가전을 디자인했다. 그리고 지난해 초 휴대전화를 전담하는 MC 디자인 분야로 자리를 옮겨 첫 작품으로 초콜릿폰을 내놓았다. 그는 이 제품으로 지난해 우수디자인상품전 대통령상, 우수산업디자이너상, 한국산업디자이너협회 디자인 대상 등을 받아 상복도 터졌다.

    초콜릿폰의 성공 비결은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간결하고 깔끔한 디자인. 차강희 책임디자이너는 “외관을 최대한 간결하고 깔끔하게 보이도록 버튼이 드러나지 않게 모두 감췄다”며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 먹혀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심지어 회사 로고마저 빼버리고 천 재질을 사용한 외부 포장까지 직접 디자인해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그의 이 같은 디자인 감각은 기능 못지않게 외형을 중시하는 소비자의 경향과 잘 맞아떨어진 셈이다.

    회사 관계자들은 초콜릿폰이라는 이름도 ‘대박’에 일조했다고 평가한다. LG전자 관계자는 “초콜릿이란 사랑스럽고, 귀엽고, 갖고 싶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초콜릿폰으로 이름 지음으로써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도록 한 것도 성공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차강희 책임디자이너의 올해 계획은 초콜릿폰의 간결함을 다양한 휴대전화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는 “바 타입의 초콜릿폰 2 외에 폴더 타입형 초콜릿폰과 해외 수출용 초콜릿폰, 지상파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활성화에 대비한 DMB폰 등을 다양하게 준비 중”이라며 “제품을 다변화하더라도 군더더기 없는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디자인 철학은 공통으로 적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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