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4

2006.02.28

‘프리미엄 LG’ 미국서 通했네!

세탁기·휴대전화·TV 등 고급화 전략 주효 … 본격 공략 4년 만에 가전시장서 ‘신화 창조’

  • 김동국/ 한국일보 경제부 기자 dkkim@hk.co.kr

    입력2006-02-22 17: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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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미엄 LG’ 미국서 通했네!

    미국 라스베이거스 프리먼트 거리에서 관광객들이 하늘을 뒤덮은 LG 로고를 쳐다보고 있다. 이 돔형 전광판은 LG전자가 2004년 4월 설치해 기증한 것이다.

    미국 휴대전화 전체 시장 2위(CDMA 휴대전화 시장 1위), PDP·LCD TV 시장 4강, 휴대전화 고객만족도 1위(시장조사기관 J.D.파워 평가), 최대 가전제품 유통매장 베스트바이의 드럼세탁기 분야 점유율 2년 연속 1위, 에어컨·전자레인지 시장점유율 1위….

    LG전자가 미국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다. 언뜻 보기에 좋은 성적이긴 해도 눈에 확 띌 정도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성과가 불과 4년 만에 이뤄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 같은 성과는 모토로라, 노키아, 소니, 월풀, 메이텍, 프리지데어, GE 등 쟁쟁한 주자들이 휴대전화 시장과 TV, 생활가전 시장의 터줏대감으로 버티고 있는 미국 시장에서 이뤄낸 성적표다. ‘쾌거’라 할 만하다.

    ‘트롬’ 세탁기 1년 만에 베스트바이서 점유율 1위 등극

    더욱이 중저가 상품을 기반으로 가격 공략을 한 것이 아니라 이들 터줏대감의 제품과 거의 같거나 더 높은 가격,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품질, 곧 ‘프리미엄 브랜드’로 당당히 이런 성과를 올렸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LG전자의 위상은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 2006’에서도 확인됐다. 매년 초 열려 그해 정보기술(IT)과 가전 시장의 방향과 판도를 읽을 수 있다는 이 전시회에서 LG전자 부스는 바이어나 관람객들이 꼭 ‘순례’해야 하는 필수코스로 자리 잡았다. 올해도 많은 참석자들이 102인치 PDP TV 앞에서 사진 찍기에 바빴고, ‘생방송도 멈춘다’는 타임머신 TV에 환호했다.



    “다른 업체들이 모두 가격을 내릴 때 LG라는 브랜드를 걸고 오히려 가격을 올렸는데도 매출에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전시회에서 열린 LG전자 신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안명규 북미지역총괄 사장의 말이다.

    LG라는 브랜드가 세계시장에 선보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미국 시장 진출은 2002년부터 본격화됐다. 이에 앞서 LG전자는 1981년 뉴저지에 판매법인을 세우고 헌츠빌에 컬러TV 공장을 지어 ‘골드스타’라는 브랜드로 미국 중저가 시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골드스타는 ‘값싼 동양제품’이란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95년엔 미국 토종 가전업체인 제니스사를 인수했지만 신통치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LG전자가 LG 브랜드로 미국 시장에 진출한 것은 LG전자가 북미 시장 전략을 수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리미엄 전략’으로 대전환한 것이다. 중저가 제품은 골드스타와 제니스로, 최고급 상품에는 LG를 붙여 프리미엄 시장에서 승부를 낸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선점 기업들은 베스트바이, 로우스, 서킷시티, 시어스 등 전국적인 가전 유통업체와 밀착해 후발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고 있었다.

    기회를 찾던 LG전자는 2003년 틈을 발견한다. 대형 가전 유통업체인 베스트바이가 IT와 TV에서는 강했지만 생활가전에서는 경쟁 유통업체에 밀리고 있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LG전자는 10kg 이상 대용량 드럼세탁기를 베스트바이를 통해 미 전역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프리미엄 LG’ 미국서 通했네!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베스트바이에 세탁기 ‘트롬’을 넣은 지 1년 만에 베스트바이 드럼세탁기 분야 45%를 점유하면서 확고한 1위를 굳혔다. 2위인 23%대의 월풀과의 격차는 두 배나 벌어졌다. LG전자 관계자는 “대용량을 선택하고 이제 막 크기 시작하는 프리미엄 시장을 선점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베스트바이에서의 성공은 ‘프리미엄 LG’의 가능성을 확신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당연히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지난해엔 유통 분야의 블루오션을 개척하기도 했다. 미국 최대 주택 개량용품 전문 판매업체인 ‘홈데포’의 전국 1600개 매장에서 냉장고, 세탁기, 식기세척기 등 생활가전을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주택과 가전의 만남’이 적중했고 효과는 역시 놀라웠다. 지난해 7월 초 드럼세탁기가 본격 공급되자마자 매주 50%씩 증가하더니 7월 말에는 베스트바이에서의 판매량을 추월한 것이다.

    미국 시장에서 LG전자의 생활가전이 약진하게 된 배경에는 휴대전화가 있었다. 최근 세계적인 휴대전화 시장조사기관인 SA가 발표한 ‘2005년 전 세계 휴대전화 보고서’에서 LG전자 제품은 CDMA 방식과 GSM 방식을 망라한 북미 휴대전화 시장에서 모토로라에 이어 2위에 올랐다. 북미 CDMA 시장에서는 단연 1위다.

    LG전자는 지난해 세계 전 지역에 3040만대의 CDMA폰을 판매, 시장점유율 21%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특히 LG전자 휴대전화의 평균 판매단가는 160달러로 노키아, 모토로라 등을 월등한 차이로 따돌리고 삼성과 경쟁하며 고급형 프리미엄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

    전통 극장 후원 등 감성 마케팅으로 미국인 사로잡아

    이처럼 짧은 기간에 LG전자가 미국 시장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를 굳히게 된 원동력은 무엇일까. 업계에서는 현지화라는 LG전자의 세계 전략과 그를 뒷받침하는 기술력을 꼽는다. 현지화는 생산뿐 아니라 현지인과의 동화라는 문화적 측면을 내포한다. 감성으로 현지 시장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미국 시장에서 보인 LG전자의 대표적인 감성 마케팅은 ‘윌튼LG’극장이다. LG전자는 2003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함께 미국의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서 깊은 로스앤젤레스(LA)의 윌튼극장을 ‘윌튼LG’로 고치고 전폭적인 후원을 해왔다. 이곳은 81년 시민들이 반대농성으로 철거를 막은,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 가운데 하나다. LG전자는 이 명소를 지원함으로써 미국인들의 마음을 샀다.

    또한 미국 힙합가수 넬리와 함께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샌디에이고와 휴스턴, 뉴욕, 댈러스, 애틀랜타, LA 등 미국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LG전자 휴대전화를 알리는 ‘LG 모바일 투어’를 벌였다.

    LG전자의 기술력은 마케팅으로 사로잡은 미국 소비자의 마음을 도망가지 못하도록 묶어둔다. 그 대표적인 제품이 세계 처음으로 160GB HDD를 장착해 놓친 장면을 자동 녹화해 다시 보여주는 타임머신 TV다. 이 제품은 풀HD급 방송 13시간, 아날로그 방송 62시간을 저장할 수 있다. 김쌍수 부회장은 “타임머신 기능으로 경쟁사 유사제품보다 250달러는 더 받는다”고 자랑했다.

    특히 LG전자는 미국 지상파 디지털방송 표준으로 채택된 디지털TV전송기술(VSB)과 차세대 디지털TV전송기술(EVSB)의 원천 특허 보유자다. 북미 방식 디지털방송 시장에 대한 최고의 기술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LG전자는 지난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와 미 하원 통신 및 인터넷 소위원회 청문회에 나가 미국 디지털방송 정책에 대해 조언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미국 양대 방송사협회인 NBA와 MSTV에 의해 기존의 아날로그 TV로 디지털방송을 수신할 수 있게 하는 ‘지상파 디지털 셋톱박스’ 개발업체로 톰슨사와 함께 선정됐다. 이 모두가 ‘프리미엄 LG’의 튼튼한 토대다.

    LG전자는 지난해 12월 올 상반기 미국 시장에 출시할 신제품을 선보였다. 15kg 스팀트롬 가격을 현지 최고가인 1600달러 수준으로 올리고, 양문형 냉장고의 주력 제품을 기존 1599달러 제품에서 2199달러 제품으로 상향 조정했다. 15인치 LCD TV가 장착된 TV디오스 냉장고엔 현지 업계 최고인 3499달러의 가격을 매겼다.

    안명규 북미지역총괄 사장은 “환율이라는 심각한 악재가 있지만 올해 LG전자 북미법인의 매출 목표를 지난해 90억 달러보다 많은 100억 달러로 높였다”고 말했다. 미국 시장에서 ‘프리미엄 LG’의 질주를 계속 이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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