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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뉴레프트로 제3의 길 찾겠다”

‘좋은정책포럼’ 공동대표 임혁백 교수 “기존 진보와는 다른 싱크탱크 역할 할 터”

  • 송문홍 기자 songmh@donga.com

“뉴레프트로 제3의 길 찾겠다”

“뉴레프트로 제3의 길 찾겠다”
임혁백(54) 고려대 교수는 그동안 활발하게 현실참여를 해온 정치학계의 중진 학자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부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에 참여했고, 이번 정부 들어서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에서 정치개혁연구실장과 국가시스템개혁분과 위원장, 참여정부정책평가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그런 그가 1월17일 ‘좋은정책포럼’의 공동대표로 선임됐다. 좋은정책포럼은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모두 넘어서는 대안적(代案的) 발전모델의 제시”를 목표로 하는 학자·전문가들의 모임. 언론은 이를 ‘뉴레프트(New Left)의 등장’이라며 크게 소개했다.

“기존 진보진영과는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하며 민주개혁 세력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겠다”는 뉴레프트의 등장에, 이들보다 한발 앞서 기존 보수의 대안세력임을 자처하고 나선 ‘뉴라이트(New Right)’ 진영은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뉴레프트와 뉴라이트 사이의 건강한 정책토론과 이념대결이 우리 사회의 지적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을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도 많다. 1월31일 고려대 연구실에서 임 교수를 만나 뉴레프트가 고민하는 문제의식과 지향점을 물었다.

-‘뉴레프트’라는 작명(作名)에 정작 당사자들은 반론을 제기하는 것 같은데.

“뉴레프트는 원래 1960년대 서구 학생운동과 베트남전 반전(反戰) 운동에서 비롯된 저항적 진보운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당시 계급에 기반을 둔 스탈린주의자들이던 ‘올드 레프트’와 구별하기 위해 뉴레프트라는 말이 등장했다. 하지만 우리는 기존 권위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지속가능한 진보, 미래지향적인 진보를 표방한다. 한국의 경우 현재 진보세력이 집권하고 있다. 이들 진보세력이 한국사회의 주류로 계속 남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과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에 우리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뉴레프트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세계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바깥의 상황을 본다면, 이념운동이 사회 전체를 이끌고 가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지속가능한 진보’라는 표현 자체에 논리적 모순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우리가 표방한 ‘지속가능한(sustainable)’이란 말에 담기는 내용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다. 첫째는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다. 민주주의가 지속가능하게 된다는 것은 소극적 차원에서 권위주의 세력의 전복 기도에 흔들리지 않는 것, 적극적 차원에서는 절차적·정치적 권리 신장 수준을 넘어 시민의 사회·경제적 권리 신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민주주의가 계속 발전해야 지속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지속가능한 사회·경제체제의 구축이다. 경제면에서 먹고사는 게 문제가 되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그러나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시장근본주의적인 추세가 계속되면 양극화가 심화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사회적 통합은 깨진다. 지속가능한 사회가 되려면 현 경제체제의 이분적인 양극화 구조를 깨야 하는 것이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그 방안을 찾아야 한다.

“뉴레프트로 제3의 길 찾겠다”
마지막으로 생태와 관련한 ‘지속가능한 개발’이 있다. 지금처럼 자연을 착취하다간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살 수 없는 상태가 온다. 인간 생존을 위한 뿌리까지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탈냉전 이후 ‘민주주의가 과연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느냐’에 대한 고민과 모색은 세계적인 화두이기도 하다. 우리의 경우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라는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나는 민족주의 문제는 한국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동아시아적인 현상이라고 본다. 탈냉전으로 동서 진영의 국경이 무너지면서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연결되는 세계화가 진행됐다. 그 결과 유럽에서는 독일 통일과 함께 EU라는 지역 통합운동이 일어났다. 다시 말해 유럽에서는 민족주의의 약화를 통한 지역통합이 이뤄졌다.

반면 세계화가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는 동아시아에서는 오히려 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있다. 동아시아는 근대화를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탈근대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세계화를 주도하는 세력이 다름 아닌 민족주의 세력이라는 점도 동아시아적인 현상이다.”

-한국의 경우 주로 진보진영 쪽에서 민족주의를 강조해왔다.

“지속가능한 진보라는 시각에서 보면, 동아시아 국가들이 화해하고 협력하고 관용해서 다자적 지역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뉴레프트는 민족주의가 아니라 국제주의를 지지해야 한다고 본다. 북한 문제도 물론 남북 화해협력의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민족공조만 강조해서는 해결이 안 된다. 국제공조를 통해 민족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 말은 인권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를 북한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의미인가.

“그건 조금 다른 문제다. 진보 진영은 당연히 보편적 인권을 지지하고, 그 원칙을 전면적으로 수용한다. 하지만 북한 인권문제는 보다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1970년대에 카터 미 대통령은 한국에 인권외교를 적용해 주한미군 철수를 위협했다. 당시 한국의 보수세력은 ‘인권문제는 물밑 외교로 조용히 해결해야지 카터처럼 하면 실제로 해결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다. 당시 조용한 외교를 주장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북한에 할 말은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보수세력에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북한 인권문제를 빼고 다른 문제들, 예컨대 국보법 폐지나 과거사 정리와 같은 사안들에선 보수세력의 입장이 과거와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북한의 특수한 상황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지금 북한 주민들에겐 굶지 않는 것이 당면 과제다. 그런 상대에게 인권의 세계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북한의 기아 해결을 위해 먼저 지원해주고, 그 위에서 점진적으로 정치적 권리 신장의 단계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북한 문제에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런데 이 정부가 과연 실용주의적인 대북정책을 해왔는가에 대해선 의문이 있다.

“북한 지원에 대해 보수 언론은 ‘퍼주기’라고 비판하지만, 나는 실용주의적인 접근이라고 본다. 일각에선 북한 군인에게 혜택이 간다는 시각도 있지만, 어쨌든 당장의 기아 해결에 도움이 되고 있지 않은가. 대북지원을 정치적 사안과 연계하는 것은 실용적인 접근이 아니라고 본다. 물론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는 정부가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런 데에서까지 정부가 머뭇거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지금 정부는 세금을 더 거둬서 양극화를 해소하겠다고 나서는 것 같다. 더 큰 정부, 더 큰 국가를 지향한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가.

“모든 사안을 시장에만 맡기면 안 된다는 데 동의하지만, 그리고 국가는 필요한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떠맡아야 하지만, 그것이 큰 정부로 가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세금을 늘려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곤란하고, 오히려 국가와 기업, 시민사회 간에 협치(協治)가 이뤄져야 한다. 이것이 ‘거버넌스(governance)’다. 앞으론 정부가 할 일을 시민사회와 함께 협력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한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분배하는 것이 과거 진보의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성장촉진형 분배가 돼야 한다. 예를 들어 복지 예산을 그냥 못사는 사람들에게 나눠줄 게 아니라 일자리 창출에 투입해야 한다.”

-뉴레프트는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모두 극복하는 ‘제3의 길’을 모색하겠다고 공언했다. 우리가 전범(典範)으로 삼을 외국의 모델이 있다고 보는가.

“한국적인 모델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우리의 경우 복지국가가 등장하기도 전에 신자유주의가 대세를 장악했다. 진보적 지식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한국의 새로운 사회경제 모델의 도출을 고민할 것이다.”



주간동아 2006.02.14 522호 (p20~21)

송문홍 기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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