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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水原 믿었다 13억원 ‘채무자 신세’

영덕郡, 기업인 돈 빌려 방폐장 유치戰 … “원칙 위반 보전 거부”로 낭패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韓水原 믿었다 13억원 ‘채무자 신세’

韓水原 믿었다 13억원 ‘채무자 신세’

김병목 영덕군수가 S건설 K 사장에게 써준 확약서와 한수원이 방폐장 유치전에 뛰어들었던 자치단체에 보낸 공문(왼쪽). 한수원은 이 공문에서 방폐장 유치와 관련한 각종 경비를 보전하겠다고 밝혔다. 2005년 8월24일 경북 영덕군 핵폐기장 설치반대 대책위원회 소속 회원 200여명은 영덕읍에서 `방폐장 유치를 반대하는 궐기대회를 했다.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장(이하 방폐장) 부지 선정과 관련, 한 기업인에게서 13억원을 빌려 유치 경쟁에 나섰던 기초자치단체가 돈을 갚지 못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 경북 영덕군과 김병목 군수가 그 주인공.

김 군수는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한수원·사장 이중재) 등 관계기관이 돈을 빌려 유치활동을 하면 소요 경비는 보전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돈을 빌려 방폐장 유치전에 나섰다. 그러나 방폐장 부지가 선정된 직후 경비 보전을 약속했던 한수원 측이 “홍보활동 기간(2005년 6월16일~9월15일)에 쓴 돈과 자치단체 예산임이 밝혀진 것만 보전해준다는 원칙을 위반했다”며 영덕군의 유치활동비 보전을 거부해 졸지에 채무자로 전락한 것.

조만간 영덕군 예산 가압류 신청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진 것은 영덕군에 돈을 빌려준 S건설 K 사장도 마찬가지. 그는 “한수원 이중재 사장이 자금을 지원하면 나중에 보전하고 건설 물량도 배정하겠다고 한 약속을 믿고 투자했는데 결국 원금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며 법정 투쟁을 선포했다. 이에 대해 한수원 강신헌 홍보실장은 “이 사장은 ‘도와주면 지원금은 국가가 보전해준다’는 말은 했지만 다른 약속을 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K 사장은 조만간 영덕군 예산에 대한 가압류 신청을 할 예정. 이와 별도로 김병목 영덕군수와 한수원 이 사장을 사기혐의로 고소할 예정이다. 이 사장이 자치단체와 사기업을 속여 방폐장 유치전에 동원했다는 것이 고소 내용의 골자. 19년 한을 푼 방폐장은 날개를 달고 비상을 시작했지만 그 이면에 자리 잡은 갈등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13억원을 둘러싼 K 사장과 영덕군, 한수원의 악연은 2005년 5월 말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국전력 내 이 사장 집무실에서 시작됐다. 당시 K 사장은 김영삼(YS) 정권시절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광일 전 의원의 보좌관 K 씨, 국책사업 영덕추진위원회 준비위원장 N 씨 등과 함께 이 사장을 만났다. K 사장에 따르면 이날 회동은 3시간쯤 이어졌다. K 사장이 전하는 이 사장의 발언 내용.

“영덕군을 도와줘라. 부안군에 수백억원을 투자했는데 부지 선정에 실패했다. 방폐장은 절대 위험하지 않다. 도와주면 지원금은 나중에 정부가 보전해준다. 방폐장이 유치되면 대규모 건설 물량이 생기고, S건설도 이 공사에 참여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함께 참석했던 N 씨 등 영덕군 측도 건설 물량 등을 거론하며 K 사장의 투자를 유도했다. 이 사장을 만난 일주일쯤 뒤인 6월5일, K 사장은 N 씨가 지정한 통장에 1000만원을 넣는 것을 시작으로 영덕군의 방폐장 유치전에 동참했다. 16일과 17일 각각 1000만원과 2000만원을 입금하는 등 K 사장은 N 씨 등이 요구할 때마다 돈을 보냈다. 9월25일에는 “방폐장 건설을 반대하는 단체들의 일본 견학 경비가 필요하다”는 N 씨의 지원 요청을 받고 2000만원을 송금하기도 했다. 이렇게 4개월에 걸쳐 K 사장이 지원한 돈은 2억2600만원.

韓水原 믿었다 13억원 ‘채무자 신세’

S건설 K 사장이 영덕군이 지정한 계좌에 입금한 영수증.

이때까지만 해도 K 사장은 한꺼번에 큰돈을 주지 않고 탐색전을 벌였다. 영덕군이 방폐장을 유치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

그런데 10월 중순, 방폐장 유치 경쟁에 나선 지자체 가운데 영덕군의 유치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이 돌았다. 영덕군도 적극적으로 나서 유치전을 벌였다. 문제는 자금이었다. 10월24일 김 군수는 ‘일금 10억원을 영덕군 방폐장 유치 신청을 위한 관계법에 의거, 홍보활동비로 사용해도 추후 보전금으로 처리할 것임을 확약함’이라는 내용의 확약서를 K 사장에게 써주고 지원을 요청했다. 김 군수의 확약서를 받아든 K 사장은 10월24일부터 11월1일까지 총 11회에 걸쳐 10억7800만원을 입금했다(입금 영수증 참조). 앞서 19회에 걸쳐 입금한 2억2600만원 등 K 사장이 영덕군 측에 전달한 자금은 모두 13억2000만원에 이른다.

그러나 K 사장의 풀베팅에도 방폐장 유치는 실패로 끝났고, 동해의 거점도시로 발돋움하려던 김 군수와 영덕군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대규모 건설 물량을 기대했던 K 사장도 마찬가지. 남은 것은 각자가 거머쥔 계산서를 정산하는 일뿐이었다.

이때부터 K 사장과 김 군수, 한수원 간에 갈등이 시작됐다. 먼저 K 사장이 확약서를 들고 김 군수를 다그쳤다. 김 군수는 한수원을 상대로 방폐장 유치와 관련한 각종 홍보비용 등에 대한 보전을 요청했다. 그러나 방폐장 부지 선정 작업이 끝난 한수원은 “K 사장과 김 군수가 주고받은 돈은 한수원의 보전 기준과 원칙에 위배된다”며 보전 불가 입장을 통보했다. 한수원 최성환 부장은 보전 불가 배경을 2가지 이유로 설명했다.

“지자체가 쓴 홍보활동비는 지자체 예산임이 증명돼야 한다. 사업절차가 공고된 6월16일에서 9월15일까지 써야 한다는 규정도 지켜져야 한다. 그래야 사업자가 정보활동비를 지원하더라도 주민투표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K 사장이 영덕군에 지급한 13억원 대부분은 사인(私人) 간 거래 성격이 짙을 뿐만 아니라 지급 시기(10월23일)도 문제가 있다.”

최 부장은 “영덕군뿐만 아니라 타 자치단체도 이런 식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홍보비 보전을 둘러싸고 자치단체와 한수원의 갈등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 같은 사태를 지켜보는 중앙정부는 난감한 표정이다. 산업자원부 원전사업기획단 한 관계자는 “K 사장과 영덕군의 거래는 사인 간의 거래로 볼 수밖에 없다”며 “이 경우 원칙적으로 보전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K 사장과 김 군수는 정부의 이런 지적에 대해 정면으로 반발한다. “자금의 사용 시기나 출처를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그 돈이 홍보활동비에 제대로 쓰였느냐가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K 사장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4차례에 걸쳐 한수원을 찾아가 항의했지만 한수원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김 군수도 1월 이희범 산자부 장관을 만나 지원을 요청하는 등 정치적 해결책을 모색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韓水原 믿었다 13억원 ‘채무자 신세’

방폐장 유치를 위해 영덕군이 만든 홍보물.

이와 관련 한 자치단체 관계자는 “한수원이 당초 약속과 달리 까다로운 보전 원칙을 적용하고 있어 방폐장 유치에 나섰던 4개 자치단체가 조만간 회동, 이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을 경우 방폐장 유치를 둘러싼 자치단체의 대규모 항의시위가 예상되고 영덕군이 앞장설 가능성이 높다.

영덕군이 기업인에게서 빌린 13억원과 관련한 논쟁은 정치적인 문제와 법률적 문제로 나뉘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치적 논쟁의 핵심은 한수원 이 사장의 발언. K 사장에게 투자를 권유하며 건설 물량을 확보해줄 것이라는 약속을 했느냐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K 사장의 태도는 단호하다. “나는 사회사업가가 아니라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인이다. 누울 자리도 보지 않고 발을 뻗었겠는가. 정부기관의 책임자(한수원 사장)의 확인 없이 내가 왜 가본 적(영덕)도 없고, 만난 적(김병목 군수)도 없는 사람에게 13억원을 투자했겠는가. 원금을 보전하고, 건설 사업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투자한 것이다.”

이와 관련 한수원은 ‘주간동아’에 보낸 공문을 통해 “도와주면 지원금은 국가가 보전해준다는 말은 했지만 방폐장 건설과 관련해 S 건설에 건설 물량을 배려하겠다는 약속을 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한수원의 경비 보전 불가 방침으로 인해 궁지에 몰린 사람은 김 군수. 그는 “방폐장을 유치, 지역을 발전시키려는 의욕이 앞서 일을 추진하다 이런 처지에 빠졌다”며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당초 김 군수는 방폐장 유치에 나섰던 경주나 포항 등과 달리 재원 마련에 한계를 느껴 포기하려 했다. 그런 그가 유치전에 뛰어들어 ‘무리수’를 둔 이유는 무엇일까. 회한에 찬 김 군수의 말이다.

“주변에서 부추겼지만 당시 가용 예산이 5억원밖에 없어 유치전에 나설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산자부, 한수원 사람들을 만나니 일단 금융기관이든 개인이든 자금을 빌려서 홍보활동에 나서면 나중에 보전하겠다고 말하더라. 그 말을 듣고 여기저기서 자금을 빌렸다.”

방폐장 부지 선정과 관련해 영덕군에 홍보활동비를 지원한 기업인은 K 사장 외에도 서너 명이 더 있다. 김 군수도 사비를 털었다. 물론 모두 정부의 보전 원칙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한수원은 1월11일 경주를 비롯해 포항, 군산, 영덕군 등 방폐장 유치 경쟁에 나섰던 자치단체에 주민의견 수렴비 등 경비 보전 방침을 알리는 공문을 보냈다. 영덕군을 제외한 나머지 자치단체는 2월2일 현재 관련 서류를 제출했다. 한수원 사업전략처 사업관리실 한 관계자는 “4개 자치단체가 보전을 요구한 돈은 수십억원 규모”라고 할 뿐 구체적인 금액을 밝히진 않았다.

방폐장 부지 선정 작업이 끝난 지 3개월. 19년의 한을 푼 방폐장은 고도 경주의 품에 안겨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유치전에 나섰던 자치단체들은 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주간동아 2006.02.14 522호 (p12~14)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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