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0

2005.08.30

호주 이슬람원리주의자 ‘공공의 적’?

극단적 과격 메시지 아랍 청년에게 큰 영향 … “사회이념 반기, 시민권 박탈” 여론 고조

  • 애들레이드=최용진/ 통신원 jin0070428@hanmail.net

    입력2005-08-25 18: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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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 이슬람원리주의자 ‘공공의 적’?

    호주에 있는 이슬람 사원.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이슬람교도와 비(非)이슬람교도다. 이들은 영원히 친구가 될 수 없다.”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이 한 말이 아니다. 현재 호주에 살며 호주식 교육을 받고 자란, 호주의 과격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이 공공연히 내세우는 말이다. 이들은 런던 폭탄 테러 사건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호주식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있다.

    과격 이슬람원리주의를 신봉하는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샤이크 칼리드 야신(53)은 런던 폭탄 테러가 일어난 지 10일쯤 지났을 때 시드니의 뱅스타운 타운홀에서 강연을 했다. 강연의 핵심은 호주에 살고 있는 모든 아랍 청년들이 이슬람원리주의 사상과 반대되는 호주의 민주적 사고방식을 따르지 말자는 것. 특히 야신은 “이슬람교의 율법을 따르기 위해 필요하다면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강변했고, “호주인들이 이슬람교도의 문화양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자기들만의 시각으로 테러 사건을 비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호주인은 하수구 물 출신”

    호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또 다른 과격 이슬람원리주의자인 샤이크 모하마드 옴란(43) 역시 “이슬람교도와 호주인은 출생부터 엄연한 차이가 있다. 이슬람교도는 성수에서 태어난 사람이지만, ‘다양성을 인정하는’ 호주인은 더러운 하수구 물에서 나온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호주 이슬람원리주의자 ‘공공의 적’?

    과격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을 연일 비판하고 있는 호주 언론들.

    호주 멜버른의 한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담당하고 있는 압둘 나서 벤브리카(42)는 학생들에게 “호주와 미국에 성전을 선언한 오사마 빈 라덴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라고 가르쳤다. 그는 16년 전 알제리에서 이민 온 호주 시민권자로 여러 개의 스터디 그룹을 조직해 이슬람원리주의를 가르치고 있다. 벤브리카는 8월5일 호주 ABC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테러 사건들의 발단은 미국이 먼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힘으로 제압했기 때문”이라며 “많은 아랍 청년들이 자신들의 주장이 관철될 때까지 호주를 포함해 미국을 돕고 있는 모든 서방 국가들에 테러를 자행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제는 이런 과격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의 주장이 호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많은 아랍 청년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런던 테러범들이 영국에서 태어나 영국식 교육을 받고 자란 평범한 아랍계 영국인들이었다는 점에서 아랍계 호주인들 역시 테러범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호주 이슬람원리주의자 ‘공공의 적’?

    ①② 이슬람원리주의 지도자 샤이크 칼리드 야신과 샤이크 모하마드 옴란. ③④ 현재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의 주장이 강연 등을 통해 호주에서 나고 자란 아랍 청년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이슬람원리주의를 지나치게 내세우며 호주 사회의 정서에 반하는 이념을 가르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야신은 아랍 청년들에게 “아내가 남편의 말을 거역하면, 남편은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실제로 얼마 전 과격 이슬람원리주의의 영향을 받은 파키스탄 이민 2세 청년들이 10대 백인 소녀들을 강간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용의자들은 오히려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소녀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극단적인 종교적 신념에 호주 여론은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목사 데니 나리바는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은 그들의 종교적인 이념대로 호주 사회를 양분화하려 한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호주 정치권에서도 호주의 사회적 이념을 거부하고 테러에 가담한 사람에 한해서 시민권 박탈을 고려하고 있다. 자유민주당 의원인 스티븐 시오보는 “테러를 지지하고, 테러 사건에 가담하거나 협조한 사람들은 호주 시민권을 영구히 박탈해야 한다”며 “종교적 이유라도 폭력을 정당화하고 타인에게 직접 폭력을 행사하는 어떤 행위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녹색당의 상원의원인 보브 브라운 역시 “누구든 호주라는 나라를 싫어한다면 이곳을 당장 떠나라”고 주장했다.

    “싫어한다면 당장 떠나라”

    호주 시민 상당수는 “과격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이 호주 정부에서 제공하는 사회보장 혜택은 다 받으면서 평등과 조화를 강조하는 호주식 사회이념을 비판하는 것은 매우 이기적인 행동”이라며 과격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의 시민권 박탈을 지지하는 정치인들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당 당수 킴 비즐리를 비롯해 상당수 정치인들은 호주 사회와 정치 이념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시민권을 박탈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반응이다. 직접 테러를 행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호주 사회와 정치 이념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이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 역시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호주의 정치 이념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존 하워드 총리는 과격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의 호주 시민권 박탈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으면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호주 사회와 이슬람교도들을 나누려는 과격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의 행동에는 커다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테러의 정당성을 공공연히 주장하는 것은 큰 문제”라며 “테러 방지 차원에서라도 호주 정부는 서서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이들 과격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을 철저히 감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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