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0

2005.08.30

정보 짱 재미 짱 ‘행복한 데이트’

  •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기획팀 차장 khmzip@donga.com

    입력2005-08-25 16: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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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 짱 재미 짱 ‘행복한 데이트’

    출판계에 불어닥친 ‘삼순이 후폭풍’이나 인기 오락 프로그램의 내용을 책으로 펴낸 ‘스펀지’와 ‘비타민’의 성공에서 보듯, 책과 TV의 만남은 기대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거두고 있다.

    7월21일 마지막 회에서 50.5%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드라마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출판계에 불어닥친 ‘삼순이 후폭풍’은 좀처럼 가실 줄을 모른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원작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지만, 원작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소설 ‘모모’나 시집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이 최대 수혜자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소설 ‘모모’는 독일 작가 미하일 엔데가 1970년에 발표한 동화로 70년대 후반 한국에 소개됐으며, 정식 저작권 계약을 맺고 비룡소에서 출간한 것은 1999년의 일이다. 지난 7년 동안 22만부가 팔린 스테디셀러가 한 달 사이 20만부를 기록하며 초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삼순이 효과’라는 말밖에는 답이 없다.

    ‘모모’ ‘사랑하라…’ 삼순이 효과로 베스트셀러

    이에 비해 류시화 시인이 엮은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은 삼순이에 편승해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말이 억울하다. 올 3월에 나온 이 시집은 6개월 만에 20만부가 나갔으며, 교보문고가 발표한 2005년 상반기 베스트셀러 분석에서도 시집으로는 유일하게 9위를 차지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이후 이어진 ‘류시화 효과’에다 ‘삼순이 효과’가 얹어져 대박으로 이어졌다는 말이 합당하다.

    ‘파티시에’라는 삼순이의 직업 덕분에 요리책도 잘 나간다. 대한민국 최고의 제과명인이라 불리는 김영모 씨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낸 요리책 ‘김영모의 빵 케이크 쿠키’(동아일보사)는 2002년에 출간돼 현재까지도 홈베이킹 분야에서 교과서로 통한다. 그런데 이 책이 7~8월에는 다른 달에 비해 3배쯤 더 팔렸다.



    이 정도이니 방송을 향한 출판의 짝사랑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몇 년 전 MBC TV 프로그램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특수로 출판계가 들썩들썩할 때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당시 ‘느낌표’ 선정도서가 되면 수십만 부는 보증수표였다. ‘출판계 로또복권’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했고 ‘다음번 로또는 누가 당첨되느냐’가 단연 화제였다. 요즘은 ‘삼순이 효과’를 톡톡히 본 출판사가 상당한 협찬금을 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이에 대해 출판사 측은 “드라마를 보고서야 우리 책이 나온 줄 알았다”며 펄쩍 뛴다. 방송 직후 일부 서점에서 책이 없어 못 팔았다는 것을 보면 출판사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음이 분명하다.

    이런 해프닝은 방송과 출판을 강자와 약자의 구도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생긴다. 여기서 책은 TV에 의해 일방적으로 선택되는 미미한 존재로 전락한다. 과연 그럴까? 드라마 삼순이에서 소설 ‘모모’ 없이 삼순이가 미주(부모를 잃고 말을 잃어버린 진헌의 조카)에게 다가가는 장면을 상상하기 어렵다. 또 마지막 회 소제목으로도 쓰인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은 구구절절한 설명 필요 없이 삼순이의 당당한 인생관을 말해주는 훌륭한 장치다. 한마디로 책이 없었다면 긴 여운을 남긴 드라마의 깔끔한 결말도 없었을 것이다.

    드라마 원작소설 ‘내 이름은 김삼순’을 펴낸 눈과마음 출판사도 할 말이 있다. 주위에서는 어느 날 드라마화가 결정돼 단숨에 ‘뜬’ 신데렐라 같은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출판사 측은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이 순간을 준비해왔다. 이 출판사가 주력해서 내고 있는 로맨스 소설들은 20, 30대 여성을 대상으로 이들의 주 관심사인 사랑과 결혼을 다루기 때문에 드라마 작가들에게는 훌륭한 소재가 돼왔다. 처음에는 방송국에서 소설을 보고 연락을 해오는 식이었다가, 나중에는 출판사 쪽에서 미리 방송 드라마에 적합한 소설의 줄거리와 관련 정보를 넣어 시놉시스를 보내면 드라마 기획자들에게서 “책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는 관계로 바뀌었다고 한다. 눈과마음 출판사의 강민구 사장은 “방송국 쪽에서 아이디어가 필요하면 이런 상황에 맞는 책이 없는지 문의가 온다”면서 “그러나 지수현 작가는 마니아 독자를 거느리고 있어 드라마로 만들어지지 않아도 인기가 있다”고 강조했다.

    어쨌든 책과 TV의 만남은 출판계에 기대 이상의 시너지를 가져오고 있으며 만남의 방식도 진화하고 있다. 방송의 신간 안내 코너에 소개되고, 책이 드라마 소품으로 사용되는 차원에서 나아가 요즘은 방송 내용이 그대로 책이 되고 있다. KBS의 인기 오락 프로그램을 책으로 펴낸 ‘스펀지’와 ‘비타민’이 좋은 예다. ‘스펀지’는 2월 1권이 나와 현재 2권까지 나온 상태. 두 권 합쳐 30만부가 넘게 팔렸다. 7월 중순에 선보인 ‘비타민’은 8월 초반 이미 4만부를 넘기며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건강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 비타민의 한 코너인 ‘위대한 밥상’도 요리책으로 나왔는데, 한 프로그램을 소스로 비슷한 시기에 두 권의 책이 출간되는 기록을 세웠다.

    제2 스펀지·비타민 출판 줄 이을 것

    이전에도 방송 원고를 토대로 책을 낸 경우는 많지만 ‘스펀지’나 ‘비타민’처럼 마치 녹화 테이프를 보는 것처럼 방송의 느낌을 생생하게 재현한 경우는 드물다. ‘스펀지’ 책을 보면 칠판에 적힌 ‘황당한 문제’를 앞에 놓고 여러 패널들이 옥신각신하며 풀어가는 과정을 옮겨놓아 단순 문답풀이식 퀴즈 책이나 상식 백과사전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비타민’ 또한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정확한 건강 정보를 기본으로 매회 연예인들이 자신의 건강 상태를 공개하는 것으로 화제가 된 프로그램이다. 책으로 나온 비타민’은 역시 톱스타 22명의 부위별 진단 및 맞춤 처방을 공개하는 등 읽는 재미를 더했다.

    ‘스펀지’와 ‘비타민’의 성공은 인기 프로그램을 책으로 만들면 성공 확률이 높다는 것을 재확인하게 해준 동시에, 오락 프로그램도 얼마든지 책으로 기획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초기에는 이미 방송된 내용을 누가 돈 주고 책으로 사서 보겠느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방송에서 놓친 부분들을 책으로 보고 싶다는 욕구가 훨씬 컸던 것. ‘스펀지’ 프로그램에서 진행되는 각종 과학실험에 조언을 해온 한양대 과학교육연구센터의 황북기 교수는 “초등학생들한테서 ‘스펀지’에서 봤는데, 정말 그런가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스펀지’ 효과를 실감한다”면서 책으로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에 반가움을 표시했다.

    앞으로 제2의 ‘스펀지’, 비타민’ 출판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적 효과가 높은 방송 프로그램을 선별해서 효과적으로 책 속에 담아내는 것은 출판인들에게 남겨진 과제다. 당분간 책과 TV의 행복한 만남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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