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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은 터키 상공을 날고 싶다

아시아나 노선권 실효에도 취항 못해 … 노선권 못 내주는 건교부는 ‘죽을 맛’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대한항공은 터키 상공을 날고 싶다

대한항공은 터키 상공을 날고 싶다
유럽과 아시아란 이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유럽은 메소포타미아(지금의 이라크를 중심으로 한 중동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서쪽 땅’ ‘해가 지는 곳’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던 ‘에레브(ereb)’란 단어에서 나왔다. 그리고 아시아는 그리스 반도에 살던 사람들이 ‘동쪽 땅’ ‘태양이 떠오르는 곳’이라는 뜻으로 쓰던 ‘아수(asu)’라는 말에서 비롯됐다.

아시아나 ‘코드셰어’로 항공권 판매

대한항공은 터키 상공을 날고 싶다
원래 유럽은 그리스, 아시아는 터키를 뜻하는 단어였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터키가 있는 지역은 소아시아로 불린다.

터키 영토는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있다. 터키 영토의 97%는 소아시아란 뜻을 가진 아나톨리아 반도에 있고, 1600여년간 터키인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은 유럽에 있다. 이스탄불은 유럽에 4분의 3, 아시아에 4분의 1을 두고 있는 아주 진기한 도시이다.

터키 속, 아니 이스탄불 속에 있는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경계선은 보스포루스 해협. 이 해협은 흑해에 있는 러시아 함대가 지중해를 거쳐 대서양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이 터키와 우호 관계를 맺고 이 해협을 철저히 틀어막아 왔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관문이고 바다를 제압하는 ‘진해(鎭海)의 도시’였기에, 이곳에선 숱한 세력이 문명을 쌓아올렸다. 그리스인의 식민지, 페르시아의 영토, 알렉산더의 도시, 로마의 수도, 비잔틴의 땅을 거쳐 오스만제국의 심장이던 이곳은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수도의 자리를 앙카라에 넘겨줬다. 그러나 이스탄불은 여전히 터키의 중심으로 번창하고 있다.

이곳은 기독교와 이슬람도 병존(竝存)한다. 그러나 한때는 오월(吳越)이 동주(同舟)하듯 힘든 공생 기간도 있었다. 이슬람이 이 땅의 주인이 된 뒤 전 주인이던 서구의 기독교인들이 십자군을 구성해 몰려옴으로써 피비린내 나는 격투가 벌어졌던 것.

그러나 혈투는 역사로 남고 흔적은 문화로 남아 지금은 세계 관광객을 빨아들이는 요소가 되었다.

일본과 중국, 미국, 유럽을 다녀본 한국 관광객들은 이제 터키라고 하는 새로운 무대로 활발히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불과 2, 3년 사이에 일어났다. 기점은 한국과 터키가 맞붙었던 2002년 한일월드컵 3, 4위전.

대한항공은 터키 상공을 날고 싶다
1996년 4월 한국과 터키는 ‘각 한 개의 항공사를 취항시킨다’는 내용을 담은 항공협정을 체결함으로써 파리나 프랑크푸르트에서 항공기를 갈아탄 후 이스탄불을 방문했던 한국인들은 ‘다이렉트’로 이스탄불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 정부는 근거리 노선은 아시아나, 원거리는 대한항공이라는 원칙으로 노선을 배분했는데, 터키는 근거리에 해당하는 아시아에 97%의 영토를 두고 있는지라 아시아나에 터키 노선을 주게 되었다.

대한항공 임시편 편법 제공

아시아나는 97년 5월부터 터키 노선 운영에 들어갔으나 승객이 없었다. 이런 가운데 IMF 외환위기가 터져 더욱 승객이 줄어들자 98년 10월부터 이 노선 취항을 중단했다. 터키항공도 운항 중단에 들어갔으나 2000년 3월 다시 부활시켰다.

그 직후인 2000년 5월 아시아나는 터키항공과 ‘터키항공이 운항하는 항공기의 좌석을 임대해 판매한다’는 계약을 맺고 양국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아시아나는 이스탄불 노선에 항공기를 투입하지 않지만 코드셰어(편명공유·좌석공유) 방식으로 항공권을 판매하게 된 것.

그러는 사이 2년 6개월이 지났다. 항공 관련 법령은 2년 6개월간 운항하지 않는 노선은 실효되고, 이 노선은 정부가 환수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2001년 4월 정부는 아시아나에 주었던 터키 운항권을 환수하였으나 이때는 터키 여객 수요가 없었으므로 아시아나는 물론이고 대한항공도 노선권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1년 후 열린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터키 붐이 일자, 2003년 10월부터 양 항공사는 앞 다퉈 터키 취항권을 정부에 요청하게 되었다. 이 경쟁에서 불리한 것은 노선권을 반납한 적이 있는 아시아나였다. 대한항공으로서는 어렵지 않게 항공권을 받아낼 것으로 판단됐는데,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났다.

2000년 5월 아시아나가 터키항공과 맺은 상무협정이 바로 그것. 이 협정은 양국 정부가 승인한 것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대한항공에 터키 취항권을 준다면, 이는 2000년 5월 정부가 승인해준 상무협정 승인을 부정하는 행위가 된다. 아시아나가 이를 문제 삼아 대한항공에 운항권을 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정부는 꼼짝 못하고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

그로 인해 정부는 터키항공과 아시아나가 맺은 협정이 폐지돼야 대한항공에 노선권을 줄 수 있다는 궁색한 답변을 내놓게 되었다. 법망 때문에 대한항공에 노선권을 주지 못하게 된 정부는 대한항공에 임시편을 만들어 터키에 취항케 하는 편법을 썼다.

대한항공은 터키 상공을 날고 싶다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성당.

아시아나와 터키항공이 맺은 상무협정은 ‘어느 한쪽이 협정 취소를 결정해 이를 통보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실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터키항공으로서는 아시아나와의 관계가 있으므로 섣불리 협정 폐지를 통보하지 못하고 있다. 법령에 따라 행정을 집행하는 정부가 법령에 걸려 행정을 집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항공편 노선권 문제를 담당하는 건설교통부의 관계자는 “우리도 죽겠습니다”를 반복했다.

아시아와 유럽을 겸비한 이스탄불은 한국인을 부르고 있다. 정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터키항공만 서울-이스탄불 노선을 바쁘게 오가고 있다. 한일월드컵을 원망해야 할지 정부를 원망해야 할지…. ‘관광 대국’터키를 찾는 관광객은 급증하는데 여행 통로는 넓어지지 않는 동맥경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주간동아 2005.08.30 500호 (p24~25)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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