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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식 균형추’ 역할은 끝났다

1년 6개월간 개혁과 보수 가교 구실 … 참여정부 집권 후반기 격랑 넘을 새 인물 필요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김우식 균형추’ 역할은 끝났다

‘김우식 균형추’ 역할은 끝났다
2005년 1월 김우식 대통령비서실장은 퇴진 위기에 몰렸다. 이기준 교육부총리 인사 파문에 대한 책임 문제 때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인사 책임을 물어 정찬용 인사수석, 박정규 민정수석의 사표를 수리하는 대신 김 실장을 유임시켰다. 당시 언론은 그를 유임시킨 노 대통령의 의도에 강한 의문을 표했다. 노 대통령은 이 부총리의 인사와 관련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고 했고, 그 경우 김 실장이 타깃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 실장은 유탄을 피해 건재했다. 어떤 배경이 작용했을까. 당시 청와대 사정에 정통했던 여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2004년 말부터 노 대통령은 ‘관용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는 국정운영 기조를 분열과 대립보다는 국민통합에 둘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고, 바로 여기에 김 실장의 역할이 숨어 있었다.”

노 대통령 정치적 변화 모색

화해와 관용의 국정운영 기조를 보좌하는 데 김 비서실장이 적임자라는 게 노 대통령의 판단이었고, 이 때문에 경질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 실제 김 실장은 당시 재계·교계·언론계의 보수층 인사들을 집중적으로 만나 국민통합을 향한 정지 작업에 나섰다. 김 실장이 당시 만났던 인사들은 주로 노 대통령에게 반대해온 세력들. 이들 대부분은 참여정부 인사들과 연이 거의 없다는 특징을 가진 그룹으로 참여정부의 사각지대에 존재하고 있었던 셈. 따라서 그들과의 채널을 형성하고 대화가 가능했던 김 실장의 자리는 상대적으로 크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김 실장은 이후 개혁과 보수라는 양 날개의 중심 축을 맡아 실용노선을 추구하며 균형을 잡는 구실을 했다. 노 대통령은 이런 김 실장의 움직임에 상당히 만족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일부 진보적 시민단체와 개혁세력 등은 김 실장이 활동공간과 역할을 넓히는 것에 불만을 표출했다. 김 실장이 청와대를 지나치게 실용적이고 보수적으로 끌고 간다는 의혹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런 불만에 대해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개혁에 관한 한 노 대통령 스스로 누구보다 소신과 뚜렷한 원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문제제기에 자신감 있게 대처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6월 다시 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행담도 사건과 유전개발 의혹 사건이 발단. 당시 언론은 청와대 인사들이 개입된 이 사건과 관련하여 비서실장의 통제력에 의문을 표했고, 이를 읽은 김 실장이 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던 것.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때도 김 실장의 사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김 실장에게 연말까지 계속 실장직을 맡아달라고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실장의 사퇴는 이후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본인이 사의를 표명하고,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로 김 실장의 사퇴가 사실상 확정됐다. 불과 한두 달 전까지 할 일이 남아 있었고, 왕성하게 활동했던 김 실장의 갑작스러운 사퇴 배경은 무엇일까. 운명이 바뀌게 된 데는 몇 가지 정치적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를 발탁했던 정찬용 전 인사수석은 역할 완성론으로 그의 사퇴를 설명했다.

“1년 수개월 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과 몫을 다했다고 본다. 그래서 떠나는 것 아니겠는가. 남은 임기 동안 대통령이 더욱 편안하게 인사를 하며 국정을 펼쳐나갈 수 있게 배려한 것이라고 본다.”

정 전 수석은 김 실장의 발탁 과정을 되짚어보면 사퇴 배경도 잡힌다고 말한다. 그의 말이다.

“김 실장은 젊고 패기 있고 개혁적인 대통령에게 안정감과 무게를 채워주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발탁했다. 연세대 총장 출신인 그의 중후한 이미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분은 일을 매우 꼼곰하게 했다. 정치인은 큰 줄거리만 보는데, 그는 꼼꼼하게 일을 챙기며 청와대의 안정감을 강화시켰다.”

이런 꼼꼼함을 바탕으로 김 실장은 1년 6개월 재임 기간 동안 청와대를 안정시켰고, 보수와 진보의 가교 구실을 했다. 노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각계에 알리는 데 주력, 참여정부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도 큰 몫을 담당했다.

조만간 부총리급 다른 자리로

그러나 집권 후반기를 접어든 참여정부의 로드맵은 과거와 다를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의 정국 인식도 달라졌고, 그에 따른 비서실장의 역할과 기능도 새롭게 조정되어야 했다. 분명한 것은 새로 그린 참여정부 후반기 청사진은 김 실장과 같은 안정형 비서실장이 아닌, 정무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추가됐다는 사실이다. 다른 말로 하면 노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집권 후반기로 접어든 노 대통령은 가장 먼저 친정체제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좀더 강력한 개혁과 국정과제를 수행하고 레임덕을 방지하기 위해 동질감이 강한 인사들의 전진배치는 필수적 사안이다. 특히 노 대통령의 집권 하반기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심한 정치적 굴곡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당장 올 하반기 현안으로 등장한 국정원 불법 도청 사건과 과거사 청산 문제로 여야의 격돌이 불가피하다. 연말까지 끌고 가겠다는 노 대통령의 대연정 구상도 야당을 자극하는 인화성 강한 쟁점이다. 선거구제 개편도 타협이 쉽지 않은 현안이다. 이런 정치 일정과 이슈 등은 청와대에 더욱 역동적인 활동과 구실을 주문한다. 그러나 김 실장은 이런 격변기 청와대 내부를 단속하고 외부와 유연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 역할 수행이 서툴 수밖에 없다. 더욱이 내년 6월 지방선거가 끝나면 정치권은 급속히 개헌정국에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 차기 대권 주자들의 움직임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잘못하면 노 대통령은 정국을 이끌어갈 추진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

노 대통령으로선 점점 어려워지는 정치 환경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때문에 대안이 필요할 시점이다. 노 대통령은 당·정·청 전체에 대한 장악력을 유지하면서 정국 운영의 추동력을 유지해나갈 수 있도록 새로운 참모 진용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했을 수 있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기에는 김 실장의 정치적 색깔이 너무 단조롭다. 김 실장은 외인부대 출신으로 참여정부 주체들 처지에서 보면 용병에 불과하다.

노 대통령의 신뢰를 바탕으로 활동공간을 확보했지만 하루아침에 거품만 남을 수 있는 게 인간관계에서의 신뢰 문제다. 용병은 정치적으로 비주류다. 비주류는 정치적 보호막이 없어 정치적 격변기에 많이 흔들리는 특징이 있다. 김대중(DJ) 정부 시절 초대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중권 씨와 등장배경이나 정치적 역할, 위상 등이 비슷하다. 김중권 전 실장은 권력의 풍향에 따라 거센 외풍에 시달렸다.

김 실장은 조만간 부총리급 다른 자리를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주간동아 2005.08.30 500호 (p18~19)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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