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0

2005.08.30

검찰 살기 위해 국정원 때리기?

사상 첫 국정원 압수수색 전격 작전 … X파일 혼란 수습 바깥서 상황 연출 의혹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5-08-25 15: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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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 살기 위해 국정원 때리기?

    국정원 전경.

    서울중앙지검 유재만 특수1부장과 검사 8명, 대검 컴퓨터 분석 전문가, 그리고 감청 장비 관련 외부 전문가 등 40여명의 특공대가 국정원에 도착한 것은 8월19일 오전 9시쯤. 통상 밟는 압수수색 영장 제시 절차를 생략한 이들은 타고 온 7대의 검찰 차량을 그대로 몰고 청사 안으로 직행했다.

    유 부장과 40여명의 검찰 직원들이 정문을 통과하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30여초. 금단의 땅이자 40여년 성역으로 존재했던 국정원은 그렇게 쉽게 속살을 드러냈다. 국정원은 압수수색을 받은 세계 최초의 정보기관이란 수식어를 가슴에 달았다.

    정보 공룡 국정원을 상대하기 위한 검찰의 준비는 철저했다. 압수수색은 수사관들만 투입되거나 검사 1명이 현장에 나가 지휘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러나 국정원 무장해제에 나선 검찰은 우선 단일 기관에 대한 압수수색에서는 유례가 없는 검사 8명을 동원했다. 그 자체가 사건이다. 검찰 한 관계자는 “상당한 시간 동안 작전을 준비했고 직원들도 베테랑으로 엄선했다”고 말했다. 검찰의 준비작업을 지켜보던 한 직원이 “총격전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냈을 정도.

    철저한 준비 차량 몰고 직행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에서 특정 건물을 명시하지 않았다. 이는 서울 내곡동 국정원 청사 전체를 수색 대상으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압수수색 대상은 2002년 10월 해체된 국정원 감청담당 부서인 과학보안국 자료. 김영삼(YS) 정권 미림팀에 비해 자료가 턱없이 부족한 김대중(DJ)정부의 불법 감청 의혹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또 국정원이 아직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감청장비, 99년 9월 공운영(58·구속) 전 미림팀장으로부터 압수·폐기했다는 도청 테이프와 녹취록, 녹취보고서 등의 복사본 존재 여부도 주요 관심 대상이다.



    무엇보다 검찰의 눈과 귀 등 모든 촉각들은 현재 있을지도 모를 도·감청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참여정부 불법 감청 흔적에 대한 탐색 의지가 강하다. 이와 관련 검찰 한 관계자는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한 결과 국민의 정부는 물론 참여정부 출범 후에도 도·감청 작업이 계속됐을 개연성이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와 자료 등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고 다각도로 이를 분석했다고 말했다. 또 검찰 주변에서는 국정원에서 활동하다 정치권으로 자리를 옮긴 J 의원의 동선과 활동 공간을 유심히 본다. 그는 최근까지 국정원의 구석구석까지를 들여다보며 고급 정보를 뽑아내는 왕성한 정보수집 능력을 보였는데, 그의 주변에서 “참여정부도 도청을 한다”는 분위기가 감지됐기 때문. 압수수색 작업에 동행한 통신 전문가들은 국정원 감청장비를 직접 테스트하는 한편, 휴대전화 도청 가능 여부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한 관계자는 19일 “합법적 감청을 하는 부서 중심으로 검찰의 압수수색이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무당당했던 검찰의 국정원 접수작업이 순조롭게 끝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압수수색 후의 상황이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압수수색 성과에 대해선 평가가 각양각색이다. 국정원은 최근 발표에서 2002년 3월 도청 중단 이후 관련 장비는 모두 폐기했다고 밝혔다. 자료 역시 주기적으로 소각해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장비나 자료가 남아 있었다 하더라도 지난달 21일 미림팀의 존재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뒤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국정원이 은폐했을 가능성이 높다. 국정원이 스스로 국민의 정부 시절 도청이 있었다고 고백한 지도 2주일이나 지났다. 2002년 국정원의 휴대전화 도청 의혹 사건 당시 국정원 현장조사를 했지만 전혀 소득이 없었다.

    한강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

    유 부장과 40여명의 특공대원들이 국정원 접수에 나섰지만 그 이후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이 드는 이유다. 검찰 한 관계자는 압수수색을 “한강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라고 표현했다. 그는 “도청을 하는 기술이나 보안을 지키는 능력 등이 검찰 이상인 국정원이 앉아서 자료와 정보를 내놓겠느냐”고 압수수색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당초 국정원 압수수색에 부정적이었던 검찰이 전격적으로 칼을 빼드는 과정은 석연치 않다. 검찰은 국정원과 수사선상에 오른 전·현직 직원들이 수사에 협조적이지 않은 점에 불만이 많았다. 국장급을 포함한 현직 국정원 직원들이 소환에 불응했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검찰에 넘겨준 260여 쪽의 자료도 ‘부실’투성이였다. 이 때문에 지난주 말부터 압수수색 적극 검토로 선회했다. 검찰 한 관계자는 “국정원의 보호막에 상처를 낼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속을 파보면 검찰이 처한 정치적 상황을 모면하려는 역습의 성격도 짙게 배어 나온다.

    도청 X파일에는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10여명의 현직 검사 이름이 나온다. 당사자들이 부인해 명단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8월18일 이 가운데 7명의 이름을 발표했다. 발표 뒤, 이름이 거론된 김상희 법무부 차관이 사표를 냈다. 그 뒤를 ‘물타기용, 제식구 감싸기’라는 비난 여론이 잇따른다.

    검찰은 현재 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개별 사건에 대한 검사 수사지휘권을 둘러싸고 천정배 법무부 장관과 김종빈 검찰총장 간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천 장관의 “구체적 사건을 지휘·감독하겠다”는 발언에 대해 김 총장이 작심한 듯 “비합리적이면 승복하지 않겠다”고 반박하고 나선 것. 상황에 따라 수사권에 대한 정치권의 새로운 해석이 내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은 전 미림팀장 공운영 씨의 집에서 문제의 테이프를 압수한 직후 혼란에 빠졌다. 테이프 입수 사실을 이틀 뒤에야 언론에 공개할 정도로 우왕좌왕했다. 결국 검찰은 내부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바깥에 상황을 연출했다는 의혹을 피할 수 없다.

    검찰에 의해 무장 해제된 국정원에는 이날 비가 내렸다. 청사는 쥐죽은 듯 조용하고 깊은 침묵만이 흘렀다고 한다. 탈정치·탈권력을 향한 국정원의 그동안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많은 직원들은 허탈감에 빠져 빗속을 방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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