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3

2004.07.15

“한국인 해외 우수 과학자 애국심만으론 귀국 불가능”

  • 한국외국어대 과학사 교수/ parkstar@unitel.co.kr

    입력2004-07-08 17:4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지난 5월29일 최형섭 박사(1920~2004)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최형섭’이란 거목의 이름이 낯설게 여겨지는 이들도 많겠지만, 그는 한국 역사상 최장기 과학기술처 장관(1971~78)으로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고, 70년대 수출입국을 주도한 중화학공업의 육성을 책임진 과학지도자다. 하지만 그의 뚜렷한 공로는 61년 그가 문을 열고 5년간 소장직을 역임한 과학기술연구소(KIST)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연구소는 한국 최초의 현대식 과학기술 연구소라 할 수 있다. 초대 소장으로 부임한 그가 가장 중시한 일은 미국을 돌며 미국의 연구소나 대학에 자리잡고 있는 한국인 과학자들을 KIST의 연구원으로 유치하는 것이었다. 당시는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후진국들이 이른바 두뇌유출 현상(brain drain)으로 고민하던 때였다. 한국전쟁 이후 계속 미국으로 몰리기만 하던 한국 과학기술 인력이 KIST 설립을 계기로 해 드디어 조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1970년 최박사는 미국에서 한국인 과학기술자를 초청해오던 과정을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조건이니 대우니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과학자들이 말하는 대우란 결코 금전적인 대우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결국 얼마만큼의 돈을 주느냐보다 연구의 자율성•안정성, 연구환경 등이 더 중요한 셈이지요.” 최박사는 심지어 “미국에서는 한국인 과학자들이 한 달에 약 2000달러를 받으니까, 한국에서 월 500달러 정도면 생계에 위협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는 획기적인 얘기까지 했다. 과학자들은 돈이 많아도 쓸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고, 또한 금전적 대우가 과분하면 번 돈을 결국은 소비해야 할 테니까 연구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까지 한국 과학자들을 끌어왔던 최박사가 작고할 때쯤 한국의 언론은 다시 한국인 과학기술자의 두뇌 유출을 보도하고 있다. 다시금 한국의 과학기술 인력이 미국으로 쏠리고 있다는 의미다. 2002년 미국과학재단 자료에 따르면 99년 미국에서 10년 넘게 일하고 있는 한국 태생 과학기술(사회과학 포함) 관련 학위자는 모두 4만6700명(박사 4500명)이었다. 이는 규모로 보아 세계 8위며, 인구 대비로는 대만 필리핀 등과 함께 다섯손가락 안에 포함된다. 물론 이들은 거의 모두가 유학생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자리잡은 사람들이다. 최근 이공계 미국 유학생은 해마다 3000명이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90년대에는 경기호황과 일부 업계의 인력확보 정책으로 많은 이공계 미국 유학생이 한국으로 되돌아오기도 했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국내 과학기술자의 위상이 눈에 띄게 떨어진 탓인지 자연스레 귀환은 크게 줄었다. 99년 한국인 박사학위 취득자의 미국 체류계획 조사를 살펴보면 무려 70%가 넘는 사람들이 체류를 희망하고 있고, 그 가운데 46%가 실제로 체류한다고 조사됐다. IMF 이전의 25%에 비교할 때 심히 걱정스러운 일이다.

    지금은 40년 전 최형섭 박사가 말한 것처럼 이들을 금전적 대우가 아닌 애국심만으로 귀국하게 하기는 아예 불가능하게 됐다. 이들이 귀국해 일할 수 있는 연구소와 학교의 자리를 더 만들고, 더 나은 대우를 해줄 재원 확보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때가 된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