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3

2004.07.15

‘화씨 9/11’ 미국을 뒤흔들다

흥행 돌풍과 함께 숱한 화제 … 미 전역서 영화 성공 축하 파티, 개봉 후 부시 지지율 최저로

  • LA=신복례 통신원 borae@hanmail.net

    입력2004-07-08 16: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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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씨 9/11’ 미국을 뒤흔들다

    부시 대통령의 낙선을 겨냥해 만든,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화씨 9/11’의 포스터.

    한 편의 영화가 과연 세상을 뒤바꿀 수 있을까. 조지 부시 미 대통령 낙선을 겨냥해 만든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화씨 9/11’ 얘기다. 전망은 영화에 대한 찬반 논쟁만큼이나 엇갈린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대선까지는 아직 4개월이나 남아 있고, 미국이 최근 정치적으로 크게 양극화돼 있기 때문에 영향은 실제 별로 없을 것”이라고 관측한다. 정치학 교수들도 비슷한 의견을 보였다. 하지만 “‘화씨 9/11’이 공화당이나 민주당 우세지역 모두에서 고른 흥행 성적을 나타내고 있다는 건 변화에 대한 욕구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미국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느낌을 갖지 않기는 힘들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무어 감독 스스로는 이 영화가 겨냥하고 있는 유권자층은 존 케리 후보에게 마음이 끌리지 않는 민주당 지지자들과 제3후보인 랄프 네이더 지지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무어 감독, 유권자 투표 독려

    어쨌든 말 많고 탈 많던 영화는 6월25일 개봉했고,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사상 처음으로 박스 오피스 1위라는 새로운 기록을 남기며 흥행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29일 뉴욕 타임스와 CBS 뉴스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부시 대통령 지지율이 2001년 1월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낮은 42%로 나타났다. 대통령 후보와 관련해선 유권자의 45%가 케리를 지지했으며 44%가 부시를 선택했다. 부시의 지지율 하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건은 이라크전 파병 결정이었으며, 60%의 응답자가 부시의 이라크 정책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다시 말해 ‘화씨 9/11’이 바로 부시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고 있는 셈이다. 영화 개봉 후 일주일여가 지난 지금 언론들은 객관적인 자세를 취한다는 명분으로 ‘화씨 9/11’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영화 감상기에 바탕을 둔 독자들의 쏟아지는 투고와 영화를 둘러싼 찬반세력의 실력 행사를 간단한 뉴스로 전하고 있을 뿐이다. 자유주의자 변호사 그룹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시민단체인 무브온닷오르그(MoveOn.org)는 7월11일 ‘전화 파티’를 열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박빙의 접전을 펼치고 있는 모든 주에서 지지자들로 하여금 등록을 하지 않은 유권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대대적으로 투표 참여를 호소한다는 계획이다. ‘화씨 9/11’과 관련해 펼친 활동으로 전국적으로도 유명해진 무브온닷오르그는 이에 앞서 흥행 대박을 터뜨린 다음날인 6월29일 영화의 성공을 축하하는 2100여회의 파티를 미 전역에서 개최한 바 있다.

    파티 주최 희망자를 50개 주와 워싱턴 DC에서 최소한 1명씩 모집해 각각 파티를 열게 한 뒤 저녁 8시 인터넷 방송을 통해 무어 감독과의 대화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원래는 4000여명이 신청했으나 실제로는 2100여명이 열었다고 한다. 클럽이나 바, 학교 강당, 그리고 유명인사들의 이벤트에서 개인 집에 이르기까지 파티 장소와 참여층은 다양했다. 인터넷을 통해 전국에 중계된 이날 파티에서 무어 감독은 밖으로 나가 유권자들의 등록을 독려하고, 접전지로 가 민주당 조직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할 것, 그리고 투표 당일에는 직장이나 학교를 하루 쉬고라도 주변 사람들이 투표소로 향하도록 권유할 것을 호소했다. ‘투표하지 않으려는 사람 5명을 데리고 투표소 가기’를 구체적인 행동강령으로 요구했을 정도다. 무어 감독은 또한 케리 후보에게도 충고를 던졌는데, 유권자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여성과 흑인들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는 선거 전략을 마련할 것과 보수층의 표를 얻겠다고 더 이상은 오른쪽으로 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매파들은 이미 자신들의 후보를 갖고 있다. 줏대 없이 뽀빠이 주변에서 맴도는 일을 했다간 백전백패”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화씨 9/11’ 미국을 뒤흔들다

    ‘화씨 9/11’의 해독제로 불리는 영화‘미국의 마음과 혼’의 한 장면.

    비슷한 시간대 반(反)무어 그룹은 역시 인터넷을 이용한 역공을 펼쳤다. 안티무어 사이트인 무어워치닷컴(MooreWatch.com)에 접속하면 방문객들이 링크를 통해 ‘화씨 9/11’을 불법으로 내려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한술 더 떠 “나는 저작권법에 동의하지 않는다.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들이 영화를 내려받아 함께 나눠보는 것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는 출처 불명의 무어 감독 말까지 떡하니 올려놓아 저작권법에 대한 무어 감독의 태도를 정면 공격하고 나섰다. 영화 배급사인 라이온스 게이트 필름의 톰 오르텐버그 사장은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며 강력 반발했고, 무어워치닷컴은 서비스 거부(DOS) 공격을 당해 사이트가 다운됐다. 내려받기에 성공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밤새 내려받은 게 11%에 지나지 않는다. 일주일은 걸려야 하는 거 아니냐”는 등 불만이 터져나온 걸 보면 다운로드 역공이 그리 성공적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보수 대 진보 갈려 영화 찬반 시위

    영화 홍보를 위한 마케팅과 정치 캠페인이 맞물리면서 인터넷 밖에서의 전쟁도 여전하다. 배급사들이 개최한 뉴욕의 극장 앞 기자회견장에는 이라크에 가족을 보낸 사람들의 모임인 ‘밀리터리 패밀리 스피크 아웃’과 9•11 사망자들의 모임 회원들이 참가해 무어 감독의 손을 들어주며 영화에 대한 지지를 보냈다. 보수 그룹은 극장 앞에서의 시위는 물론, 영화를 비난하는 데일리 뉴스를 거의 매일 빠짐없이 나눠주고 있다. ‘화씨 9/11’을 둘러싼 실력 행사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지만, 보수와 진보 그룹 간의 전쟁은 이제 문화계 전면으로 확산돼가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화씨 9/11’ 배급을 거부했던 디즈니는 7월2일 미국인의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애국 영화 ‘미국의 마음과 혼(America’s Heart and Soul)’을 미 전역에서 개봉했다. 보수그룹인 무브아메리카포워드(Move America Forward)는 이 영화가 “‘화씨 9/11’에 대한 해독제”라며 시사회 개최는 물론 영화 홍보에 발벗고 나섰다. 자신의 영화에 대한 맞불작전이라며 무어 감독이 발끈하고 나섰음은 물론이다.

    ‘화씨 9/11’ 미국을 뒤흔들다

    반(反)부시 운동의 전면에 나선 본 조비,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브루스 스프링스틴(왼쪽부터).

    영화계를 넘어 출판계 쪽에서도 양 진영은 전쟁을 벌이고 있다. 무어 감독이 2002년 쓴 베스트셀러 ‘멍청한 백인들’을 역이용해 그를 신랄하게 비판한 ‘마이클 무어는 뚱뚱하고 멍청한 백인’이라는 책이 6월 말 출간돼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 종합 3위에 올랐고, 니콜 베이커가 쓴 부시 대통령의 암살을 상상하는 내용의 책 ‘검문소(Checkpoint)’는 공화당 전당대회 시점인 다음달 하순쯤 출시될 예정이다. 이 책에는 부시 대통령을 ‘선출되지 않은 술주정뱅이 기름장수’, 딕 체니 부통령을 ‘녹슨 헐크’,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좀비’라고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대중에 대한 파급 효과가 가장 클 수 있는 팝 스타들도 ‘반(反)부시운동’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자신의 히트곡 ‘피플’의 노래가사를 럼스펠드 국방장관, 체니 부통령 등 부시 행정부의 주요 인사들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케리 후보를 지지하는 내용으로 바꿔 대선 전에 발표할 계획이라고 한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프로모터 앤드루 라지에는 9월1일 뉴욕 자이언츠 스타디움에서 ‘부시 떨어뜨리기’ 초대형 올스타 콘서트를 개최할 예정이다. 평소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비난해온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비롯해 본 조비, REM, 여성 로커 셰릴 크로우 등의 참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한 편의 영화가 세상을 뒤바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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