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서태지 울림 러시아 일어나 ‘환호’

록 대통령 블라디보스토크 공연 ‘문화충격’ … 한국과 감정 비슷 한류 물결 신호탄

  • 블라디보스토크=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서태지 울림 러시아 일어나 ‘환호’

서태지 울림 러시아 일어나 ‘환호’

5월8일 오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디나모 스타디움에서 자신의 히트곡을 열창하는 서태지.

동해를 넘어온 서태지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과 음악에 대한 국경 없는 환호. 블라디보스토크의 서태지 공연은 이렇게 끝났다.

5월8일 한·러 수교 120주년을 기념해 러시아의 항구도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서태지의 공연은 3시간 내내 한국에서 그를 따라온 800명의 ‘상상체험단’과 1만명이 넘는 러시아 관객의 열기로 가득했다. ‘경계선을 넘어, 큰 울림을 알리러’란 공연 제목이 과장이 아닌 시간이었다. 그동안 아시아의 한국 문화에 대한 열기에서 제외돼 있던 러시아에도 한류(韓流)의 뜨거운 물결이 닿은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인기 록 그룹 ‘멕시칸 벌잡이’와 서태지 컴퍼니에 소속된 ‘넬’ ‘피아’의 짧은 공연이 분위기를 한껏 살린 뒤 팬들의 연호 속에 등장한 서태지는 ‘1996년,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로 첫 무대를 열었다.

서태지는 ‘로보트’ ‘슬픈 아픔’ ‘이 밤이 깊어가지만’ 등 그의 히트곡들을 공연하고 ‘라이브 와이어’와 호화로운 불꽃놀이로 블라디보스토크 시민들에게 마지막 선물을 선사했다.

공연이 열린 곳은 종합운동장으로 쓰이고 있는 디나모 스타디움으로 공연이 열린 날 오후부터 수많은 젊은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날은 히틀러가 스탈린에게 항복한 전승기념일 연휴로 이어지는 첫날이어서 시 전체에 축제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었다. 이 때문인지 공연에 대한 참여 열기가 더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서태지 울림 러시아 일어나 ‘환호’

추첨으로 뽑힌 서태지 팬과 일반인들로 구성된 상상체험단이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기 전 출정식을 했다.

러시아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서태지를 잘 알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예의 서태지의 완벽한 이벤트와 강한 비트에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냈으며 전형적인 록 콘서트에서 볼 수 있는 자유분방함도 피부로 느껴졌다.

노랫말 따라부르며 서태지 연호

특히 서태지 노래에서 중요한 부분인 사회 비판적 노랫말이 전달되지 않아 러시아 관객들이 얼마나 자발적으로, 얼마나 빨리 ‘슬램(slam)’을 타줄 것인가가 공연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였으나 웬만한 유럽 도시보다 영어에 익숙한 젊은이들은 대형 화면에 오른 노랫말을 서태지 팬들과 똑같이 따라부르며 공연에 빠져들었다.

영하의 체감 온도와 매서운 바람에도 불구하고 공연장 곳곳에서 겉옷을 벗고 열광하는 러시아 젊은이들과 동성(이곳에선 유독 레즈비언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이성애 연인들의 뜨거운 키스 장면을 볼 수 있었다. 7달러라는 결코 싸지 않은 입장료를 내고 콘서트를 보러 왔다는 러시아인 파벨씨는 “외국의 젊은 아티스트에 관심이 많아 참석했다. 서태지라는 이름은 이번에 처음 들어봤다. 매우 흥미롭다”고 말했다.

공연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과 유학생들도 많이 참석했는데, 4년째 러시아에 머물고 있다는 주재원 정상준씨는 “이곳에서 이렇게 큰 행사가 열린 것은 처음 본다”며 “러시아인들의 감정이 한국인들과 비슷하고 워낙 춤과 노래를 좋아해 열기가 대단한 것 같다”며 놀라워했다.

서태지 울림 러시아 일어나 ‘환호’

서태지를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러시아 현지 언론들.

공연 후 블라디보스토크 최재근 영사도 “서태지의 공연은 블라디보스토크에 엄청난 문화 충격을 주었다. 오늘 공연은 문화와 학술, 인적 교류에서 추진력을 마련해주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이번 공연은 KT&G(한국담배인삼공사)가 ‘상상예찬’이라는 컨셉트로 기업의 젊은 이미지를 강화하고 러시아 상륙을 위해 서태지 측에 제안함으로써 성사됐다. 행사를 총괄한 황인선 KT&G 마케팅 부장은 “서태지의 서울올림픽 종합운동장 콘서트에 후원할 수도 있었고 한류 열풍이 거센 중국에서 안전하게 공연할 수도 있었지만, 서태지가 가진 최초와 혁신, 창조라는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미지의 땅인 블라디보스토크가 최적의 장소라는 판단을 했다”고 밝혔다. 특히 KT&G는 불경기와 청년실업 등으로 땅에 떨어진 청년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800명의 ‘상상체험단’을 구성, 블라디보스토크의 문화사절단으로 서태지와 동행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추첨으로 뽑힌 서태지팬과 일반인들로 구성된 상상체험단은 ‘상상호’와 ‘희망호’ 두 대의 대형 유람선으로 서태지와 함께 속초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항해하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선상에서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 만화가 이현세씨, 탐험가 허영호씨 등이 상상력과 꿈에 대한 강의를 했으며, 블라디보스토크의 퍼키나 스트리트(우리나라의 서울 명동과 같은 번화가)에서는 상상체험단이 풍물 공연을 열어 문화 교류의 취지를 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참신한 기획 의도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제외한 전체 진행은 그야말로 모든 ‘상상체험’을 넘어선, 미숙하기 그지없었다. 최악의 사고는 KT&G 상상체험단과 관계자 450명이 탄 ‘희망호’가 바다 위에서 3시간 넘게 표류하는 사태로 나타났다.



‘희망호’로 섭외하려던 유람선이 두 차례나 바뀌면서 150명의 여성 참가자들이 183명이 ‘정원’인 ‘다다미’ 방 하나에서 4박5일간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흥분한 참가자들은 “주최 측이 행사를 강행할 욕심으로 우리를 속였다”며 속초항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으나 주최 측은 “항구 접안 시간이 지나 돌아갈 수도 없다. 우리 실수다. 그래도 일단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자”고 설득했다. 그러나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할 때까지 1박2일간의 항해 내내 ‘희망호’는 탑승자들의 항의와 대책회의로 시종 어수선하고 불안한 분위기였고 예정된 프로그램도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문제가 된 방의 해양법상 ‘정원’은 183명이었지만, 이 면적은 1인의 수용면적을 0.85m2로 계산한 것으로 성인 한 사람이 누우면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면적이다. 유람선이 이동 수단일 뿐 아니라 참가자들이 잠을 자고 생활해야 하는 숙박 장소임을 고려하면 참가자들이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열악한 상황이었다. 이 방은 사람들과 이부자리, 가방으로 뒤섞여 난민촌을 연상시켰다. 또한 일부 참가자들은 본인 동의 없이 ‘스태프’로 분류돼 배의 청소와 안전요원으로 일했다며 불만스러워했다. 참가자 이모씨는 “아무 경험 없는 대학생들이 안전을 맡고 있어 가슴이 조마조마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KT&G 측은 급하게 부산과 제주 사이를 운항하던 선박을 계약하면서 실제 수용 인원을 실측하지 않은 데다 비행기편으로 가려던 서태지가 팬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기로 하면서 승선 인원이 늘어나 이 같은 사태를 불러왔다고 밝혔다.

또한 서태지 공연이 열린 디나모 스타디움에는 3만3000장의 입장권이 사전에 배부됐으나 현지에 동원된 경찰 1500명이 일방적으로 입장 인원을 제한해 입장권을 소지한 관객들에게서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미 행사에 30억원을 투입한 KT&G는 ‘희망호’의 탑승자들에게 사과의 뜻을 표시했고 서태지 공연도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참가자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긴 것은 분명하다. 또한 획기적인 기업의 문화 후원이 ‘부작용을 우려해’ 침체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행사의 규모와 의욕보다 참가자들의 순수한 열정과 노래 한 곡이 ‘상상’과 ‘소통’의 가장 소중한 미덕임을 이번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에게 교훈으로 남겼다.



주간동아 435호 (p86~87)

블라디보스토크=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367

제 1367호

2022.12.02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