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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위대를 일본軍이라 부르자”

일본 재무장 포함 평화헌법 개헌 논의 가열 … 집권 자민당 방위청 → 방위성 격상 주장도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자위대를 일본軍이라 부르자”

5월3일은 일본의 제57회 제헌절이었다. 이날 일본에서는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현행 헌법을 고치자는 개헌론과 이 헌법을 지키자는 호헌론 간에 심각한 대립이 있었다. 주권국가인 일본의 개헌 논의에 대해 이웃나라인 한국이 간섭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개헌이 일본의 재무장을 위한 것이라면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평화헌법 이전의 일본은 제국헌법을 갖고 있었다. 제국헌법 시절 일본은 군국주의로 치달아 한국 등 아시아 국가를 식민지배했다. 아시아 국가들이 재무장을 부정한 평화헌법을 개정하겠다는 일본의 개헌 논의에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과거사 때문이다.

일본의 개헌론은 오자와 이치로가 주장한 ‘보통국가론’이 현실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별 볼일 없는 정치인이지만 1990년대 초반 오자와는 일본의 미래를 끌고 나갈 식견 있는 정치인으로 꼽혔다. 그 시절 오자와는 한국과 미국처럼 군대를 가질 수 있고 자국의 결정으로 군대를 해외에 파병할 수 있는 나라를 ‘보통국가’로 정의했다.

그는 일본이 보통국가가 돼야 한다며 제2차 세계대전의 산물인 평화헌법의 개정을 주장했다. 일본의 평화헌법은 종전 후 미 군정 시절 요시다(吉田茂)가 이끄는 임시내각이 맥아더 사령부의 지시를 받아 1946년 11월3일 확정하고 47년 5월3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헌법이다.

이 헌법을 만들 때 포츠담 선언(1945년 7월26일 미·영·중·소 4개국 정상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촉구하며 향후 일본을 영원히 비군사국가로 만든다는 데 합의) 이행 책임이 있는 맥아더 사령부는 헌법 전문에 ‘일본 국민은 항구적인 평화를 염원하며,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전제와 굴종, 압제와 편협을 지상에서 영원히 추방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문구를 넣게 했다.



“패전국가에서 보통국가로 전환”

그리고 제9조 1항에는 ‘일본 국민은 국제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권 발동을 통한 전쟁을 일으키거나 무력시위 혹은 무력행사를 영원히 하지 않겠다’는 문구를, 2항에는 ‘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육·해·공군 등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으며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글귀를 넣게 했다(전쟁 포기와 군비 및 교전권 부인).

이러한 문구 때문에 이 헌법은 평화헌법으로 불리게 됐다. 일본은 이 헌법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일본 최초(1889년)의 헌법인 제국헌법이 아닌 평화헌법이 시행된 날을 제헌절로 삼았다. 오자와는 바로 일본 제헌절의 주인공인 평화헌법의 개정을 주장한 것이다.

“일본은 2차 대전을 일으켰다가 패전한 전범국가이자 패전국가이기 때문에 ‘군대를 가질 수도, 교전권을 가질 수도 없다’는 내용의 평화헌법을 가진 비정상적인 국가가 됐다. 2차 대전 체제가 계속된다면 일본은 절대로 이러한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2차 대전 체제가 끝났다면 이를 벗어던지고 한국 미국과 같은 보통국가가 돼야 한다. 2차 대전 이후의 세계는 냉전체제였는데,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를 시작으로 그 막이 내렸다. 따라서 일본을 보통국가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펼쳐야 한다.”

오자와는 자신의 주장을 현실화하기 위해 자민당을 나와 새로운 정당을 만들었으나 동조자를 얻지 못해 잊혀져갔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그가 떠난 자민당 안에서 세력을 키워 본격적인 개헌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개헌 논의는 일본 육상자위대가 500여명의 공병대에게 유엔 평화유지군 모자가 아닌 자위대 모자를 쓰게 하고 사상 최초로 해외(이라크)에 파병해놓고 있는 가운데 터져나왔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해야 한다(자위대가 유엔 평화유지군 자격으로 해외에 나간 것은 여러 번 있었다).

일본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방위비를 사용하는 나라다. 이렇게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으면 육·해·공군 등의 전력 보유를 금지한 헌법 제9조를 위반한 것이 된다. 그러나 일본의 위정자들은 공식문서나 회의에서 ‘군’이나 ‘국방’ ‘전(戰)’ ‘병(兵)’ 같은 용어를 절대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헌법 제9조 위반 시비를 피해나갔다.

군인을 자위관(自衛官), 보병을 보통과(普通科), 포병을 특과(特科), 구축함을 호위함, 전투기를 지원전투기, 작전국을 운용국(運用局), 이라크에 대한 자위대 파병(派兵)을 자위대 ‘파견’으로 적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한마디로 일본은 손에 칼을 들고 있으면서 칼을 ‘갈’로 명명한 뒤, “이는 갈이기 때문에 칼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식의 이러한 굴레를 벗어던지자고 주장하는 세력이 여당인 자민당에 포진한 개헌론자들이다. 이들은 이제 일본도 군과 국방 같은 용어를 사용할 때가 되었다며, 개헌을 주도하는 자신들의 조직 이름도 ‘국방부회’로 명명했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상대적으로 솔직한 개헌론자라고 할 수 있다.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 노려

이들은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격상하자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일본 내각에서 ‘청(廳)’은 한국의 청과 마찬가지로 차관급이 수장을 맡는다. 한국의 외교통상부와 같은 부(部)를 일본 내각에서는 성(省)으로 부르는데, 국방부회는 청에 불과한 방위청을 한국의 국방부와 같은 방위성으로 올리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이뤄진 것이나 진배없다. 한국에서는 18개 부의 장관과 기획예산처의 장관만 국무위원을 겸직한다. 보훈처나 법제처 장관은 국무위원이 아닌 것이다. 반면 일본에서는 성의 책임자인 상(相)과 한국의 국무조정실장과 비슷한 관방(官方), 그리고 방위청장이 국무대신을 겸하고 있다. 방위청장이 국무대신을 겸하고 있다는 사실은 방위청이 사실상 방위성으로 승격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이런 이유 등으로 언론은 방위청장을 방위청 장관으로 적고 있다).

이에 대해 제1 야당인 민주당은 개헌의 필요성은 인정하나 자위대가 헌법을 어기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미 군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으니(주변국을 자극하는) 필요 이상의 조치는 취하지 말자는 의견이다.

민주당에서는 헌법조사회에서 개헌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들은 “자위대는 이미 일본의 고유한 명칭이 되었으니 군으로 개칭하지 말자. 대신 헌법에 ‘일본은 자위권을 보유하며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문구를 넣는 쪽으로 개헌하자”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민주당은 덜 솔직한 개헌론자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양당은 재무장을 위한 개헌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에 대해 호헌을 주장하며 맞서는 것은 세칭 진보세력뿐이다. 오자와 이치로가 명시적으로 보통국가론을 주장한 후 일본 여야는 간판은 그대로 두고 안의 내용은 180도로 바꾸는 개혁을 달성해냈다. 그리고 이제 와서 간판마저도 바꿀 것인가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미 내용이 바뀌었으니 호헌을 해야 한다는 진보세력의 주장은 공허할 뿐이다.

자위대 모자를 쓴 시설과(공병) 자위관 500여명을 이라크에 파병함으로써 보통국가가 되는 데 성공한 일본은 다음 목표로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고 있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5대 연합국으로 구성돼 있는 유엔 상임이사국에 진출한다면, 일본은 명실상부하게 2차 대전 체제 종식을 선언할 수 있다.

재무장을 위한 변화를 최전방에서 선도하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정치인이 바로 대담하게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한 고이즈미 총리다. 일본은 자위대를 군으로 바꾸는 개헌을 성사시킬 수 있을것인가.



주간동아 435호 (p68~69)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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