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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우쭐’과 ‘찜찜’ 사이

탄핵 정국 2개월 국민 관심 고조 ‘달라진 위상’… 헌재법 개정 의견 등 ‘준비 미흡’ 스스로 인정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헌법재판소 ‘우쭐’과 ‘찜찜’ 사이

헌법재판소 ‘우쭐’과 ‘찜찜’ 사이

2004년 4월30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이 열린 헌법재판소의 재판 모습.

‘재판관 전체회의(평의)가 진행되는 회의실에 혹시 도청기가….’

대통령 탄핵심판이란 사안의 중차대함을 고려하면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일이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대부분 ‘나 홀로’ 생활패턴을 갖고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솔직한 의견을 표출하고 나누는 장소는 평의가 열리는 회의실이 거의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사무처는 탄핵소추안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 모든 재판관 사무실과 회의실 등 주요 방에 대한 도청 여부를 확인하고 도ㆍ감청방지 장치를 설치했다. 관련 문서가 새나갈 가능성에 대비해 문서파쇄기 사용을 의무화했으며 경찰 경호 병력이 윤영철 헌재소장에게 8명, 나머지 재판관 8명에게는 각 3명씩 배치돼 외부인의 접근을 완벽히 차단했다. 재판관들도 자발적으로 재판연구관이 아닌 일반 사무처직원과의 접촉까지 애써 피해왔다는 후문이다. 상황이 그러니 언론에 대한 보도통제가 강화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헌재의 결정사항은 특종의 대상이 아니다”는 주선회 주심재판관의 항변과 함께 출퇴근 시간 이외에는 재판관과 기자와의 접촉이 일절 금지됐다.

재판관 9명 철통 경호 외부인 접근 차단

헌재가 보안에 총력을 기울인 이유는 허술한 운영으로 인한 ‘좋지 않은’ 추억 때문이다. 1995년 당시 전두환ㆍ노태우 등 ‘5ㆍ18 내란사건’ 주동자에 대한 ‘검찰의 5·18 불기소처분 취소청구 헌법소원’에 대해 내부적으로 ‘각하’ 결정이 난 상황이었다. 그런데 헌재 판결 내용의 일부인 ‘전·노 전직 대통령의 5ㆍ18 내란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다’는 대목이 판결 이틀 전 언론에 새나간 것. 결국 소송 당사자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를 취하하고 특별법 추진으로 방향을 돌림으로써 헌재는 권위에 큰 손상을 입고 말았다. 지금까지도 헌재 관계자들은 “당시 5ㆍ18 내란사건 관련자들에 대해 헌재가 판결을 내렸다면 헌재의 위상은 지금과 달라졌을 것이다”고 아쉬워한다.



헌법재판소 ‘우쭐’과 ‘찜찜’ 사이

2004년 4월27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노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에서 마주한 변호인단 간사 문재인 변호사(왼쪽)와 소추인단 김기춘 국회법사위원장.

탄생 17년째인 헌재가 맞은 가장 큰 사건이 2개월을 끌어온 대통령 탄핵심판이다. 우여곡절 끝에 결정을 내림으로써 사상 초유의 사건을 무난하게 처리했다는 평을 받지만 그 운영과정에서는 ‘완벽한 보안’과 달리 적잖은 빈틈을 보였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 헌재가 얻은 것

헌재는 ‘기본권 최후의 보루’라고 불린다. 헌재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권력행사에도 헌법의 이름으로 이를 응징할 수 있다는 뜻에서다. 그러나 헌재는 그간 국민의 관심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던 게 현실이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3월12일, 윤 헌재소장은 이미 약속돼 있던 법조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헌재는 최고 사법기관임에도 여론의 관심에서 소외돼왔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그런 불평은 바로 그날부터 눈 녹듯이 사라졌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헌재가 심판하게 되면서 재판관 9명의 일거수 일투족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헌재가 탄핵심판을 통해 헌법상 국민의 대표기구인 대통령과 의회의 갈등을 처리함으로써 헌재는 입법 사법 행정부 3부를 통제하는 상위기관에 해당하는 위상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헌재의 한 연구관은 “헌재의 위상이 강화되면서 앞으로 적극적인 위헌법률심판소송과 헌법소원 등이 속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탄핵심판 과정을 통해 국민들이 대한민국 헌법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점도 큰 성과 가운데 하나다. 탄핵 논란 속에서 ‘대한민국 헌법 1조’라는 노래가 만들어지기도 했고, 국민들 사이에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자연스런 토론이 이뤄지면서 법치주의의 기틀이 확고해졌다는 게 헌법학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헌법재판소 ‘우쭐’과 ‘찜찜’ 사이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되면서 헌법재판소 앞에는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각종 구호가 등장했다. 주선회 헌재재판관(오른쪽 가운데)이 3월15일 헌법재판소 현관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1987년 민주화투쟁의 성과인 직선제 개헌으로 탄생한 헌재는 그간 방치돼온 관련 법률을 정비할 기회를 맞이했다. 5월7일 이범주 헌재 사무처장은 “탄핵사건 심리과정에서 불거진 헌재법의 미비점에 대해 보완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해 조만간 헌재법 개정 및 규칙 제정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에 따라 애매모호한 법조항으로 탄핵심판 과정에 논란을 일으킨 ‘탄핵취소와 탄핵사유 추가’ ‘재판ㆍ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기록의 복사본 송부’ ‘탄핵심판이나 정당해산 심판 사건에서의 소수의견 개진’ 등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제정될 전망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앞으로 생길 ‘정치적 사건’에 대한 명확한 준거 틀을 확보해 헌재의 위상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 헌재가 잃은 것

탄핵심판 과정에서 비교적 얻은 것이 많은 헌재이지만 적잖은 실책으로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특히 문제로 드러난 헌재법 일부를 헌재가 개정하겠다고 나선 점은 대통령 탄핵심판을 치러낼 준비가 미흡했다는 점을 헌재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우선 막연하게 ‘형사소송법을 준용하라’는 헌재법 40조는 ‘탄핵사유를 추가’하거나 ‘탄핵을 취하’할 수 있다는 논란을 일으켰다. 본격적인 논란은 헌재가 대통령 탄핵사유 중 ‘측근비리’ 부분을 물고 늘어진 소추위의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됐다.

이미 검찰과 특검에 의해 완벽하게 조사된 측근비리 사건에 대해 헌재가 법원으로부터 2만여 장의 증거자료까지 확보한 상황에서 소추위원들이 추가로 증인신청과 함께 이들의 내사기록 제출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이는 ‘재판 또는 범죄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건의 기록에 대해서는 송부를 요구할 수 없다’는 헌재법 32조 1항에 위배되는 일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헌법재판이란 정치와 법률의 중간 영역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판사의 정치적인 성향을 내비쳐야 하는 일이지만, 대통령 탄핵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찬반양론이 격화하면서 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마저 논란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특히 몇몇 재판관들은 과거 보수적인 판결과 지나친 정치성향에 대해 네티즌들의 공격이 심하게 진행되자 무척 곤혹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늑장 진행 논란도 헌재 입지 어렵게 해

정치권 역시 겉으로는 “헌재의 판단을 따르고 존중하겠다”고 한목소리를 냈지만, 뒤로는 심판 과정에서 내보인 헌재의 모호한 태도에 불만을 내비쳤다. 여기에다 늑장 진행 논란은 헌재의 입지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장영수 고려대 법대 교수는 “헌재가 다시 한번 측근비리를 직접 심문하고 나선 것은 예상외의 일로, 그로 인해 진행이 더뎌졌다”고 평가했다

진행 속도가 논란이 된 까닭은 대통령 탄핵이 ‘4ㆍ15’ 총선의 주요 의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헌재는 ‘탄핵사건이 총선과 맞물렸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판결하겠다’는 원칙을 내세웠으나, 총선 이후 판결이 나옴으로써 결과적으로 ‘정치적 판결’을 내렸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는 허영 명지대 교수 같은 이른바 보수진영의 헌법학자들에게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9명의 재판관이 대통령 탄핵을 심판한다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는 식의 헌재의 근간을 뒤흔드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헌재가 갖고 있는 대통령 탄핵심판권 문제는 앞으로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헌재가 판결에 자신감을 내보이지 못한 점도 막판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정종섭 서울대 법대 교수가 “탄핵심판은 ‘위헌법률’ ‘헌법소원’ ‘권한쟁의’ 등 세 가지 심판 사건과 달리 재판관들의 소수의견을 개진할 수 없다”는 해석을 내리자 헌재가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 것이 그것이다. ‘몇 대 몇’이라는 결과에만 모아진 언론의 지나친 관심과 소수의견이 대통령의 권위에 상처를 입힐 가능성에 대한 헌재의 우려는 이해하지만, 결과적으로 지나치게 정치적 효과에만 관심을 쏟는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 됐다.

우리 헌법 제65조 3항은 세계적으로 아주 드물게 국회의 탄핵소추 결의만으로 피소추자의 권한행사가 정지되는 형태다. 결과적으로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2개월간 국정을 떠나 있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임지봉 건국대 교수는 “본격적인 탄핵관련 법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김갑배 대한변협 법제이사는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킬 만한 중대한 탄핵안이 국회가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부랴부랴 헌재 변론과정에서 제기된 것은 정치적 공세일 뿐이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탄핵심판은 마무리됐지만 신뢰성 있는 판결로 권위를 쌓아가야 할 헌재의 앞길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게 많은 법조인들의 지적이다.





주간동아 435호 (p14~16)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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