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2

2003.09.25

‘초대형 야외무대’ 도전인가 도박인가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3-09-18 16: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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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형 야외무대’ 도전인가 도박인가

    오페라 ‘아이다’ 포스터(왼쪽)와 이탈리아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열린 ‘아이다’ 야외 공연 장면.

    태풍 ‘매미’에 오페라 ‘아이다’ 제작진은 수재민 못지않게 가슴을 졸였을 게 분명하다. 9월18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펼쳐지는 야외 오페라 ‘아이다’ 때문이다. ‘아이다’ 사무국은 비가 올 것에 대비해 25일까지 주경기장을 임대해놓은 상태다. 비가 오면 공연은 최종 공연일 다음날로, 즉 18일 공연이 비로 취소되면 공연은 마지막 공연 다음날인 21일로 자동 순연된다. 그래도 유난히 잦은 비가 원망스럽다는 것이 제작진의 토로다. 불경기에 비까지 더해져 공연 열기가 기대만큼 살아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작 오페라 ‘아이다’는 막을 올리기 전부터 여러모로 화제를 뿌렸다. 총 제작비 80억원, 총 객석 수 15만석, 코끼리 낙타 말 등 70여 마리의 동물 출연 등등. 이 같은 엄청난 ‘스케일’은 공연 시작 몇 개월 전부터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되었고 그럴 때마다 오페라 애호가들은 일부는 반신반의의, 또 일부는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냈다.

    물론 그동안 제작비 100억원을 넘긴 공연도 없지 않았지만 이들 공연은 대부분 서너 개월 이상 공연을 계속하는 장기공연이었다. 단, 3회 공연으로 그치는 ‘아이다’의 경우는 1회 공연에만 25억원 정도의 제작비를 들이는 꼴이 된다. 단일 공연으로는 건국 이래 가장 비싼 작품인 셈.

    음향 효과에 공연 성패 달려

    사상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공연인 만큼, 제작을 둘러싼 에피소드도 무성할 수밖에 없다. 우선 아이다 역의 마리아 굴레기나, 라다메스 역의 주세페 자코미니 등 출연진은 세계 어느 오페라 페스티벌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수준임이 분명하다. 주최측은 원래 국왕 역으로 불가리아 출신인 세계적 베이스 니콜라이 갸우로프를 캐스팅했다. 그러나 캐스팅 직후 이탈리아 국영 TV가 ‘한국에서 전쟁이 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하자 이 보도에 놀란 갸우로프의 부인이 한국행을 극력 반대, 갸우로프의 내한은 취소되고 말았다. 또 애당초 아이다 역에 캐스팅되었던 소프라노 알렉산드라 마르크는 비행기 좌석이 두 석 필요할 만큼 뚱뚱하다는 사실이 알려져 주최측에서 캐스팅을 포기하기도 했다.



    오페라에 등장하는 동물들도 관심거리. ‘아이다’ 사무국은 70여 마리에 달하는 출연 동물 중 10마리의 코끼리와 6마리의 낙타를 구입했다. 이 동물들은 장군 라다메스가 귀환하는 2막의 개선 장면에서 1000여명의 엑스트라와 함께 출연한다.

    “기획 단계에서 서울대공원 등 국내 동물원에 낙타, 코끼리 등을 빌려달라고 요청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동물들은 공연에 출연할 수 있도록 훈련된 상태가 아니어서 안전사고의 위험이 컸죠. 그래서 해외에서 훈련된 동물을 대여할 수 있는지 알아보았는데, 특이하게도 임대가와 구입가가 큰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예 동물들을 사기로 한 거죠.” 이철주 ‘아이다’ 사무국 기획실장의 설명이다.

    지난 4월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던 야외 오페라 ‘투란도트’와 마찬가지로 아이다 공연 역시 음향증폭장치, 즉 ‘마이크’를 사용한다. 사실 이번 공연의 성패는 마이크를 사용해서 얼마나 일반적인 오페라하우스와 비슷한 음향을 내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최측은 운동장을 감싸는 음향 상태를 만들기 위해 돔 전체에 체인으로 스피커를 걸었다. 이번 공연을 위해 이탈리아에서 온 음향감독 다니엘레 트라몬티니는 ‘파바로티와 친구들’ 콘서트의 음향감독을 맡았던 베테랑이다.

    ‘초대형 야외무대’ 도전인가 도박인가

    잠실 주경기장에서 시연회를 하는 동물들.

    그라운드석이 최고 60만원, 스탠드의 일반석이 7만5000원으로 책정된 티켓 가격을 두고도 말들이 많다. 전체 5만여석 중 티켓 가격이 60만원인 일등석은 4000석 가량 된다. 주최측은 이 고가의 티켓은 ‘선물용 또는 명품족용’으로 마련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외국인회사 등에서 고객 선물용으로 이 고가의 티켓을 꽤 구매했다고.

    ‘아이다’ 공연이 화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굳이 운동장에서 오페라를 해야 하느냐’라는 의문에 있다. 아무리 좋은 음향장치를 동원한다 한들 마이크를 사용한, 그리고 대형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공연의 감흥이 실내 공연의 정교함을 따라갈 수 있을까. 그러나 주최측은 “정밀함보다는 볼거리를 기대해달라”며 “캐스팅을 봐도 알 수 있듯이 공연 수준 자체는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오페라 칼럼니스트인 유형종씨는 “볼 만한 공연이 될 것 같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굴레기나, 자코미니 등 최정상급 성악가들이 출연한다는 점, 그리고 ‘아이다’라는 야외 오페라에 걸맞은 작품을 선정한 점 등을 볼 때 충분히 멋진 공연이 될 겁니다. 물론 운동장에서 오페라를 공연하는 것이 정상적인 현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야외공연을 할 만한 장소가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기도 하죠.”

    ‘아이다’가 성공함으로써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오페라는 일거에 침체를 벗어나 중흥의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 4월 ‘투란도트’ 공연과 맞물렸던 국립오페라단의 ‘투란도트’ 실내 공연은 뜻밖에도 전석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오페라는 뮤지컬처럼 상업적 장르가 아닌 순수예술이다. 과연 까다로운 오페라 애호가들이 마이크를 사용한 운동장 공연을 보기 위해 7만5000원을 투자할까? 더구나 장기공연은 공연이 거듭되면서 ‘괜찮더라’는 관객들의 입소문이 흥행에 상당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단 3일의 공연에 그치는 ‘아이다’는 그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주최측은 9월14일 현재 예매율이 50% 정도라고 밝혔다.

    무모할 정도로 큰 규모의 오페라 ‘아이다’는 과연 도전인가, 도박인가. 오페라 전문가들조차도 쉽사리 판단할 수 없는 이 사상 초유의 공연 성패는 역시 관객들의 손에 달려 있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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