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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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노새 막아라” 밀수와의 전쟁

영화 뺨칠 상상 초월한 수법 총동원 … 밀수조직 전문·거대화 갈수록 적발 어려워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3-09-18 1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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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노새 막아라” 밀수와의 전쟁

    밀수범들이 미군 PX 내 술을 빼돌리기 위해 만든 땅굴.

    7월10일 오후 3시10분, 필리핀에서 특송 화물로 국내에 들어온 영문 서류 3장을 살펴보던 인천공항세관 마약조사과 서호연씨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다른 서류보다 미세하게 무거운 느낌이 들던 서류의 뒷면에 얇은 종이 한 장이 덧붙여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 작은 공간에 숨길 수 있는 것은 마약밖에 없지 않은가.’ 조심스레 종이를 뜯어내는 서씨의 손이 떨렸다. 그리고 마침내 종이가 떨어진 순간 그 틈에서 하얀 가루가 담긴 봉지가 떨어졌다. 한 줌도 안 될 만큼의 적은 양이지만 틀림없는 메스암페타민(헤로인). ‘찾았다!’ 서씨의 얼굴에 비로소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서씨가 이날 발견한 메스암페타민은 총 0.6g. 마약 중독자들이 20여회 투약할 정도의 양이지만 워낙 부피가 작아 이 정도 양을 세관이 적발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전례를 찾기 힘들 만큼 드문 일이다. 게다가 종이 두 장을 덧대 공간을 만들고 마약을 밀반입하려 한 수법을 적발한 것은 이번이 세계 최초. 서씨와 인천공항세관 마약조사과 요원들이 세계 세관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한 건의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최근 미군 거주지 담장 밑으로 땅굴을 파고 PX 주류를 불법 반출한 ‘간 큰’ 밀수범들이 적발되면서 과연 밀수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세관 직원들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법이 총동원되는 게 바로 밀수”라며 혀를 내두른다. 상당수 밀수범들은 밀수에 성공하기 위해 영화에나 나올 법한 치밀함과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7월에 적발된 마약 밀수범들도 마찬가지. 이들은 필리핀에서 홍콩을 경유해 한국에 도착하도록 서류 봉투를 부치면서 문서 중 한 장의 뒷면에 얇은 종이를 덧대고, 그 사이에 0.2g들이로 포장한 마약 봉지들을 넣었다. 서씨와 마약 조사요원들의 ‘동물적 감각’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 마약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 실제로 화물의 어떤 점이 이상했느냐는 질문에 서씨는 “뭔가 느낌이 왔다”며 더 이상의 답변을 하지 못했다.

    서류에 숨긴 메스암페타민 0.6g 적발

    이처럼 마약이나 금괴, 위조화폐, 총기류같이 한 번 성공할 경우 큰 이득이 보장되는 것들을 밀수하려는 이들의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금괴 밀수의 경우 흔히 떠오르는 방식은 금을 잘게 잘라 운동화 밑창에 붙이거나 가방 표면을 뜯어내고 금괴를 채운 후 다시 표면을 씌워 숨기는 것. 그러나 이러한 수법은 이미 고전적인 것으로 최근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금괴 밀수범들은 훨씬 까다롭고 복잡한 절차를 거친다.



    2002년 5월23일 인천공항세관에 적발된 이모씨의 경우 홍콩에서 수입되는 파나소닉 워크맨 100개의 건전지 삽입구 안에 검은색 비닐테이프로 감은 100g짜리 황금괴를 1개씩 넣고 재포장하는 방식을 썼다. 이씨는 결국 세관 검색에 걸려 밀수에 실패했지만, 그가 10kg에 달하는 이 금을 무사히 반입했을 경우 벌어들였을 돈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밀수범들은 복잡한 절차를 아랑곳하지 않고 밀수에 열을 올린다. 세관 검색이 꼼꼼해질수록 이들의 수법은 한 단계 더 발전한다. 지난해 3월27일 부산에서 적발된 4인조 금괴 밀수조직 일당은 세관의 눈을 피해 공해상에서 선박을 이용해 금괴를 밀수하려 했다. 이들은 경남 삼천포항 남동쪽 52마일 지점인 공해상에서 일본 선박과 접선, 황금괴 76.46kg을 인수한 후 소형 어선에 나눠 싣고 특수 제작한 금괴 밀수용 조끼에 숨겨 국내에 반입하는, 특공작전을 방불케 하는 수법으로 금괴를 밀수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간 노새 막아라” 밀수와의 전쟁

    마약 밀수범들은 세관 검색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몸속에 마약을 숨겨 들여오는 ‘엽기적인’ 방법을 이용하기도 한다.

    심지어 금을 녹여 샴푸나 화장품 등으로 위장하기도 한다. 8월27일 인천공항세관은 금을 액체 상태로 만든 뒤 샴푸병 3개와 린스병 2개 음료수 병 1개에 나눠 담고, 일부는 분말 상태로 만들어 커피통 3개에 담는 등의 방식으로 3kg의 금을 밀반입하려 한 한 홍콩인 의류상을 잡아냈다.

    마약을 밀수하는 방법은 더 치밀하고 ‘엽기적’이다. 메스암페타민의 경우 1kg이 시가 30억원에 달할 정도로 고가. 일단 들여오기만 하면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마약 밀매상들은 속옷, 콘돔, 여성용 스타킹을 동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자신의 몸을 마약 밀매의 수단으로 쓰는 것조차 망설이지 않는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동안 신체의 은밀한 곳 등을 이용해 마약류를 밀반입하려다 적발당한 사례는 모두 211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9%나 늘어난 수치다. 3월3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려다 체포된 한 여성의 질 속에서 메스암페타민 94g(시가 2억8500만원어치)이 담긴 콘돔이 발견된 것 등이 대표적 사례다.

    4월9일에는 마약을 삼켜 몸 안에 넣고 밀반입하려던 30대 남자가 체내에서 마약이 새는 바람에 사망한 사고도 있었다. 남미에서 미국을 경유하는 비행기편으로 우리나라에 입국하려다 기내에서 갑자기 숨진 페루인 콜라소스 후고씨의 사체를 부검한 결과 콘돔으로 싼 코카인 뭉치 115개(902.4g, 시가 2억7000만원어치)가 발견된 것.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코카인을 포장한 콘돔 가운데 3개가 위산에 녹으면서 코카인이 흘러나오는 바람에 후고씨가 쇼크사했다고 밝혔다.

    “인간 노새 막아라” 밀수와의 전쟁

    인천공항세관에 적발된 시가 86억원 상당의 밀수금고.

    국내에서 신체를 이용해 마약을 밀반입하려다 사고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남미의 콜롬비아에는 농촌지역 빈민들을 마약 운반 전문가로 양성하는 학교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콜롬비아의 일간지 ‘엘 티 엠포’ 등 외신에 따르면 이 학교 학생들은 수술용 특수장갑으로 포장한 가루 우유를 삼킨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이를 배설하는 방법 등을 훈련한 뒤 이에 익숙해지면 마약을 삼키고 자기 몸을 이용해 마약 운반에 나선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 탄생한 ‘인간 노새’들이 마약 1kg을 운반하고 받는 수고료는 약 3000달러 선. 이들은 이 돈을 받기 위해 목숨을 걸고 마약을 삼킨 채 전 세계의 공항을 오간다. 우리나라에서도 2002년 3월11일 메스암페타민 636g을 콘돔 안에 넣고 착용한 후 속옷과 여성용 팬티스타킹을 덧입은 채 세관을 통과하려다 적발당한 남성 김모씨의 사례처럼 적지 않은 이들이 신체를 마약 운반도구로 이용하다 적발되고 있다.

    마약 탐지견의 수색을 피하기 위해 초콜릿이나 건어물 등 냄새가 심한 화물 속에 마약을 숨기는 방법도 동원된다. 3월9일 아프리카에서 홍콩을 경유해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어물 화물이 지나치게 부패한 점을 의심한 인천공항세관 직원들이 포장을 뜯자 포장의 내벽과 외벽 사이 공간에 대마초 6.7kg이 숨겨져 있었다. 메스암페타민을 액체로 만든 뒤 참기름 병에 담아 밀반입하려 하거나 의류 가방에 방향제를 뿌린 후 생아편을 숨겨오는 등의 수법도 활용되고 있다.

    지금까지 열거한 사례들의 공통점은 모두 기발한 방식을 이용했지만 결국 세관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한 채 적발된 수법들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밀수범들의 공격은 모두 세관의 튼튼한 방패를 뚫지 못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에 대한 답변은 세관에서조차 부정적이다. ‘밀수의 10%만 잡아내도 성공’이라는 말이 세관 공무원들 사이에 공공연하게 퍼져 있을 정도로 밀수범 적발은 어렵다. 한 수법이 공개되면 바로 다른 방법, 또 다른 방법으로 수법을 바꿔가며 치밀하게 시도하는 모습을 보면 당황스럽기까지 하다는 게 세관 공무원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경기 파주 교하농협 강도사건의 피의자들이 범행에 사용한 권총을 부산 감천항을 통해 밀반입했다고 밝혔듯 세관의 구멍도 곳곳에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에 대해 관세청 밀수척결기동대 박천만 사무관은 “밀수 조직들이 날로 전문화, 거대화돼가고 있는 현실에서 모든 밀수를 다 막아낼 수 있다고 자신하기는 어렵다”면서 “하지만 조사·감시 장비의 현대화, 인원 확충, 항만 감시체제 정비 등 시스템 구축에 힘써 앞으로도 국민 생활을 침해하는 밀수가 발붙일 수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장기적으로는 세관과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까지 포함하는 독립적인 밀수 대응 관청이 생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이러한 벽을 뚫기 위한 국제 밀수 조직과 밀수범들의 노력도 그만큼 더할 것이다. 뚫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사이의 끝없는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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