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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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어림없다” 盧 “두고 봐라”

대선 최대 승부처 ‘PK 민심’에 관심 집중 … 한나라당 텃밭서 노후보 약진 어디까지?

  • 부산·울산·창원=강정훈 동아일보 사회1부 기자 manman@donga.com

    입력2002-12-05 09: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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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 “어림없다”   盧 “두고 봐라”

    이회창 대세론과 노풍의 한판 대결. PK(부산·경남·울산)의 표심은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사진은 이회창 후보 지지자들(11월27일 울산·왼쪽)과 노무현 후보 지지자들(11월30일 부산대).

    ”후보별 지지율은 몇 차례 변동이 있겠지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이 지역을 너무 쉽게 봐서는 곤란할 걸요? 의외로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게 고전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 차례 선거 업무를 담당했던 경남도청의 한 간부 공무원은 이번 대선의 최대 승부처 중 하나인 부산과 울산, 경남(PK) 지역의 ‘대선 기상도’를 이렇게 요약했다.

    “이 지역이 한나라당의 굳건한 ‘텃밭’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노후보도 지역연고라는 ‘강점’이 있고,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역시 울산 등 공단 밀집지역에서는 제법 표가 있을 걸로 봐야 합니다.” 그는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상대적으로 안정감 있어 보이는 한나라당 이후보를 택하는 유권자가 많겠지만, 노후보와 권후보가 젊은층과 서민층, 노동자의 표를 의외로 많이 얻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덧붙였다.

    30여년간 우리 정치무대를 지배했던 ‘3김’이 퇴장한 가운데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서 PK 지역이 최대의 승부처로 꼽히고 있다. PK 지역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퇴임한 뒤 그를 이을 맹주를 배출하지 못했다. 대신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대항세력으로서 한나라당의 텃밭이 되었고 이회창 후보가 자연스레 이곳의 ‘대리맹주’ 역을 맡았다. 이에 대한 도전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2000년 총선 때 민국당이 그랬고, 2002년 6·13 지방선거 때 노풍을 앞세운 민주당 역시 허무한 결과만 낳았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다를 것이라는 게 민주당 노무현 후보측의 주장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노후보의 바람은 결국 미풍으로 끝나고 ‘혹시나’ 했던 선거결과는 ‘역시나’가 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한나라당 “노후보 바람은 미풍으로 끝날 것”



    부산 울산 경남의 유권자는 576만여명. 1997년 대선에서 이후보의 득표율은 53%로 한나라당의 기대에는 못 미쳤다. 한나라당은 이번 대선에서는 경남 75%를 비롯, PK 지역에서 60% 이상의 득표를 반드시 얻어내겠다는 각오다. 민주당은 경남에서 55% 등 평균 40% 이상의 득표라는 다소 ‘과잉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97년 대선에서 13%의 ‘고정표’밖에 얻지 못했다.

    과연 이번에도 이 지역 유권자들은 한나라당의 든든한 ‘후원자’가 될 것인가. 지역 유권자들의 전체적 분위기는 그럴 개연성이 크다는 쪽이면서도 대답은 상당히 유보적이었다. 11월28일 창원종합운동장 내 만남의 광장에서 열린 이회창 후보 연설대담장에서 만난 한 방송사 선거담당 기자는 “밑바닥 정서가 많이 변하고 있는데도 한나라당이 너무 안이하게 생각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창원의 한 경제단체 직원 신모씨(37)는 “경남지역을 자신들의 ‘안방’처럼 생각하는 한나라당의 태도에 자존심이 많이 상한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이야기는 지역 여론 주도층에서 종종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경상남도 선거대책위원회 관계자는 “거의 모든 지구당 위원장들이 지역에 머물면서 득표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투표 결과를 결코 쉽게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본격적인 ‘표밭갈이’가 시작된 뒤 PK지역에서의 민주당 노후보의 약진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농촌보다는 도시지역에서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의 양대 조직인 정치개혁추진위원회와 국민참여운동본부의 활동도 탄력이 붙었다. 또 부산 경남지역 각계 인사 780여명이 노후보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한때 심하게 흐트러졌던 지역별 선거대책본부도 전열을 가다듬었다. 경남선거대책본부장인 김두관 전 남해군수는 “선대위에 30, 40대의 젊고 참신한 인사들이 많이 영입돼 결속력이 훨씬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경남의 경우 노동자가 많은 거제 양산과 노후보의 고향인 김해는 특히 노후보의 강세가 두드러진다고 민주당 관계자는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관계자는 “후보단일화 직후 다소 올라갔던 노후보의 지지율이 다시 내려가고 있다”면서 “다만 정몽준 명예선대위원장이 본격적인 표몰이에 나서면 다시 상승 분위기를 탈 가능성도 있다”고 경계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노후보가 ‘DJ 양자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이 지역에서 ‘노무현=민주당=김대중’이라는 등식이 좀처럼 깨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 고무돼 있다.

    창원에서 개인택시를 모는 박모씨(49)는 “승객들 중 ‘이회창이 좋다’는 사람이 훨씬 많다”면서 “노후보는 김대통령의 실책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씨는 “전라도에 사는 친척도 ‘DJ가 서민생활을 더 어렵게 만들어놨다’며 DJ를 미워하기는 우리와 마찬가지인 것 같더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李 “어림없다”   盧 “두고 봐라”

    부산의 눈. 12월1일 부산역에서 열린 정당연설회에 참석, 연설을 듣고 있는 부산 시민들.

    한나라당은 농촌지역에서 전통적으로 강한 면모를 보여왔다. 상대적으로 민주당은 취약한 편이다. 농민단체 간부를 지낸 경남 사천의 서모씨(48)는 “나이 많은 농민들의 대부분은 노무현의 ‘가치’를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후보단일화에 대한 반응도 냉담하다”며 “노후보를 김대통령과 떼어놓고 생각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한나라당이 노-정 후보단일화를 끈질기게 비판하는 데 따른 반작용이 일부 감지된다. 진주에서 자영업을 하는 신모씨(45)는 “국민들이 후보단일화를 나름대로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마당에 한나라당과 이후보가 자꾸 비판을 해대니 보기에 좋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후보는 대범하게, 누구와 상대하든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득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훈수도 곁들였다. 한나라당이 그동안 PK 지역에서 끈질기게 구사해왔던 DJ 정권에 대한 ‘네거티브 전략’이 식상한 인상을 주는 단계에 들어선 만큼 이제는 ‘포지티브 전략’으로 전환하는 게 좋다는 얘기다.

    노후보가 국민경선에서 이겼을 당시 마치 대통령 당선이라도 된 것처럼 기자들이 몰려들고 분위기도 들떴던 노후보의 고향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은 요즘 조용하기만 하다. 김장배추를 수확해오던 이 마을 천모씨(65)는 “노후보가 고향사람인데 밀어줘야지 어쩌겠느냐”고 말했고 노후보의 형수인 민미영씨(48)도 “모두들 걱정하면서 도와주고 있다”고 전했다.

    노후보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에서는 ‘노풍’이 상당하다는 게 지역정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술집 등에서 노후보 이야기를 화제로 삼는 시민들도 부쩍 늘었다. 회사원 박성식씨(37)는 “YS와 DJ도 이끌어내지 못한 후보단일화를 노무현, 정몽준이라는 신세대 정치인이 성공시킨 것은 역사적인 일”이라며 “국민이 정치개혁을 얼마나 바라고 있는가는 이번 선거에서 분명히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은 대안이 없어 부산 민심이 한나라당에 쏠리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젊은층을 중심으로 새바람이 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후보단일화 이후 대선 자체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졌다. 부산에서 교직에 종사하고 있는 황남훈씨(42)는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정치 선진화를 추구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고, 대학생 김경훈씨(24)는 “친구들 사이에서 전에 없이 대선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고 학교 주변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노후보의 ‘언행’이나 정치적 행보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해운대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 김모씨(60)는 “노후보는 말을 가리지 않고 한 탓에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어 거세었던 ‘노풍’을 스스로 사그라뜨리지 않았느냐”면서 “부산에서 말없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후보 지지자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주부 김효영씨(34)는 지지 후보를 밝히지는 않은 채 “서민들에게 따뜻함을 주고 깨끗한 정치를 펼 수 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됐으면 좋겠다”고만 주문했다.

    울산은 정몽준 의원의 대선출마 선언 이후 불었던 ‘정풍’의 근원지. 따라서 PK 지역에서 후보단일화 효과가 가장 극명하게 나타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와 함께 ‘노동자의 도시’답게 민주노동당의 지지세도 여전히 강하다. 이에 따라 울산은 ‘맹주’를 자처하는 한나라당 이후보와 단일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민주당 노후보, 민노당 권후보가 가장 치열한 접전을 벌일 지역으로 꼽힌다.

    민주당은 이번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울산 중구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는 대신 국민통합21의 후보를 지원할 계획이다. 정의원의 불출마로 허탈감에 빠진 정후보 지지자들이 중구 보궐선거를 계기로 재결집할 것이라는 기대도 갖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 울산시지부 강용식 조직부장은 “정의원은 울산 지역구 조직을 짧은 기간에 급조해 뿌리가 없다”면서 “정의원 지지자 대부분이 이후보 지지로 돌아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역문화단체의 한 관계자도 “정의원 지지자 가운데 노후보에게 거부감을 가진 사람이 많아 후보단일화 효과가 그리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노당 조승수 울산선거대책본부장은 “ 6·13 지방선거 때 울산시장 선거에서 민노당 후보가 분패했던 만큼 민노당의 지지기반은 탄탄하다”며 권영길 후보의 득표율이 예상을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울산은 李·盧·權 최대 접전지역 될 듯

    시민들의 반응이 엇갈리기는 PK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였다. 울산에서 10여년째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권모씨(41)는 “이념이 다른 후보가 단일화한 것은 정권을 잡기 위한 야합에 불과하다”면서 “정의원이 출마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보에게 표를 찍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사장인 이모씨(54)는 “노후보가 노동자 쪽으로 편향된 정책을 펼 것 같아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정의원이 손을 들어준 이상 노후보를 지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지역의 한 중견 언론인은 “상당수 유권자들이 지지 후보를 확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종의 ‘정신적 혼돈 상태’를 겪고 있다”며 “남은 기간 동안 누가 더 공을 들이고, 더 조직적인 선거운동을 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PK 지역의 민심이 후보단일화 이후 과거의 일방적 ‘한나라당 지지’에서 바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PK가 고향인 민주당 노무현 후보도 이런 ‘틈새’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지역구 국회의원과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 지방의회를 석권하고 있는 두꺼운 한나라당의 벽을 ‘노풍’이 과연 뚫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나 분명한 것은 노후보가 이후보에게서 PK 지역의 표를 얼마나 빼앗아오느냐에 따라 이번 대선의 승부가 갈릴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후보들은 투표일까지 PK 지역 표심의 향배에 애간장을 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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