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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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과 낭만 싣고 ‘호반의 도시’로 출발!

  • 양영훈 / 여행작가 www.travelmaker.co.kr

    입력2002-12-05 12: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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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과 낭만 싣고  ‘호반의 도시’로 출발!

    추억의 경춘선 열차를 타고 춘천으로 향하는 한 백화점 여행강좌 회원들.

    ‘호반의 도시’ 춘천으로의 기차여행은 아득한 추억을 더듬어가는 시간여행이다.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 가운데 충동적으로 경춘선 열차를 타거나 경춘가도를 달려서 춘천 땅 한번 밟아보지 않은 이가 드문 탓이다. 그때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가슴조차 메마른 중년에 접어들었어도 일단 경춘선 열차에 몸을 실으면 세월의 더께에 눌려 흩어졌던 추억의 편린들이 하나둘씩 제자리를 잡아가고, 마침내 옛추억은 갓 인화된 사진처럼 새뜻한 장면으로 다시 뇌리에 펼쳐지곤 한다.

    뭔지 모를 열정과 욕구로 들끓던 학창시절, 춘천은 답답한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해방구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삶에 지치고 영혼이 곤할 때면 무작정 청량리역으로 달려가 경춘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의 출입구 손잡이를 붙잡고 서서 무심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거나, 드넓은 의암호 호반에서 고요한 수면을 응시하며 침잠하노라면 터질 듯한 울분과 아픔마저도 얼마쯤은 삭힐 수가 있었다.

    그런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춘천으로의 짧은 여행이 평범하면서도 각별하다. 눈보다 가슴을 채워주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서늘한 새벽녘 관광버스를 가득 채운 주부들 중에는 새로운 구경거리보다는 옛추억을 되새겨볼 작정으로 길을 나선 이가 적지 않을 성싶다. 물론 필자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번 여행은 삼성플라자(분당) 문화아카데미의 여행강좌에서 마련한 행사다. 그래서 이 여행강좌에 참여하려면 먼저 문화아카데미에 회원으로 가입해야 한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실시하는 강좌들은 대부분 주부들을 대상으로 운영된다. 여행강좌도 예외가 아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회원들도 20대부터 6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층의 주부들이었다.

    추억과 낭만 싣고  ‘호반의 도시’로 출발!

    ‘격외산당’을 찾은 회원들에게 자신의 작품세계와 철학에 대해 강연하고 있는 소설가 이외수씨.

    여행강좌는 철저한 현장학습으로만 진행된다는 점이 여타의 강좌들과 다르다. 그래서 강사의 자질과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강좌의 강사를 맡고 있는 사람은 송일봉씨(44). 오랫동안 여러 백화점 문화센터의 여행강좌를 이끌어온 데다 각종 방송매체에도 출연하고 있어, 대중적인 인지도가 비교적 높은 여행작가다.



    분당과 성남 시내를 벗어나 외곽순환고속도로에 들어선 관광버스의 첫번째 행선지는 대성리역. 그곳에서 춘천역까지는 관광버스 대신 경춘선 통일호 열차를 이용했다. 경춘가도의 정체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평일의 경춘가도는 철로보다 훨씬 빠르고 시원스럽다. 그런데도 굳이 교통편을 바꾼 것은 열차여행만의 독특한 멋과 낭만을 느껴보기 위해서다. 칼바람 부는 대성리역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회원들의 표정도 이미 들떠 있었다.

    겨울에 들어선 차창 밖의 풍경이 그림인 듯 아름답다. 숨죽여 흐르는 강물 위로는 뽀얀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강기슭의 산비탈에 빽빽이 들어선 나무마다엔 설화(雪花)보다 화사한 상고대(霧淞)가 피었다. 춘천을 향해 달리는 열차 안에는 웃음꽃이 만발하고 희뿌연 차창 밖에는 서리꽃이 피고…. 모두들 풍경에 젖고 추억에 잠긴 사이 열차는 어느덧 춘천역에 도착했다. 춘천역 앞에서 다시 관광버스에 오른 일행은 소양강댐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청평사 가는 배를 타기 위해서다.

    배를 타고 절에 간다?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춘천여행만의 별격(別格)이다. 청평사 선착장에서 절까지는 약 30분 거리. 오봉산(779m) 자락의 아담한 계곡과 나란히 이어지는 오솔길이 참으로 운치 있다. 형형색색의 가을 옷을 완전히 벗기도 전에 찾아온 겨울이라, 맑은 계류가 흘러내리는 골짜기에는 철 지난 낙엽과 때 이른 백설이 뒤섞여 수북이 쌓여 있다.

    청평사는 고려 광종 24년(973)에 승현 선사가 창건하고 백암선원이라 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폐사되는 바람에 문종 22년(1068) 춘주도감창사 이의가 다시 절을 세우고 보현원이라 칭했다고 한다. 그 뒤 이의의 장남 이자현이 관직을 버리고 이곳에 들어와 중창하고 문수원(文殊院)이라 개명했는데 자신이 두 번이나 친견했다는 문수보살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또한 그는 문수원이 자리잡은 오봉산(당시는 청평산) 골짜기 전체를 사찰의 정원으로 가꾸었다. 이것이 오늘날 고려정원의 모범이자 가장 오래된 정원으로 전해져 오는 ‘문수원 고려정원’이다.

    추억과 낭만 싣고  ‘호반의 도시’로 출발!

    오봉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청평사 전경(위).눈 쌓인 오솔길을 따라 청평사로 향하는 회원들.

    그러나 오늘날의 청평사에서는 천년고찰다운 고풍스러움을 느끼기 어렵다. 한국전쟁 당시 회전문(보물 제164호)을 제외한 모든 건물들이 불타버린 탓이다. 아름답고도 거대했다는 고려정원도 영지(影池) 이외의 다른 자취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동안 거대한 석축과 회전문만 덩그러니 남아 폐찰이나 다름없던 청평사에는 근래에 들어와 새로운 당우(堂宇)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강사 송일봉씨로부터 영지에 얽힌 재미있는 전설도 듣고, 중국 당나라의 평양공주가 목욕했다는 공주탕도 둘러본 일행은 청평사 입구의 오봉산장(문의: 033-244-6606)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 메뉴는 산채비빔밥. 고향이 전라도 목포라는 주인 아주머니의 손맛 덕분인지, 일행들 모두 만족해했다.

    오후 1시30분 배를 타고 소양강댐 선착장으로 되돌아온 일행은 마지막 행선지인 격외산당(格外山堂)으로 향했다. 독특하고 개성 있는 작품세계를 구축했다는 평을 듣는 소설가 이외수씨의 자택이다. 흔히들 ‘기인’ ‘괴짜’로만 알고 있는 작가는 의외로 소탈하고 친근했다. 작품의 구상과 집필에 골몰하는 작가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을 손님들일 텐데도, 이외수씨는 자신의 작품세계와 철학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아낌없이 풀어놓았다. 당호(堂號)처럼 격의 없는 만남의 자리였다. 소설가 이외수씨와 강사 송일봉씨의 남다른 친분이 아니었으면 마련될 수 없었을 귀한 자리였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회원들도 이외수씨와의 만남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입을 모았다.

    잠시나마 옛추억 속으로 빠져들고, 소녀시절의 문학적 감수성을 되살렸기 때문일까? 서울로 되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회원들의 표정은 여전히 상기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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