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엔 천당, 지상엔 항저우(杭州)가 있다고 했던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항저우에 도착한 나는 흐릿한 시야 속에서 명승 시후(西湖)를 보고 싶지 않아 서쪽으로 200여km 떨어진 허무두(河母渡) 유적부터 찾았다. 양쯔강 하구의 그곳에서 7000년 전 벼농사 문화를 일군 흔적들이 발견되어 장강(長江) 문명이 황허문명보다 앞섰다는 것이 증명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기에 그걸 내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다행히 현장은 잘 보존돼 있었고 박물관도 세워져 있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문제는 여전히 시후였다. 그 다음 날도 날씨가 흐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는 일. 호수로 가 배를 탔다. 주위가 흐릿한 탓에 호수 일대는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했다.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시후는 인공적으로 축조한 호수나 못은 아니다. 그만큼 크고 넓다. 내가 이곳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은 ‘전(田)’자 모양의 작은 섬 삼담인월(三潭印月). 유난히 수면이 잔잔한 호수 위에 세워진 세 개의 석등에 불이 켜지면 세 개의 달이 수면에 비친 것 같아 그 같은 이름을 갖게 되면서 ‘시후 10경’의 하나가 된 만큼 사람들이 몰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절대 소란스럽지도 복잡하지도 않다. 오히려 무언가를 생각케 하고 마음을 가다듬게 한다.
삼담인월에서 다시 배를 타고 꾸산(孤山)이란 호숫가의 작은 언덕으로 갔다. 때가 되기도 하여 어느 찻집에 앉아 항저우가 자랑하는 롱징 차를 한 잔 시키고는 준비해간 빵으로 요기를 했다. 촌음을 아껴 써야 하는 배낭여행객이라 그것도 잠깐, 찻잔이 비기가 무섭게 길 맞은편의 저장성 박물관으로 향했다. 장강 유역에서 일어난 문명의 값진 흔적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있어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발길은 어느새 청의 건륭제가 사고전서를 보관하기 위해 세운 문란각을 향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박물관은 문란각 터에 들어선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시후 10경을 모조리 둘러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허락지 않아 다음 날 아침 하나만 더 보기로 하고 일찍 ‘곡원풍하(曲院風荷)’로 갔다. 빽빽한 수목, 짙은 녹음, 그림 같은 못, 꼬불꼬불한 산책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찾아온 사람들에게 태극권의 무대가 되어주고 있는 그곳에선 모든 것이 ‘슬로’(Slow)였다. 느려터진 슬로가 아니라 여유의 동의어로서의 슬로 말이다. 중국인들의 ‘만만디’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듯했다.
■ 권삼윤/ 역사여행가 tumida@hanmail.net
파리에서 TGV로 3시간45분, 스위스 제네바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안느시(Annecy)는 프랑스 알프스 지대에 있는 인구 5만명의 소도시다. 프랑스이면서도 산뜻한 스위스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작고 예쁜 휴양도시다.
드넓고 푸른 호수와 하얀 백조, 호숫가의 초록 잔디밭이 배경인 이 도시로 들어갔다면, 박물관이나 볼거리를 찾아 바쁘게 다녔던 대도시에서의 여행 패턴은 잠시 잊어도 좋을 듯하다. 구시가의 운하를 따라 난 좁은 길들, 그 길을 따라 늘어선 카페 바 레스토랑 작은 기념품점들 사이를 산책 나온 기분으로 느긋하게 걸어다니다 보면 안느시 호숫가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백조에게 딱딱한 바게뜨 조각을 뜯어주며 맑고 푸른 호수를 마음껏 만끽해 보자. 그리고 나서 호숫가의 그림 같은 마을들을 자전거를 빌려 쉬엄쉬엄 돌아보다 보면 모든 스트레스가 바람과 함께 날아가버릴 것이다.
늦은 봄에서 초가을까지 햇볕이 좋은 날에는 호수 주변 잔디밭에서 선탠 하는 사람들 무리에 끼어 휴식을 취해도 좋고, 여름에는 카누 카약 보트를 빌려 호수를 한 바퀴 돌 수도 있다. 그리고 겨울에는 인근의 스키 지역으로 알프스의 스키를 즐기러 가기에도 용이하다.
안느시는 그다지 손꼽을만한 역사적 유적이 남아 있지 않아서인지, 한국의 대다수의 여행 가이드북에 언급돼 있지 않다. 그래서인지 한국인 여행자들 중에서 이 곳을 들르는 사람은 거의 찾을 수 없다. 유일하게 여행 가이드북 ‘론리 플래닛’에만 안느시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그러나 프랑스와 스위스 두 나라의 정취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데다가 깨끗한 알프스의 자태를 감상하기에는 안느시가 제격이다. 프랑스인들 사이에서는 한적하게 쉴 수 있는 휴양지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곳에 사는 친지를 찾아갔다가 아예 몇 개월간 눌러앉아 있었던 추억이 있어 시간이 갈수록 더 그리워지는 도시다.
안느시로 가는 교통편으로 가장 편리한 것은 제네바에서 오가는 버스. 파리 리용역에서도 안느시로 가는 TGV가 1일 5~6편 운행된다.
■ 어성애 / 신발끈여행사 부장 ybjang@shoestring.co.kr
태국과 베트남의 인접국인 캄보디아 북서부의 작은 도시 시엡리업 (Siem Reap)에서 다시 북쪽으로 약 6km쯤 떨어진 곳에 사방 수십km에 이르는 크메르 왕조의 위대한 문화유산 앙코르 유적공원이 있다.
크메르 왕국은 서기 802년에서 1432년 사이에 존재했던 왕국이었다. 제국이 가장 번성했을 무렵인 12세기에는 당시 궁성인 앙코르톰 (Angkor Thom)을 중심으로 발달한 문화와 약 100만명의 인구를 자랑했던 강국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의 런던의 인구가 5만명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크메르 왕국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케 한다.
이들은 훗날 버마군과 태국군의 연이은 침략으로 인해 멸망했는데, 일본의 황실이 우리 백제의 피를 이어받은 것처럼, 현재 태국의 왕실은 크메르 왕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예전 왕국의 흔적을 우리는 현재의 앙코르 유적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13세기 이후 수백년 간 잊혀져 있던 앙코르와트가 역사에 다시 등장한 것은 1860년. 프랑스의 신부와 탐험가들이 이곳의 존재를 서구에 알렸고, 프랑스가 캄보디아를 식민지로 삼은 후로는 프랑스 학자들이 페허가 된 앙코르 유적들을 정리하고 복원했다. 흔히 앙코르와트라고 하지만 앙코르와트는 광대한 앙코르 유적 중 대표적인 사원만을 가리키는 말이다.
8세기부터 13세기 사이에 건설된 앙코르 유적들은 아시아인들의 정신을 지탱해온 사상의 보고이기도 하다. 앙코르 유적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뱀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나가(Naga)’는 농경사회의 풍요와 생산을 상징한다. 그래서 ‘나가’ 가 사는 마을이란 뜻의 ‘나코르’에서 음이 변해 현재의 ‘앙코르’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농경문화 위에 힌두교와 불교의 사상을 바탕으로 지어진 건축물들이 앙코르 유적들인 만큼, 그곳에 가는 여행자들은 힌두교와 불교에 관한 최소한의 지식이라도 갖추고 가는 것이 좋다.
근세의 캄보디아는 프랑스의 식민지 시절을 거쳐 공산반군인 크메르루즈와 정부군 사이의 오랜 내전을 겪었지만 1996년 이후 훈센 수상의 통치 아래 매우 안정되어 여행하기에 무리가 없다. 또 98년 이전에는 프놈펜, 호치민 등에서 항공편을 이용해서만 앙코르와트로 갈 수 있어서 주머니 사정이 빤한 배낭여행객들이 가기 쉬운 여행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98년 2월 태국의 방콕에서 앙코르와트로 가는 육로 국경이 개방됨으로써 이 길을 통해 점차 많은 배낭여행객들이 앙코르와트를 찾고 있다.
■ 김슬기 / 여행웹진 트래블게릴라 대표 tourtask@travelg.co.kr
문제는 여전히 시후였다. 그 다음 날도 날씨가 흐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는 일. 호수로 가 배를 탔다. 주위가 흐릿한 탓에 호수 일대는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했다.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시후는 인공적으로 축조한 호수나 못은 아니다. 그만큼 크고 넓다. 내가 이곳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은 ‘전(田)’자 모양의 작은 섬 삼담인월(三潭印月). 유난히 수면이 잔잔한 호수 위에 세워진 세 개의 석등에 불이 켜지면 세 개의 달이 수면에 비친 것 같아 그 같은 이름을 갖게 되면서 ‘시후 10경’의 하나가 된 만큼 사람들이 몰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절대 소란스럽지도 복잡하지도 않다. 오히려 무언가를 생각케 하고 마음을 가다듬게 한다.
삼담인월에서 다시 배를 타고 꾸산(孤山)이란 호숫가의 작은 언덕으로 갔다. 때가 되기도 하여 어느 찻집에 앉아 항저우가 자랑하는 롱징 차를 한 잔 시키고는 준비해간 빵으로 요기를 했다. 촌음을 아껴 써야 하는 배낭여행객이라 그것도 잠깐, 찻잔이 비기가 무섭게 길 맞은편의 저장성 박물관으로 향했다. 장강 유역에서 일어난 문명의 값진 흔적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있어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발길은 어느새 청의 건륭제가 사고전서를 보관하기 위해 세운 문란각을 향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박물관은 문란각 터에 들어선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시후 10경을 모조리 둘러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허락지 않아 다음 날 아침 하나만 더 보기로 하고 일찍 ‘곡원풍하(曲院風荷)’로 갔다. 빽빽한 수목, 짙은 녹음, 그림 같은 못, 꼬불꼬불한 산책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찾아온 사람들에게 태극권의 무대가 되어주고 있는 그곳에선 모든 것이 ‘슬로’(Slow)였다. 느려터진 슬로가 아니라 여유의 동의어로서의 슬로 말이다. 중국인들의 ‘만만디’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듯했다.
■ 권삼윤/ 역사여행가 tumida@hanmail.net
파리에서 TGV로 3시간45분, 스위스 제네바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안느시(Annecy)는 프랑스 알프스 지대에 있는 인구 5만명의 소도시다. 프랑스이면서도 산뜻한 스위스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작고 예쁜 휴양도시다.
드넓고 푸른 호수와 하얀 백조, 호숫가의 초록 잔디밭이 배경인 이 도시로 들어갔다면, 박물관이나 볼거리를 찾아 바쁘게 다녔던 대도시에서의 여행 패턴은 잠시 잊어도 좋을 듯하다. 구시가의 운하를 따라 난 좁은 길들, 그 길을 따라 늘어선 카페 바 레스토랑 작은 기념품점들 사이를 산책 나온 기분으로 느긋하게 걸어다니다 보면 안느시 호숫가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백조에게 딱딱한 바게뜨 조각을 뜯어주며 맑고 푸른 호수를 마음껏 만끽해 보자. 그리고 나서 호숫가의 그림 같은 마을들을 자전거를 빌려 쉬엄쉬엄 돌아보다 보면 모든 스트레스가 바람과 함께 날아가버릴 것이다.
늦은 봄에서 초가을까지 햇볕이 좋은 날에는 호수 주변 잔디밭에서 선탠 하는 사람들 무리에 끼어 휴식을 취해도 좋고, 여름에는 카누 카약 보트를 빌려 호수를 한 바퀴 돌 수도 있다. 그리고 겨울에는 인근의 스키 지역으로 알프스의 스키를 즐기러 가기에도 용이하다.
안느시는 그다지 손꼽을만한 역사적 유적이 남아 있지 않아서인지, 한국의 대다수의 여행 가이드북에 언급돼 있지 않다. 그래서인지 한국인 여행자들 중에서 이 곳을 들르는 사람은 거의 찾을 수 없다. 유일하게 여행 가이드북 ‘론리 플래닛’에만 안느시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그러나 프랑스와 스위스 두 나라의 정취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데다가 깨끗한 알프스의 자태를 감상하기에는 안느시가 제격이다. 프랑스인들 사이에서는 한적하게 쉴 수 있는 휴양지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곳에 사는 친지를 찾아갔다가 아예 몇 개월간 눌러앉아 있었던 추억이 있어 시간이 갈수록 더 그리워지는 도시다.
안느시로 가는 교통편으로 가장 편리한 것은 제네바에서 오가는 버스. 파리 리용역에서도 안느시로 가는 TGV가 1일 5~6편 운행된다.
■ 어성애 / 신발끈여행사 부장 ybjang@shoestring.co.kr
태국과 베트남의 인접국인 캄보디아 북서부의 작은 도시 시엡리업 (Siem Reap)에서 다시 북쪽으로 약 6km쯤 떨어진 곳에 사방 수십km에 이르는 크메르 왕조의 위대한 문화유산 앙코르 유적공원이 있다.
크메르 왕국은 서기 802년에서 1432년 사이에 존재했던 왕국이었다. 제국이 가장 번성했을 무렵인 12세기에는 당시 궁성인 앙코르톰 (Angkor Thom)을 중심으로 발달한 문화와 약 100만명의 인구를 자랑했던 강국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의 런던의 인구가 5만명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크메르 왕국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케 한다.
이들은 훗날 버마군과 태국군의 연이은 침략으로 인해 멸망했는데, 일본의 황실이 우리 백제의 피를 이어받은 것처럼, 현재 태국의 왕실은 크메르 왕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예전 왕국의 흔적을 우리는 현재의 앙코르 유적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13세기 이후 수백년 간 잊혀져 있던 앙코르와트가 역사에 다시 등장한 것은 1860년. 프랑스의 신부와 탐험가들이 이곳의 존재를 서구에 알렸고, 프랑스가 캄보디아를 식민지로 삼은 후로는 프랑스 학자들이 페허가 된 앙코르 유적들을 정리하고 복원했다. 흔히 앙코르와트라고 하지만 앙코르와트는 광대한 앙코르 유적 중 대표적인 사원만을 가리키는 말이다.
8세기부터 13세기 사이에 건설된 앙코르 유적들은 아시아인들의 정신을 지탱해온 사상의 보고이기도 하다. 앙코르 유적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뱀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나가(Naga)’는 농경사회의 풍요와 생산을 상징한다. 그래서 ‘나가’ 가 사는 마을이란 뜻의 ‘나코르’에서 음이 변해 현재의 ‘앙코르’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농경문화 위에 힌두교와 불교의 사상을 바탕으로 지어진 건축물들이 앙코르 유적들인 만큼, 그곳에 가는 여행자들은 힌두교와 불교에 관한 최소한의 지식이라도 갖추고 가는 것이 좋다.
근세의 캄보디아는 프랑스의 식민지 시절을 거쳐 공산반군인 크메르루즈와 정부군 사이의 오랜 내전을 겪었지만 1996년 이후 훈센 수상의 통치 아래 매우 안정되어 여행하기에 무리가 없다. 또 98년 이전에는 프놈펜, 호치민 등에서 항공편을 이용해서만 앙코르와트로 갈 수 있어서 주머니 사정이 빤한 배낭여행객들이 가기 쉬운 여행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98년 2월 태국의 방콕에서 앙코르와트로 가는 육로 국경이 개방됨으로써 이 길을 통해 점차 많은 배낭여행객들이 앙코르와트를 찾고 있다.
■ 김슬기 / 여행웹진 트래블게릴라 대표 tourtask@travel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