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금감원의 카드업 건전성 감독 강화 대책은 외환 우리 현대 신한 동양 카드 등 중소형 카드사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선두업체들과 비교하면 이들 카드사들은 카드 발급 숫자 면에서 3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형편. 또 외환 현대 동양 카드 등 3개사는 올 들어 9월 말까지 200억∼6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전업 카드사들의 연체율이 10월 들어 9월보다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면서 카드사들 사이에서는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금감원이 발표한 9개 전업 카드사의 10월 말 평균 연체율(하루 이상 연체 기준)은 10.4%로 9월의 9.2%보다 1.2%포인트 높아졌다. 신용카드사 연체율이 처음으로 10%를 돌파한 것. 회사별로는 대표적 우량업체인 LG카드가 9월에 비해 3.9%포인트 늘어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LG 삼성 국민과 같은 전업계 카드사들은 이러한 최근 수치에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 분위기다. LG카드의 한 관계자는 “7월 이후 LG나 삼성의 고객관리 강화 차원에서 떨어져 나가는 고객들을 신규 카드사들이 떠안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카드시장에 뛰어든 지 얼마 되지 않은 신규 카드사들은 고객 기반을 넓히기 위해 우량업체들에 비해서는 고객을 선별하는 기준이 덜 엄격할 수밖에 없는 형편.
이 관계자의 말처럼 LG카드나 삼성카드는 상대적으로 느긋한 입장이다. 일단 올 들어 9월 말까지 5000억원 이상의 당기순이익을 내고 있는 상황인 데다 일찍부터 고객관리를 강화해왔기 때문에 건전성 감독 강화 대책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지 않겠느냐는 것. LG카드 관계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보면 시장이 빅3 또는 빅5만 남고 자연스레 정리되는 상황으로 빠르게 재편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빅3 아니면 빅5만 남는다?
단기적으로는 우량 카드사들도 군소 카드사들과 함께 동반 타격을 받겠지만 진통기를 거치고 나면 오히려 안정적 수익성 확보를 바탕으로 시장 기반을 다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표시하고 있다. 삼성카드의 한 관계자도 “놀이공원 무료 입장, 스포츠 경기장 할인 등으로 계열사 연계 마케팅을 통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어 시장 분위기가 구조조정 쪽으로 가더라도 전혀 영향 받을 것이 없다”고 자신했다.
반면 신규 카드사의 한 관계자는 “영업을 시작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서 7월부터 연체율 축소에 모든 영업의 초점이 맞춰지는 바람에 중장기적인 영업 전략을 세울 겨를도 없었던 형편”이라고 실토하기도 했다. 일부 신규 카드사는 영업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모(母)은행의 업무 대행에 따른 수수료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신한 등 신규 카드사들은 다른 기업계 전업 카드사와 달리 대부분 금융지주회사 내 별도법인 형태로 존재하고 있어 모은행과의 수수료율 등이 영업수지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형편.
LG카드와 삼성카드 등 기업계 대형 카드사들은 정부의 규제 대책에도 불구하고 TV광고 등을 통해 마케팅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반면 국민카드 같은 은행계 카드사들은 고객 관리를 부쩍 강화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SK텔레콤의 카드사업 진출이나 조흥은행의 카드사업부 매각 등이 늦춰지면서 신규 진입이 지연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SK텔레콤은 외환카드 인수가 어려워지자 전북은행 카드사업부를 인수하기로 합의한 바 있으며, 조흥은행 카드사업 부문은 세계 최대 금융그룹인 GE캐피털에 의해 인수가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카드산업 신규 진출을 추진하는 이들 역시 카드산업의 수익성이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BC카드 사장을 지낸 단국대 오무영 교수(신용카드학과)는 “앞으로 비로소 카드사들 간에 치열한 생존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규제 강화로 인해 자연스레 시장은 M&A 분위기로 접어들 것 같다. 은행계 카드사들 중 일부는 정리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정작 카드업체들 사이에서는 내심 정부의 건전성 감독 강화 대책이 끝까지 밀어붙이기로 일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측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여신금융협회 이보우 상무는 “카드사들 수지가 급격히 악화된다면 감독기관도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올해 말 결산 결과 전업 카드사 9개 중 절반 정도만 적자가 나더라도 감독당국이 멈칫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금감원의 과도한 규제가 멀쩡한 기업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업체별 특화전략 체질 개선 필요
시장에서도 금감원의 ‘목 조르기’로 인해 당장 구조조정 국면으로 들어갈 것으로는 보지 않는 분위기다. 교보증권 애널리스트 성병수씨는 “금감원에서는 자연스런 M&A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카드사들마다 처한 상황이 달라 본격적인 구조조정 작업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씨는 “조흥과 국민 등 은행계 카드사들 역시 카드 부문에서 리스크가 있더라도 은행 전체 수익성에서 충격을 흡수해줄 수 있기 때문에 당장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카드사들 입장에서는 지금까지처럼 외형 위주의 고객확보 전략을 지양하고 업체별 특화전략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들은 카드사들이 지금처럼 무분별한 고객확보 전략에 나선 것을 LG 삼성 등 기업계 카드사들이 시장에 뛰어들면서부터로 보고 있다. 기업계 카드사들이 든든한 자금력을 앞세워 물량 위주 공세에 나서면서 카드시장이 경쟁구도로 내몰렸다는 것이다. 카드사별 특화전략은 이제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동아대 박병형 교수(경제학)는 “무차별적인 카드 발급 관행을 계속한다면 결국 부메랑이 되어 카드사들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신금융협회 이보우 상무도 “기업계 카드사들도 계열사들의 제조업 분야와 연계한 서비스를 적극 개발하는 등 체질 개선에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의미에서 당분간 카드사들은 고객들의 ‘물관리’를 통한 연체율 축소에 총력을 기울이겠지만 내부 정리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엇비슷한 규모의 은행계 카드사들이나 군소 카드사들을 중심으로 짝짓기에 나설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 구조조정 움직임을 다그치는 것은 감독당국의 강한 의지다. 금감원 노태식 비은행감독국장은 “카드사들이 회원확보를 위해 무이자 할부를 늘리면서 신용판매 부문에서는 오히려 적자를 유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큰 문제”라며 “신용 분야에서는 적자를 면치 못하면서 대부분 현금서비스를 통해서만 수익을 내는 구조를 이번 기회에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의 이러한 의지를 구조조정의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