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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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달러에 아기 파세요”

캄보디아 아기매매 성행… 중개업자가 사들여 매달 100여명 미국 입양

  •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입력2004-10-15 15: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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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달러에 아기 파세요”
    아시아의 최빈국 중 하나인 캄보디아가 새로운 ‘아기 수출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매달 100여명의 캄보디아 아기가 입양 형태로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미국의 양부모들은 보통 3~6개월이면 비자를 포함한 모든 수속을 다 끝내고 아기를 품에 안을 수 있다. 중국이나 베트남 등의 아기를 입양할 때, 수속하는 데만 1년 가까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빠른 편이다. 그러나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이렇게 빨리 입양이 완료된다는 점, 그리고 아기가 끊임없이 ‘공급’된다는 사실이 말이다.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캄보디아의 아기 입양 실태를 현지에서 취재했다. 취재 도중 기자들은 아기들이 생일이나 부모 이름, 병력 등을 모두 잃어버린 채 입양기관으로 넘겨지는 과정을 확인했다. 쉽게 말해 아기의 과거를 지우는 ‘아기세탁’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중간에서 아기를 ‘공급’하는 입양 중개업자들도 성업중이다. 이들은 프놈펜 주위의 빈민촌을 돌아다니며 손쉽게 아기들을 사 모은다. 아기의 부모들이 받는 가격은 보통 150달러에서 200달러(약 18만~24만원). 미국인 양부모들이 선호하는 여자 아기, 그리고 갓난아기일수록 가격은 더 비싸다. 이 과정에서 부모를 속이거나 아예 아기를 뺏다시피 데려오는 경우도 있다.

    한 명 입양에 9천 달러나 챙겨

    사실 해외입양이 투명한 절차 속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루마니아에서는 암암리에 ‘아기 경매’나 ‘아기 암시장’이 열리고 있다. 모두 미국으로의 입양을 염두에 둔 장사다. 과테말라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몇 년 전에는 미국 경찰이 베트남 아기들을 사이프러스와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밀입국시키는 루트를 적발한 사례도 있었다. 현재 미국으로 입양되는 외국인 아기는 연간 2만명에 달한다.



    캄보디아는 300만명이 사망한 폴 포트 정권의 대학살을 비롯해 정치적 격변, 빈곤, AIDS와 결핵 등 갖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아시아의 최빈국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270달러에 불과하다. 반면, 출산율은 아시아에서도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이런 와중에서 미국 입양은 차라리 행운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아기 중개업자들은 이 점을 놓치지 않는다. 그들은 부유해 보이는 미국인 부모가 캄보디아인 아기를 다정하게 안고 있는 사진을 보여주며 “미국에 가면 이런 환경에서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부모들에게 아기를 팔라고 권유하는 것이다. 캄보디아에는 출생과 사망을 관리하는 정부기관이 없다. 적지 않은 수의 아기들이 아예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채 생후 4, 5일 안에 버려진다. 이 아이들은 성장한 후에도 영영 부모를 찾을 가능성이 없다. 이런 상황은 사설 중개업자들이 설칠 수 있는 환경을 부채질하고 있다.

    사설 중개업자들은 아기 입양 과정에서 적잖은 이득을 챙긴다. 미국인 양부모가 아기 한 명을 입양하는 데 드는 비용은 1만3000~2만 달러(약 1560만~2400만원). 이중 캄보디아의 사설 중개업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무려 9000달러(약 1080만원)나 된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중개업자들은 아예 고아원 시설까지 만들어 아기들을 수용한다. 귀엽게 생긴 아기의 사진을 찍어 미국의 예비 양부모들에게 이메일로 보내주는 ‘서비스’도 한다. 그러나 장애가 있거나 좀 큰 아이들은 다른 곳에 숨겨둔다. 아이들을 직접 보러 오는 미국인들에게 들킬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아기의 친부모를 확인하려는 양부모도 가끔 있다. 그러면 중개업자들은 ‘거리에 버려져 울고 있는 아기를 주워왔다’는 식으로 둘러댄다. “우리 아기가 태어난 7월은 캄보디아의 우기입니다. 거의 매일 비가 오지요. 중개업자는 아침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마을의 공동수도 옆에 아기가 버려져 있다고 했어요. 하지만 생후 5일밖에 안 된 아기가 비를 맞으면서 몇 시간씩 살아 있을 수 있을까요? 전 믿을 수 없어요.” 캄보디아 출신 아기 라헬을 입양한 크리스티나와 벤 크로니스터 부부의 말이다. 크리스티나는 캄보디아까지 건너가 라헬의 친부모를 찾고자 했으나 라헬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았다.

    ‘캄보디아인들이 아기를 마구 버리는 무정한 사람들은 아니다’라는 항변도 있다. 올해 세 살인 나락 덴은 버려졌다가 다시 부모 품으로 되돌아왔다. 프놈펜의 빈민가에서 살고 있던 나락의 친어머니는 다시 아기를 임신해서 도저히 나락을 키울 수가 없었다. 그녀는 50달러를 받고 딸을 한 중개업자의 사설 고아원에 팔아 넘겼다. 중개업자는 미국 입양이 되면 100달러를 추가로 보내줄 것이라고 말했다.

    나락의 이모인 나린 케오는 이 말을 듣고 “밤새 울기만 했다”고 털어놓았다. 나린 케오 역시 이혼한 데다 세 명의 자녀를 기르고 있는 처지였다. 하지만 그녀는 빚을 내 50달러를 치르고 조카를 데리고 왔다. 현재 나락은 나린 케오의 세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나락의 친어머니는 다시 갓 태어난 사내아기마저 팔아 넘기고 말았다. 이번에는 나린도 이 아기를 되찾아올 돈이 없었다. 얼마 후, 100달러와 함께 나락 덴의 동생이 미국에 입양되어 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후로 이들은 아기에 대한 어떤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찬티아 체아라는 31세의 캄보디아 여성은 임신 6개월에 남편과 이혼했다. 아들을 낳자마자 이웃의 한 사람이 찾아와 ‘무료로 건강진단을 해준다더라’며 아기를 데려갔다. 그 후 찬티아의 아기는 엄마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아기를 찾으러 가자 ‘이미 고아원에 넘겼다’는 말과 함께 80달러의 돈이 찬티아의 손에 쥐어졌다. “고아원을 찾아가 아기를 돌려달라고 사정했지만, 아기를 되찾으려면 160달러를 내놓으라는 말만 들었다”고 찬티아는 말했다. 결국 인권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법정투쟁까지 벌인 끝에 아기는 엄마 품으로 되돌아왔다. 중개업자가 꾸며놓은 입양서류에는 ‘길거리에 버려졌던 아기를 데려왔다’고 씌어 있었다. 한 발만 늦었어도 찬티아의 아기는 미국 메릴랜드에 있는 양부모에게 보내졌을 것이다.

    캄보디아에서는 한 해 수천명의 아기가 영양실조나 병으로 사망한다. 요행히 이 시기를 넘긴 더 많은 아이들은 동남아 일대로 팔려나가 변태적인 매매춘에 종사하기도 한다. 비극적인 현실을 생각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미국입양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작정 아기를 ‘수집’하고 과거를 ‘세탁’해서 미국으로 보내는 현재의 방식이 과연 옳은 것일까? “한 아기의 삶을 좌우하는 입양은 가장 도덕적인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미국인 부모들과 인권단체들은 주장하지만, 캄보디아의 현실은 인권이나 도덕을 주장하기에는 너무도 가혹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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