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2

2016.06.15

캠페인 | 멸종위기종 ‘우리가 지켜줄게’

풍란, 나도풍란, 한란, 지네발란 “함평으로 이사 왔어요”

함평자연생태공원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사진 김형우 기자 free217@donga.com

    입력2016-06-13 1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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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도 전국에서 29만5000명이 몰려들어 ‘초대박’을 터뜨린 ‘함평나비대축제’가 끝난 뒤 함평자연생태공원은 고즈넉했다. 이따금 봄소풍, 체험학습을 온 유치원생들의 웃음소리와 초등학생들의 재잘거림이 들려왔지만 56만1867㎡ 대지에 야외학습장 7개와 전시·관람시설 26개 동을 갖춘 드넓은 공원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품어버렸다. 아니,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물까치 울음소리와 뒤섞여 아득히 사라진다. 이제 이곳에 새로운 은신처를 마련한 풍란, 나도풍란, 한란, 지네발란의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 이들은 모두 ‘멸종위기종’이라는 이름표를 붙인 난 자매들이다.

    “함평은 오래전부터 춘란 자생지로 유명했습니다. 함평만을 끼고 해양과 내륙이 만나는 곳으로 온화한 기후와 해풍, 소나무가 많다는 서식환경도 난 성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죠.”(최용실 함평군 산림공원사업소장)

    “함평이 춘란으로 유명해진 것은 30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전국에서 ‘명명품’(우수 품종으로 등록된 것) 난들을 모아 원적을 조사했더니, 60%가 함평산으로 밝혀졌습니다. 희귀성이 인정되면 그만큼 가격이 올라가고, 함평도 덩달아 유명해지죠.”(김택곤 함평자연생태공원 주무관)

    함평자연생태공원은 1998년 난 공원 조성사업으로 시작해 2007년 7월 자연생태공원으로 개장했다. 난 공원 안에는 한국춘란분류관, 풍란 및 새우란관, 동양란관, 양란관, 자생란관 등 난 전시관만 5개 동이 있다. 전시관으로 가는 길에 김택곤 주무관이 무심코 지나가려는 기자를 붙잡아 세운다. 이후 설명은 모두 김 주무관이 했다.

    “나무에 붙어 있는 것이 풍란입니다. 이 애는 겨울을 났는데, 이 애는 겨울을 못 나고 죽었네요. 이 풍란의 자생지는 제주, 홍도 등 남해안 섬지역이니까 함평은 이들에게 ‘서식지 외 지역’인 거죠. 우리 생태공원에서는 소나무, 자귀나무, 단풍나무 등 다양한 나무에 풍란을 부착해 겨울을 나도록 하는 실험을 5년째 하고 있어요. 첫해에는 95%가 죽었고, 그다음 해부터 볏짚 등으로 보온 방법을 달리했더니 한두 개씩 겨울을 버티는 풍란이 나오고 있어요. 지구온난화로 머지않아 이곳에서도 난들이 겨울을 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번식도, 성장도 까다롭기만 한 난

    김 주무관은 자신이 돌보는 난을 언급할 때마다 ‘애들’이라고 했다. ‘서식지외보전기관’에서 키우고 있으니 어찌 보면 이 난들은 입양한 애들이다. 입양한 애들이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해 온실 같은 인공 상태가 아닌 야생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기르고, 개체 증식을 해 그 종이 절멸된 자생지에 복원하는 것이 멸종위기종 복원사업의 최종 목표인 것이다.

    함평자연생태공원은 2008년 환경부로부터 서식지외보전기관 14호로 지정돼 풍란, 나도풍란, 한란(이상 멸종위기야생식물 1급), 지네발란(멸종위기야생식물 2급)을 종보전하고 있다.

    “난은 배아는 있으나 배아를 키워줄 영양소인 배젖이 없어 스스로 발아하지 못해요. 수정은 되는데 수정된 종자가 땅에 떨어져 발아하려면 땅에 있는 균근균과 결합해 그 균의 몸을 빌려야 합니다. 문제는 그렇게 될 확률이 극히 낮다는 거죠. 일반 풍란이 자연 상태에서 발아에 성공하려면 몇 십 년, 몇 백 년이 걸릴지 알 수 없어요.”

    난의 번식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종자로 번식하는 실생배양과 모체 조직을 분리해 번식하는 조직배양이다. 실생배양은 김 주무관의 설명대로 성공 확률이 극히 낮지만, 같은 품종이라도 각기 다른 유전자를 지닌 난들이 탄생하기 때문에 생물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조직배양은 대량 번식을 할 수 있지만, 유전적으로 동일한 복제품이기 때문에 바이러스 또는 병균에 노출되면 절멸할 위험성이 있다. 또 유전자가 같은 어느 한 종이 특정 지역을 점령해버린다면 생태계가 교란될 수도 있다.

    풍란(소엽풍란)은 뿌리가 지렁이처럼 바깥에 노출돼 자란다. 그렇게 돌 틈이나 나무에 붙어 바람을 맞으며 산다고 해서 ‘바람 풍(風)’의 풍란이다. 하지만 돌 틈에 종자가 떨어져 어떤 균과 결합해 그 균의 몸을 빌려 발아될 확률이 몇 백만 분의 1이란다. 성장 속도도 더디다. 1년에 잎이 하나씩 나오는데 보통 잎이 3개 이상 돼야 꽃이 핀다.

    “자생지 조사를 위해 홍도에 갔다 풍란이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을 봤어요. 예전에는 바닷가 바위마다 그렇게 풍란이 뒤덮여 있었을 겁니다. 꽃이 필 때면 그 향기가 멀리서 고기를 잡는 뱃사람들에게까지 전해졌다고 해요. 바다 위에서 방향을 잃어도 난향만 따라가면 육지에 이를 수 있었던 거죠. 그렇게 많던 풍란과 나도풍란이 20~30년 사이 사라져버렸어요.”

    나도풍란(대엽풍란)의 잎은 풍란보다 더 크고 통통하며 잎에 수분이 많은 편이어서 따뜻한 지역에서 자란다. 연한 백록색 달걀 모양의 꽃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그만큼 무분별한 채취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나도풍란 자생지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난 애호가들이 키우는 종을 확보해 유전자 검사를 해서 원종인지 배양종인지 검사해보려 해도 비교할 수 있는 원 데이터가 없다는 게 안타깝죠.”

    지네발란 역시 바위에 붙어사는 착생란으로, 줄기에 잎이 붙어 있는 모양이 지네를 닮았다 해서 지네발란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이 붙었다. 지네발란의 성장 속도는 속 터지게 느리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잎이 나오는 데만 1년씩 걸린다. 그러니 두 손바닥에 올릴 정도 크기의 지네발란이라면 실생배양을 통해 이것이 지네발란이구나 알아볼 만큼 자랄 때까지 10년 이상 걸린다. 모양은 보잘것없는데 존재는 귀하디귀하다.

    “과거에는 나무를 땔감으로 써서 숲이 우거질 틈이 없었죠. 그래서 지네발란 같은 난들이 바위에 붙어살기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숲이 너무 울창해지면서 햇빛을 보지 못해 죽는 경우도 많아요.”

    어찌 보면 지네발란은 까다로운 번식과 성장 조건 때문에 스스로 자연도태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관상용으로도 가치가 크지 않은 지네발란을 애써 멸종위기에서 지켜야 하는 까닭은 뭘까. 이와 관련해 이강운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 설명을 보탰다.  

    “이끼꼬마밤나방의 애벌레는 식물 잎이 아니라 이끼를 먹고 살아요. 잎이 떨어져 삭은 것만 먹는 곤충도 있죠. 이런 식으로 다른 곤충들과의 경쟁을 피하며 생존하는 전략인 거죠. 지네발란처럼 천천히 자라면서 일정 습도를 유지하는 식물이라면 여기에 기대어 먹고사는 또 다른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생태계에는 아직 우리가 모르는 게 무척이나 많아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몸값

    보잘것없는 지네발란이라도 자연계에 존재하는 의미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긴 그동안 몰랐던 만병통치약의 성분을 품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닌가.  

    난의 개화 시기는 제각각이다. 보통 춘란(보춘화)은 3~4월, 나도풍란은 6월, 풍란과 지네발란은 7월 무렵 꽃을 피운다. 한란 꽃은 11월 찬바람이 불 무렵부터 피기 시작한다. 그래서 ‘찰 한(寒)’의 한란이다. 춘란과 한란을 구분하는 법은 간단하다. 잎 가장자리를 만져서 톱니처럼 껄끄러운 ‘거치’가 있으면 춘란, 매끈하면 한란이다. 또 한란은 춘란에 비해 크게 자라고 잎도 더 굵은 편이다.

    “한란은 서식 조건이 훨씬 까다로워요. 제주 돈내코계곡으로 제주한란 자생지 조사를 갔는데 후박나무, 동백나무 숲에 가면 한낮에도 캄캄할 정도죠. 그 밑에서 한란이 자랍니다. 그래서 한란은 일반 난에 비해 차광을 많이 해줘야 하고, 온실에서 키워 자생지에 복원하려면 반드시 서식지 적응 훈련을 거쳐야 해요. 풍란이나 나도풍란은 인공수정에 성공할 확률이 거의 100%인데 한란은 아직 성공하지 못했어요.”

    함평자연생태공원이 서식지외보전기관으로 지정된 지 10년이 다 돼 가지만 공원이 보유한 한란 개체 수는 150여 개에 불과하다. 그만큼 증식이 까다로운 품종이다.

    지난해 여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주최로 열린 한국춘란 경매에서 15cm짜리 춘란 ‘태황’이 1억2000만 원에 낙찰돼 최고경매가를 경신(그 전까지 경매 최고가는   1억500만 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춘란은 야생에서 채취돼 실내에서 키운 것으로 “잎과 꽃이 작고, 돌연변이 형태로 생길수록 희소성이 있어 고액에 거래된다”는 게 경매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에 비하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난들은 이동이나 판매가 제한돼 있어 그 가치를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사고 싶어도 살 수 없고,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다는 이야기다. 간혹 학술연구용으로 분양할 때는 반드시 몇 년 몇 월 며칠 누구에 의해 어디로 이동됐다고 기록한  ‘족보’가 따라다니도록 돼 있다. 그처럼 귀한 난을 함평자연생태공원에서 실컷 감상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가. 1억2000만 원짜리가 전혀 부럽지 않다.  

    멸종위기종 누가, 어떻게 지킬 것인가▼ 서식지외보전기관이 해야 할 일 ▼


    개발로 길이 나고 건물이 들어서면 그곳에서 나고 자란 동식물은 갈 데가 없어진다. 야생 동식물은 기본적으로 서식지에서 사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이처럼 서식지가 파괴되고 밀렵과 남획 등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을 그대로 두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에 따라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보전과 번식은 물론, 궁극적으로 야생으로 재방사를 추진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대책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서식지외보전기관’ 제도가 도입됐다.  

    사단법인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는 2008년 협의회로 시작해 2010년 협회로 전환한 뒤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2005년 서식지외보전기관 지정) 소장이 회장으로 협회를 이끌고 있으며, 현재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을 비롯해 24개 기관이 환경부의 서식지외보전기관으로 지정돼 있다.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는 매년 두 차례 국회환경포럼을 열고,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보전사업의 성과를 담은 연례 보고서를 발행하고 있다. ‘주간동아’는 이번 호를 시작으로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와 공동으로 멸종위기종 ‘우리가 지켜줄게’ 캠페인을 전개한다.

    세상에서 가장 진화한 식물 난

    “대부분의 난초는 속임수의 여인들이다. 3만 종으로 예상되는 전 세계 난초 대부분은 유인한 벌에게 넥타도 분비하지 않고 꽃가루로 꼭꼭 숨겨놓는다. 난초 꽃가루는 공 모양의 통에 둘씩, 넷씩, 여섯씩 감싸여 있다. 이 수분용 폭탄은 그 형태 그대로 꽃가루 운반자에게 부착된다. 꽃가루로 가득 찬 화분괴는 보통 영양이 부실하고 짝짓기를 못한 벌에게 달라붙는다. (중략) 난초는 항상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수분매개동물이 특정한 종류의 난초 냄새를 맡거나 쳐다볼 때 뇌에 충격이 가해지게끔 진화했다. 그들의 진화전략은 엉뚱한 난에 꽃가루가 낭비되지 않게 하려는 것도 있지만, 동물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려는 으스스한 시도의 산물이기도 한다.”(스티븐 부크먼의 ‘꽃을 읽다’ 중에서).

    곤충학 박사로 벌의 식물 수분 활동을 주로 연구해온 저자는 “꽃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식물학자들은 난을 세상에서 가장 진화한 식물로 꼽는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보통 식물은 곤충에게 먹히는 것을 막거나 경쟁자를 물리치려고 ‘저항성 물질’을 내뿜는다. 대표적인 것이 피톤치드다. 이름 그대로 ‘식물을 죽이는’ 물질이라는 뜻이다. 인간에게는 스트레스 해소, 살균 작용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하나 피톤치드가 많이 나오는 숲속 나무 아래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그 독한 환경에서 생존할 만큼 진화한 식물이 난이다. 지구상의 식물 가운데 난과 식물이 3분의 1을 차지한다고 한다. 그만큼 진화가 많이 돼 변이종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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