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윤흥길은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1942년생) 다섯 살 때 아버지 직장을 따라 전북 익산으로 이사해 소년기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래서 그의 작품 곳곳에 당시 익산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특히 6·25전쟁을 배경으로 유년 시절의 추억을 그린 연작소설집 ‘소라단 가는 길’에는 지금은 소라산이라 부르는 야트막한 뒷산 소라단이 등장한다. 소설에서 ‘나’의 친구이자 소라단 근처 보육원에 살던 박충서가 언덕에 누워 혼잣말처럼 이렇게 중얼거린다.
“사리원 우리 고향 동네 뒤쪽에도 요거랑 똑같은 산이 있어.” “숲 냄새도 여기 소라단하고 똑같아.” “고향 동네 뒷산 같은 소라단에 누워 있으니까 우리 엄마 아빠 얼굴이 하늘을 막 떠다닌다!”
소년에게 숲 냄새는 곧 고향이자 엄마, 아빠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소라산의 옛 이름은 ‘솔밭안(松田內·송전내)’으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어 생긴 이름이다. 솔밭안이 소라단으로, 다시 소라산으로 바뀌었지만 익산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학창시절 소풍을 가던 추억의 장소이자 일상의 놀이공간이었다. 예전에는 변두리 야산이었지만 지금은 익산시내 한복판이 된 소라산 동쪽 자락 습지와 영등동 276번지 일대 5만500㎡가 ‘자연마당’이란 이름의 생태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생태와 휴식의 만남, 일석삼조 효과
환경부와 익산시는 2013년 불법경작지와 공장지대로 훼손된 이 지역을 자연마당으로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자연마당이란 ‘자연환경보전법’ 제43조에 근거해 생물다양성 증진, 도시생태계 건전성 확보, 도시민의 생태휴식공간 제공이라는 세 가지 목적을 동시에 충족하는 공간을 가리킨다. 환경부는 자연마당 이전에도 복원사업을 해왔으나 주로 훼손지 복원과 서식지 조성 같은 생태적 복원에 초점이 맞춰졌다. 한편 국토교통부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추진해온 ‘도시공원’ 조성 사업은 사람이라는 이용자 중심으로 조경과 휴양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생물의 서식 여건을 고려하지 않았다. 환경부는 2012년 두 사업의 장점을 결합한 생태휴식공원 자연마당을 기획했고, 2017년까지 20개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익산시는 환경부로부터 국고 30억 원을 지원받아 소라산을 훼손 이전 상태로 돌리는 지형 복원과 함께, 기존 소나무 숲을 보호하기 위한 가장자리 숲과 침식을 억제하기 위한 숲, 다양한 동식물의 터전이 되는 서식지 제공 숲을 만드는 식생 복원 작업을 했다. 또 물의 순환 기능을 되살리는 습지를 만들어 생물 서식지 복원도 동시에 진행했다. 쉽게 말해 기존 지형을 살리고, 잇고, 덧대어 숲과 습지를 만든 것. 더욱이 소라산은 학교와 아파트단지로 둘러싸여 시민의 접근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다. 소라산 자연마당이 생긴 뒤 당장 이 지역 평균기온이 4.2도 낮아져 ‘도시열섬현상’을 완화하는 효과가 나타났을 뿐 아니라, 빗물 조절로 도심 홍수를 억제하고, 시민은 자연체험학습과 삼림욕을 즐기는 일석삼조 효과를 누리고 있다.
정헌율 익산시장은 “도심 한복판의 생태공원은 그 자체로 허파 구실을 한다”면서 “방치된 공간을 되살려 시민에게 돌려드리니 이제 시민이 잘 활용해주기 바란다. 어린이에게는 자연체험학습장이 되고, 시민들의 정서 함양도 돕는 치유의 공간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며 기대를 드러냈다. 또 “편의시설, 부대시설을 더 늘려 시민에게 사랑받는 공원으로 만들겠다. 길 하나 건너면 소라산 자연마당 조성 이전과 똑같이 버려진 공간이 있다. 그곳까지 공원으로 만들어달라는 시민들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환경부와 상의해 생태공원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최종원 환경부 자연정책과 과장은 “자연마당 사업은 2012년 처음 시작돼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과제에 포함하며 탄력을 받았다”면서 “현재 14개소가 선정돼 추진 중인데, 워낙 인기가 좋아 100% 국고 보조 사업으로 진행하던 것을 올해부터 50%를 보조해 더 많은 지역에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풍당당 물장군, 자연으로 돌아가다
6월 9일 정 익산시장을 비롯한 환경부 관계자, 지역주민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소라산 자연마당 습지에 물장군 80마리와 참붕어 300마리를 방사하는 행사가 진행됐다. 이번 방사의 주목적은 소라산 자연마당 습지에 사라져가는 물장군을 복원 및 증식하는 것. 방사된 물장군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물장군 대량 증식과 자연 복원에 성공한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소장 이강운)에서 제공했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는 물장군 외 애기뿔소똥구리, 붉은점모시나비, 왕은점표범나비, 쌍꼬리부전나비 등 멸종위기 곤충 5종의 서식지외보전기관으로 지정돼 있다.
물장군은 몸길이가 5~7cm까지 자라 노린재목 곤충 가운데 가장 큰 종이다. 낫 모양의 앞다리에는 굵고 날카로운 발톱이 달려 있어 이름 그대로 물속 장군처럼 위풍당당한 모습이다. 애벌레 시절에는 몸 색깔이 녹색을 띠다 자라면서 갈색으로 바뀌는데, 이는 일종의 ‘위장복’으로 풀숲에 매복해 있다 먹잇감이 다가오면 순식간에 사냥을 한다. 이때 날카로운 앞다리로 먹잇감을 붙잡고 입에 난 침으로 독을 주입해 마비시킨 뒤 다시 효소를 집어넣어 소화된 체액을 빨아먹는다. 주로 작은 수생동물, 어류, 개구리 같은 동물을 포식한다. 이강운 소장은 “물장군 한 마리가 알에서 깨 어른벌레가 될 때까지 올챙이와 물고기를 53마리나 잡아먹을 만큼 놀라운 포식성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웅덩이, 연못 같은 습지에 서식하는 물장군은 수초나 물 밖으로 뻗은 나뭇가지에 한 번에 70~120개씩 알을 낳는데 이때 수컷이 몸에 물을 묻혀 알에 수분을 공급하는 지극한 부성애로도 유명하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수분을 공급해주지 않으면 알은 부화하지 못한다.
지역에 따라 물장수, 물짱구, 물찍게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를 만큼 흔하디흔했던 물장군은 서식지인 습지가 개발과 오염으로 파괴되면서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현재 멸종위기 동식물 2급 보호종으로 지정돼 있다. 이 소장은 “물장군은 야행성이어서 가로등 불빛을 보고 날아들다 차에 치여 죽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정 익산시장은 “이와 같은 자연학습장을 통해 익산 시민들도 생물다양성 등의 환경문제가 인류 미래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최 과장은 “자연마당의 취지는 동식물의 서식공간 복원과 주민들의 휴식공간 확보에 있다”면서 “특히 서식공간 복원은 특정 종을 목표로 한다. 그 지역과 생태 특성에 맞는 멸종위기종 복원에 집중해 사업을 추진한다면 국민으로부터 더 큰 호응을 얻으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사람과 동식물이 함께 행복한 ‘자연마당’환경부의 ‘자연마당’ 사업이 기존 도시공원과 다른 점은 ‘생물다양성 증진’이라는 목표를 추가했다는 것이다. 즉 지역마다 ‘목표종’을 정해 서식지 확보와 보호를 우선으로 한다. 훼손되고 방치된 도심 공간에 습지, 개울, 초지, 숲 등 다양한 유형의 서식지를 조성하고 주변 자연환경과 연계해 도시의 생태거점 복원과 생물다양성 증진 효과를 얻는 것이 1차 목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공원이 도시열섬현상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 등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방법이 될 뿐 아니라, 도시민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효과도 누리고 있다.
환경부는 2012년부터 지금까지 14개소에 자연마당 조성 사업을 추진 중이며 2017년까지 20개소를 완공한다는 목표다. 그중에서도 전북 익산의 소라산 자연마당은 자연과 사람의 공존, 생태와 휴식이라는 목표를 가장 잘 반영한 사례로 꼽힌다.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초기 기획 단계에서 생태, 조경, 환경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지형 및 식생 복원을 진행했다. 복원 목표종을 물장군으로 선정한 것은 애초 이 지역이 수생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특히 물장군의 먹잇감이 되는 올챙이와 작은 물고기 등이 있고, 알을 낳아 부화시킬 수 있는 달뿌리풀, 갈대 같은 식물들이 자란다. 소라산 자연마당에 방사한 물장군 암수 40쌍을 증식한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은 “이번 방사가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물장군의 서식 환경을 모니터링하면서 3년 정도 방사를 계속하면 개체군이 안정화돼 이곳이 물장군의 새로운 서식지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쓰레기가 쌓이고 모기 떼가 극성을 부리던 습지대가 생태공원으로 바뀐 뒤 주민들의 삶이 쾌적해진 것이 최고 효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