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1

2004.09.09

나치, 정치 선전 목적으로 ‘베를린올림픽’ 기록

  •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ho1627@kornet.net

    입력2004-09-03 1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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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치, 정치 선전 목적으로 ‘베를린올림픽’  기록

    베를린올림픽 포스터.

    ‘그리스’ 올림픽이 아니라 ‘아테네’ 올림픽이고, ‘대한민국’ 올림픽이 아니라 ‘서울’ 올림픽인 까닭은 올림픽이 원래 국가가 아닌 도시 주최의 행사이기 때문이다. 올림픽은 또 국가 대항전이 아닌 개인들의 경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아테네올림픽 경기장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장면은 넘실대는 각국의 국기와 애국주의 물결이었다. 메달을 딴 선수들이 대부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국의 대형 국기를 몸에 휘감고 경기장을 도는 것이었다. 그 순간 올림픽은 ‘더 멀리, 더 높이’의 경쟁이 아닌 애국심의 경연장이 되어 있었다. 국경이 없어진다는 이 세계화의 시대에 국가주의는 오히려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비정치적이라는 스포츠 행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정말 아이러니인가. 아니라는 건 이제 다들 알고 있다. 올림픽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비정치 행사’라는 것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올림픽 출전 선수들에게 “경기장에서 국가를 부르지 않고 딴 짓을 하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경고한 것은 그 공공연한 비밀에 대한 권력자의 자기고백으로 들렸다. 그러므로 친(親)나치 여성 감독 레니 리펜슈탈이 만든 베를린올림픽 다큐멘터리 영화 ‘올림피아’는 정치 선전에 오염된 올림픽의 어두운 과거에 대한 예외적 기억으로서가 아니라 4년마다 반복되는 올림픽 본래의 초상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듯하다. 아름다운 영상과 극적인 카메라 기법 등을 선보여 지금까지도 다큐멘터리 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올림피아’는 나치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아 제작돼 나치를 세계에 알리는 공신 구실을 했다. 베를린올림픽의 주요 장면들은 지금도 이 영화에서 따온다. 베를린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전국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올림픽 경기를 보게 했던 히틀러는 올림픽이 끝난 뒤에 이 영화를 역시 국민들이 관람케 했다. 효과는 놀라웠다. 현란한 영상으로 편집된 독일 선수들의 활약은 독일 국민들의 마음을 강렬한 게르만 민족주의로 일체화했다. 그 어떤 정치 행사도 그처럼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할 수는 없었다. 바로 이것이다. 많은 국가들이 올림픽에 그토록 많은 투자를 하는 이유는 이처럼 올림픽이야말로 매우 적은 비용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고효율 투자이기 때문이다.

    이번 아테네올림픽에서는 일본의 돌풍이 놀라웠다. 한때 미국, 옛 소련에 이어 3위권에 오르던 올림픽 강국 일본은 최근 10여년간 한국에도 한참 뒤지는 중상위권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전의 순위를 되찾으면서 과거 영광을 재현했고, 일본 국민들은 자국 선수들의 활약에 열광했다. 이 같이 선전한 이유는 일본이 경기 불황임에도 불구하고 선수 육성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경기 불황임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불황이었기 ‘때문에’라고 하는 게 더 타당한 설명일 것이다. 일본 정부로서는 경제난에 지친 자국 국민들을 위한 사기 진작책으로서 올림픽이 돈 들인 것 이상의 몫을 톡톡히 했다고 흐뭇해할 것이다. 올림픽 경기장에 일장기가 휘날리는 모습은 최근 일본에 불어닥치고 있는 신군국주의의 기류와도 겹치는 장면이다. 올림픽에 출전할 때마다 경제성장 속도만큼이나 성적이 뜀박질해온 중국은 아테네올림픽에서 세계 제패가 손안에 들어와 있음을 확인했다. 아마도 다음 베이징올림픽은 자기 안마당에서 정상 등극을 확인하며 대(大)중화주의를 선양하는 초대형 이벤트가 될 것이다. 중국 정부는 베이징올림픽 행사의 총연출을 장이머우 감독에게 맡겼다. 장이머우 감독이 올림픽에 관한 영화를 따로 찍을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그가 욕심을 낸다면 아마도 ‘올림피아’ 이후 가장 극적인, 그리고 그만큼 위험한 올림픽 영화가 나올 것 같다.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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