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 GS그룹 회장(왼쪽)이 3월 프로축구단 FC 서울 입단식을 마친 박주영과 나란히 서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축구광인 허 회장은 박주영의 열렬한 팬이다.
‘블루오션’ 전략이란 기존 시장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게 아니라, 아무도 걷지 않은 무경쟁 시장(블루오션)에서 가치 혁신을 통해 싸우지 않고 재미를 본다는 개념이다. 기존 시장을 두고 ‘박 터지게’ 경쟁하는 ‘레드 오션’과는 다른 개념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선두주자가 된다는 것이다.
K리그 역사가 23년을 거듭해오고 있으나 광고 효과를 제외하면 수익을 창출하고 흑자 기반을 만들었던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서울은 거대 단일시장에서의 독점적인 지위와 박주영 등 스타 선수 보유, 20여년의 구단 역사 등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새 지평을 향해 장대한 도전에 나섰다.
수원 삼성의 시대는 끝났다?
K리그의 첫 번째 지각변동은 1996년 수원삼성(이하 수원)의 창단이다. 수원 창단을 계기로 K리그는 지역 연고 개념이 도입됐고, 수원의 서포터스 클럽인 ‘그랑블루’는 한국에 서포터스 문화를 정착시키는 선봉장이 되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유행한 ‘대~한민국’이라는 응원구호도 ‘수~원삼성’의 구호가 그 근원이다. 게다가 수원은 K리그 제패는 물론 아시아 대회를 휩쓸며 기존 팀들의 벤치마크가 돼왔다.
지난해 안양에서 서울로 연고지를 옮긴 서울은 ‘축구를 위한 마케팅, 팬을 위한 마케팅’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20여년간 적자에 허덕이며 ‘마케팅 무용론’까지 대두되었던 K리그 판에 경종을 울렸다. 올해 박주영의 영입으로 그 효과는 그야말로 힘찬 날개를 달았다.
서울은 관중 수에서 다른 팀을 압도한다. 수원은 서울에 무릎 꿇은 지 오래다. 서울은 7월10일 포항 스틸러스전에서 프로축구 역대 한 경기 최다관중(4만8375명)을 기록했고, 최단 경기 30만 관중을 돌파하며 수원이 보유해온 기록을 하나씩 깨뜨려가고 있다. 서울은 앞으로 수원이 지난해 세운 한 시즌 최다관중 기록(42만5776명, 경기당 평균 2만1229명)을 경신할 뿐 아니라 챔피언 결정전까지 진출할 경우 60만명 돌파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K리그 각 구단은 수원이 앞장서왔던 서포터스 육성 정책을 따라하기 바빴다. 그러나 서포터스와 일반 축구팬들의 거리가 멀어지고, 서포터스가 점차 폭력적 양상을 보여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서울은 지난해 연고지를 옮기면서 ‘클린 서포팅’을 강조하고 나섰다. 지난해 300명에서 1000여명으로 늘어난 서울 서포터스들은 이 같은 구단 방침을 잘 이끌고 있고, 이들이 자리 잡는 N석에 일반팬들이 몰려들어 함께 응원을 펼치는 새로운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
기업 이미지 최소화, 고품격 추구
서울의 마케팅 전략 중 1순위는 기업 이미지를 최소화하고 시민들과 함께하는 축구 문화를 만드는 데 있다. 물론 서울은 모기업인 GS그룹으로부터 지원받고 있지만 팀 명칭부터 기업 명칭을 뺀 ‘FC 서울’을 사용하고 있고, GS그룹을 비롯해 LG카드, LG텔레콤 등 제휴사들에게도 관례적으로 행해왔던 단체할인 등의 혜택을 주지 않고 입장권을 정가 판매하고 있다.
모기업이라 하더라도 제대로 된 가격을 받고 그만큼의 광고 효과로 되돌려주겠다는 것. 이미 GS건설의 아파트 브랜드 ‘자이’는 서울에 50억원을 투자하고 그 10배인 500억원의 광고 효과를 거뒀다.
또 FC 서울의 홈경기는 다른 구단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야말로 고품격을 지향하고 있다. 상암벌을 찾으면 마치 국가대항전에 온 듯한 느낌이 들 만큼 규모와 흥미 면에서 다른 구장을 압도한다. 실제 서울 홈경기의 입장권 가격은 지정석 2만원, 일반석 1만2000원 등 다른 경기장에 비해 비싸다. 하지만 비싼 만큼 고품격의 경기장 분위기를 연출하겠다는 것이 바로 서울의 마케팅 전략이다.
경기 전에는 자칫 분위기에 맞지 않을 수 있는 트로트나 인기가수의 가요가 아니라, 가수 신해철이 부른 ‘우리는 FC 서울’과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 ‘FC 서울의 승리를 위하여’ 등의 노래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박주영, 김은중, 정조국, 백지훈 등 초특급 스타들이 출전하는 서울의 경기는 최다 득점팀답게 화끈하다. 홈경기에서만큼은 절대 수비축구란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화끈함이 서울시민들의 발길을 점차 상암으로 돌려놓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이재하 마케팅팀장은 “지난해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FC 서울의 홍보를 2006년까지 마칠 계획이었지만 박주영의 영입으로 1년 6개월 앞당긴 현 시점에서 이미 완결지었다”고 말했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주영의 부가가치 효과는 1000억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그야말로 그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셈이다. 18경기에서 14골2도움을 기록하며 최다 골포인트를 기록했고, 그가 출전한 경기의 관중 수는 총 48만5631명으로 올 시즌 K리그 총 관중 수 186만8676명 중 26%에 해당된다. 또한 박주영은 한 경기 평균 2만6980명의 관중을 축구장으로 불러들여 K리그 한 경기 평균 1만1979명을 2배 이상 앞질렀다.
마치 서울의 마케팅이 오로지 박주영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 팀장은 “서울의 마케팅 전략은 지난해 수립된 것이다. 원칙은 변함이 없고, 박주영의 영입으로 그 효과가 커진 것일 뿐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주영이 출전하지 않는 경기의 관중 수가 1만5000여명에 달하고 있다. 서울의 단계별 전략은 월드컵이 벌어지는 내년까지 씨앗을 뿌린 뒤 2010년에 그 열매를 따겠다는 것. 즉 2010년을 한국 프로축구사에서 첫 흑자원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서울은 내년 서울-베이징-도쿄를 잇는 ‘세베토(SeBeTo) 리그’를 추진하고, 앞으로 ‘제2의 박주영’을 탄생시키기 위해 매년 3~4명의 유망주를 ‘선택과 집중’의 원칙 아래서 육성해낼 계획이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클럽으로 성장하겠다는 서울의 야심은 다른 12개 구단의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