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체제 개편은 초기의 우려와 달리 이명박 시장의 치적으로 꼽힌다.
지난해 7월 초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W 의원은 “서울시가 시민들 의견도 제대로 묻지 않고 사고를 쳤다”며 웃었다. 그는 “버스 체제 개편을 왜 했는지 모르겠다. 시민들한테 호되게 혼나야 정신 차릴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에 들어오기 전 환경운동을 오랫동안 했고,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라고 자임해온 W 의원에게 물었다.
“촌스럽게 70년대 식으로 밀어붙인 건 문제가 큰 것 같다. 그럼에도 승용차보다는 대중교통, 대중교통보다는 사람을 앞에 뒀다는, 큰 방향은 맞지 않느냐.”
W 의원은 “이 시장이 대선 계획의 일환으로 치적을 남기려 했나 본데, 방향도 잘못됐고 절차도 잘못됐다”고 되받았다.
버스 체제 개편 직후, 국회에선 우리당 의원 중심으로 공청회가 열렸다. ‘버스 체제 개편 무엇이 문제인가’. 당시 공청회는 ‘이명박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그러나 버스 체제가 개편된 지 꼭 1년이 지난 2005년 7월, 버스 체제 개편을 욕하는 이들을 찾기는 어렵다. 오히려 버스 체제 개편은 이 시장의 치적으로 평가된다. 환경론자이기도 한 W 의원의 당시 지적은 당리당략에 근거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 에피소드2
뉴타운 개발 예정지의 일부 주민들이 뉴타운 사업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당시 우리당 한 의원은 “정부·여당은 국토발전의 장기 그랜드 플랜에 맞춰 뉴타운 사업 자체를 재검토할 수 있다”면서 “서울시 맘대로 사업을 추진할 수는 없다. 백지화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미나엔 뉴타운 예정지의 일부 지주와 세입자, 상인들이 참석해 서울시가 추진하는 뉴타운 사업을 백지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당 의원들이 이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음은 물론이다.
그로부터 1년 뒤, 우리당은 서울 강북 지역에 ‘공영 개발’ 형식으로 광역 뉴타운을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서울시의 정책을 확대, 재생산한 것이다.
‘공영 개발’은 주민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서울시 방법보다 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울시 관계자도 “현재 추진하고 있는 뉴타운 사업도 주민 동의가 여의치 않아 지지부진하다”고 말했다.
공영 개발은 세미나에 참석했던 일부 지주와 세입자, 상인들에겐 치명타가 된다. 상인들과 세입자들의 불만이 더욱 커질 수 있는 것.
정부 관계자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방식보다 시간은 더 걸릴 수 있겠지만, 서울 강북 지역을 더욱 체계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 에피소드3
7월26일 입국한 북한 축구대표팀이 28일 오후 월드컵경기장 보조경기장에서 몸을 풀고 있다.
그런데 경평전의 주인공은 서울시에서 정동영 장관의 통일부로 바뀌었다. 서울시로선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된 것. 서울시는 통일부에 ‘인터셉트’ 당했다고 아우성이다.
8월15일 전후에 열리는 ‘8·15 통일축구’는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이 7월16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제안을 전하고, 북측이 긍정적으로 답변하면서 성사됐다.
8월15일 전후에 통일축구가 열리는 건 ‘정치 논리’ 탓이다. 8월17일엔 한국과 북한의 2006 독일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가 열린다. 한국 국가대표팀은 서울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경기를 벌이고, 북한은 바레인에서 치른다. 선수들의 일정은 고려치도 않고 정치 논리에 따라 통일축구 계획을 짰다는 비판을 들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시장도 마찬가지다. 축구협회는 서울시가 서울-평양 축구대회를 추진하는 걸 ‘전혀 몰랐다’.
대의명분이 크다 하더라도 서울시와 통일부의 사업 추진 과정을 곱게 보기는 어렵다. 국가대표팀은 8월 숨가쁘다 싶을 경기 일정을 치러야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축구협회와 사전 조율도 없이 추진한 통일부나, 비밀 공작 하듯 사업을 진행해온 서울시나 오십보백보다.
# 에피소드4
8월15일 서울 도심은 ‘소음’이 대단할 것 같다. 서울시가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광복 60주년 기념음악회를 열고(오후 7시30분부터), 정부가 숭례문(남대문)광장에서 시민·광복회원·학생·해외동포·북측 인사가 참여하는 국민축제를 연다(오후 7시부터).
서울시의 기념음악회에선 세계적인 지휘자인 정명훈 씨가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이끌고 안익태 선생의 ‘한국환상곡’, 베토벤의 ‘합창교향곡’, ‘그리운 금강산’ 등을 연주할 예정이다. 숭례문광장의 국민축제엔 가수 윤도현, 김수철, 코요태 등이 무대에 올라 흥을 돋운다.
이명박 시장(왼쪽)은 정명훈 씨를 서울시향 상임지휘자로 영입했다.
정부는 “2월부터 행사를 추진해온 만큼 국민축제가 끝나는 9시30분께부터 기념음악회를 열어달라”고 서울시에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를 거절했다. 서울시가 먼저 기념음악회를 발표했는데 정부가 뒤늦게 뛰어들었다는 것.
정부 관계자는 “각 자치단체에 8·15 행사 계획을 물었으나 당시엔 서울시가 8·15에 행사를 한다고 알려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두 행사를 하나로 통합해 치르면 어떨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자존심 싸움이 거세다. 왜?
정부 여당과 서울시의 불협화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치판에선 바람직한 정책이더라도 ‘적’이 주장하면 무조건 반대해야 한다는 명제를 확인시켜준다. 서울시 관계자는 “정부 여당이 왜 서울시의 부동산 정책을 저작권료도 주지 않고 뒤늦게 베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우리당 관계자는 “제대로 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서울시 방식으로는 뉴타운 사업이 엉망이 된다”고 밝혔다.
이 시장은 뉴타운 사업, 청계천 복원 등을 대권 계획으로 활용해왔다는 지적을 받았다. 뉴타운 지정과 관련해 서울 지역 의원들 앞에서 ‘가오’를 잡기도 했다. 여권이 이런 이 시장의 행보를 못마땅하게 여긴 건 당연하다. 그러나 방향이 맞다면 진작에 머리를 맞대고 더 좋은 방안을 찾았어야 했다. 조만간 비슷하나 약간 다른 ‘여권의 뉴타운특별법’과 ‘서울시의 뉴타운특별법’이 서로 잘났다며 갑론을박을 벌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