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사각지대’로 여겨졌던 남성 속옷이 점점 화려하고 다양해지고 있다.
‘아니, 패션디자인 전문가인 나도 모르는 새로운 디자인이 나왔단 말야? 좀더 분발해야겠는걸!’
결국 질문의 뜻은 앞부분이 트인 팬티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이 일을 계기로 요즘 남성 속옷이 대부분 앞이 막혀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남성 속옷 디자인과 소비자의 요구에 대한 조사를 새로 하기 시작했다.
속옷 팬티의 기원설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T자형 ‘띠’ 기원설로 신체 보호라는 기능성을 강조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버터플라이’ 기원설로 신체의 최후의 부분을 감추는, 역설적으로 벗기 위해 가린다는 의미가 강조된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모양의 팬티가 등장한 것은 프랑스에선 16세기, 영국에선 18세기경으로 이를 드로어즈(drawers)라고 불렀다. 처음엔 드로어즈의 아래가 막혀 있지 않아서 편리하기도 했지만, 특히 여성에겐 대단히 무방비한 것이었다. 그러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균의 존재가 알려지자 위생이 강조되고 공기 중에 신체 부분을 노출시키기를 두려워해서 속옷으로 감싸는 일이 중요해졌다. 또한 위생상 속옷의 색깔은 대부분 흰색이었다.
남성 팬티의 전형이라 할 앞이 트인 삼각형 디자인은 1952년 일본의 한 할머니가 자루를 삼각형으로 잘라 구멍을 내 손자들에게 입히기 시작하다가 특허를 낸 이래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남성 속옷에 패션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이지만 대중적으로 트렌디한 디자인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불과 2~3년 전으로 ‘돌체 & 가바나’, ‘존 갈리아노’ 등 유명 디자이너가 세련된 남성 란제리를 내놓으면서부터다.
최근 출시되는 남성 속옷 디자인은 보는 것만으로도 다양하고 재미있다. 기능성 면에서 보면,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개발한 최첨단 소재인 ‘아웃래스트’(outlast)를 사용하여 신체 온도조절 기능을 갖춘 것이 있다. 또한 언더웨어, 조깅 팬츠, 수영복으로 착용 가능한 멀티 속옷, 광촉매가 함유된 원단으로 항균 기능을 가진 속옷 등이 있다.
패션의 측면에서는 엉덩이 선을 매끈하게 보이기 위해 일명 ‘쫄사각’이라 불리는 힙업 기능의 무봉제 드로어즈가 잘 팔리고, 엉덩이 부분을 드러내는 T자형 또는 지스트링(G-string) 팬티가 젊은층의 인기를 끌고 있다. 속옷을 바지 허리선 밖으로 보여주는 ‘아웃밴드 팬티’, 앞면을 속살이 비치게 하는 망사나 레이스로 처리한 것, 금사, 꽃문양, 자수, 애니멀 프린트로 장식성을 드러내는 것 등 여성 속옷 못지않은 접근이 눈에 띈다. 요즘엔 기발한 아이디어를 자랑하는 갖가지 커플 팬티가 등장해 연인들 사이에서 선물로 주고받기도 한다.
몸의 일부분을 가리기 위해 만들어진 속옷이 ‘보이게 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되고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몸과 욕망을 둘러싼 패션의 모순을 새삼 인식하게 한다. 바로 그런 점이 패션의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