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정도의 지능과 자기만의 영혼을 가진 자동차 허비는 디즈니사가 중저예산의 가족용 실사 영화에 집중하던 1960년대 말에 탄생했다. 몇 편의 속편과 텔레비전 시리즈를 낳은 이 53번 회색 폴크스바겐 비틀은 영화사상 가장 유명한 자동차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아마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의 사람들이라면 TV 디즈니랜드에서 가끔 방영하던 이 영화들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억한다고 해도 이들이 하나의 독립된 장편영화라는 사실을 알지는 못할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된 영화들은 대부분 두 토막 난 2부작이었고, 독립된 영화로 취급받지 못했으니까.
하여간 앤젤라 로빈슨 감독의 ‘허비, 첫 시동을 걸다’(원제 Herbie: Fully Loaded)는 이 오래된 프랜차이즈의 신작이다. ‘첫 시동을 걸다’라는 한국어 부제는 속편의 속편의 속편의… 속편인 이 영화의 제목에 그렇게까지 잘 어울리지는 않지만.
오프닝 크레디트(opening credit)에 따르면 허비는 80년대까지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만 그 이후 슬럼프를 거듭했던 모양이다. 결국 폐차장에 들어가 박살 날 날만을 기다리던 하비는 졸업선물로 자동차를 원하던 매기(린제이 로한)에게 발견된다.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나 흥분한 허비는 스트리트 게임에서 스타 레이서인 트립 머피(맷 딜론)를 꺾고 스포츠카 경주 대회인 나스카에도 진출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마이클 키튼)의 뒤를 이어 레이서가 되고, 아버지에게서 인정도 받으려는 매기의 드라마와 어떻게든 허비를 꺾으려는 트립의 음모와 같은 이야기가 삽입된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이 이야기는 허점투성이다. 허비가 그렇게 유명했다면 박물관에 들어가거나 수집 목록에 올라야지, 왜 폐차장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는가? 그리고 왜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할까? 주변에 강아지처럼 굴면서 돌아다니는 자동차가 있는데, 왜 아무도 그 괴상한 상황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걸까?
그러나 디즈니랜드 세계엔 ‘디즈니랜드의 논리’가 존재하는 법이다. 그건 100년 동안 잠든 공주의 입 냄새는 염두에 두지 않는 동화나라의 논리와 같다. 이 점만 대충 인식하고 의심을 풀면 이야기는 썩 잘 돌아간다.
내용이나 갈등은 뻔하지만 허비의 재롱은 귀엽고, 레이싱 경기 중 보통 자동차로는 절대 불가능한 묘기를 펼치는 장면들도 재미있다. 남성 위주의 자동차 경주 세계에서 자신을 입증하려는 여성의 이야기도 건전하고 의미 있다. 이제 슬슬 어른 티가 나는 린제이 로한의 팬들도 꽤 만족할 것이다.
앤젤라 로빈슨은 이 영화를 지나치게 건전하게 만들려고 애쓴 것 같다. 영화의 러닝타임이 매기의 심각하고 건전한 드라마에 할애되는 동안, 허비가 가지고 있는 슬랩스틱 코미디(slapstick comedy)의 가능성은 상당 부분 날아가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건전한 이야기는 좋다. 하지만 살아 움직이는 자동차 이야기를 다룰 생각이었다면 교훈보다는 그 자동차의 모험에 더 신경 쓰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어차피 살아 있는 자동차를 타고 경주를 하는 건 건전한 주제에 어울릴 만한 페어플레이도 아니니 말이다.
하여간 앤젤라 로빈슨 감독의 ‘허비, 첫 시동을 걸다’(원제 Herbie: Fully Loaded)는 이 오래된 프랜차이즈의 신작이다. ‘첫 시동을 걸다’라는 한국어 부제는 속편의 속편의 속편의… 속편인 이 영화의 제목에 그렇게까지 잘 어울리지는 않지만.
오프닝 크레디트(opening credit)에 따르면 허비는 80년대까지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만 그 이후 슬럼프를 거듭했던 모양이다. 결국 폐차장에 들어가 박살 날 날만을 기다리던 하비는 졸업선물로 자동차를 원하던 매기(린제이 로한)에게 발견된다.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나 흥분한 허비는 스트리트 게임에서 스타 레이서인 트립 머피(맷 딜론)를 꺾고 스포츠카 경주 대회인 나스카에도 진출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마이클 키튼)의 뒤를 이어 레이서가 되고, 아버지에게서 인정도 받으려는 매기의 드라마와 어떻게든 허비를 꺾으려는 트립의 음모와 같은 이야기가 삽입된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이 이야기는 허점투성이다. 허비가 그렇게 유명했다면 박물관에 들어가거나 수집 목록에 올라야지, 왜 폐차장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는가? 그리고 왜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할까? 주변에 강아지처럼 굴면서 돌아다니는 자동차가 있는데, 왜 아무도 그 괴상한 상황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걸까?
그러나 디즈니랜드 세계엔 ‘디즈니랜드의 논리’가 존재하는 법이다. 그건 100년 동안 잠든 공주의 입 냄새는 염두에 두지 않는 동화나라의 논리와 같다. 이 점만 대충 인식하고 의심을 풀면 이야기는 썩 잘 돌아간다.
내용이나 갈등은 뻔하지만 허비의 재롱은 귀엽고, 레이싱 경기 중 보통 자동차로는 절대 불가능한 묘기를 펼치는 장면들도 재미있다. 남성 위주의 자동차 경주 세계에서 자신을 입증하려는 여성의 이야기도 건전하고 의미 있다. 이제 슬슬 어른 티가 나는 린제이 로한의 팬들도 꽤 만족할 것이다.
앤젤라 로빈슨은 이 영화를 지나치게 건전하게 만들려고 애쓴 것 같다. 영화의 러닝타임이 매기의 심각하고 건전한 드라마에 할애되는 동안, 허비가 가지고 있는 슬랩스틱 코미디(slapstick comedy)의 가능성은 상당 부분 날아가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건전한 이야기는 좋다. 하지만 살아 움직이는 자동차 이야기를 다룰 생각이었다면 교훈보다는 그 자동차의 모험에 더 신경 쓰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어차피 살아 있는 자동차를 타고 경주를 하는 건 건전한 주제에 어울릴 만한 페어플레이도 아니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