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도
이런, 이런! 19살 소년이 일을 냈다. 아직 여드름 자국이 채 가시지 않은 최철한 6단이 세계 바둑계를 10년 이상 주물러온 무적함대 이창호 9단을 침몰시키는 크나큰 사건을 일으켰다. 이변의 현장은 국수전 타이틀매치. 국수(國手)가 어떤 기전인가? 한국 바둑에서 가장 오래된, 반세기의 전통을 자랑하는 기전이 아닌가. ‘국수’라는 건 기사라면 누구나 꼭 한 번 달고 싶어하는 꿈의 호칭이나, 승부 세계에서는 오직 최강자만이 월계관을 쓰는 법. 지금까지 여덟 명만이 국수 타이틀을 허리에 둘러봤을 뿐인데 이번에 10대의 최철한 6단이 아홉 번째 국수에 등극했다. 그것도 천하제일 이창호 9단을 꺾고 말이다. 이 쾌거로 최철한은 7단으로 특별 승단하는 기쁨도 같이 누렸다.
승리의 원동력은 자신감이었다. 천하의 이창호를 앞에 두고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앙칼지게 도전하는 당당함. 최철한은 도전2국에서 승리한 후 “앞으로 2판(3국과 4국) 중 한 판은 이길 수 있을 것이며, 한 판을 이길 수 있다면 그 다음 판(5국)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도전기는 흑번(黑番) 필승으로 이어졌다. 흑을 쥔 기사가 이기는 ‘장군 멍군’ 흐름이 이어졌기 때문에 최종국에서 누가 흑을 잡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승리의 여신은 도전자 편을 들어주었다.
참고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처럼 바둑에도 ‘큰 승부에 명국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의외로 명암은 초반 정석과정에서 갈렸다. 백1을 움직여 흑 ▲ 를 응징하고 나섰다. 그러나 흑8에 이르자 이렇다 할 다음 수가 없다. 백1로 수상전을 벌여야 하는데 흑22까지 흑이 먼저 때리는 패라 감당하기 어렵다. 입맛을 다시며 백9로 밀어갔으나 흑이 민첩하게 10·12를 선수 친 뒤 14로 못질을 해버리자 갈 길이 구만 리가 되고 말았다. 199수 끝, 흑 불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