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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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盧와 차별화 나섰다?

당사 이전 등 정동영식 정면돌파 탄력 … 노대통령 입당시기 놓고 갈등설 흘러나와

  •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입력2004-03-11 14: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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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영, 盧와 차별화 나섰다?

    3월5일 비상당직자 회의에서 발언 중인 정동영 의장(가운데).

    ‘노무현과 정동영’. 한때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경쟁을 벌였던 두 사람. 지금은 대통령과 여당의 대표로 정권을 함께 운영하는 쌍두마차다. 언뜻 두 사람에 대한 묘사는 그리 복잡할 게 없어 보인다. ‘한때 경쟁자였으나 지금은 협력자로 한길을 가고 있다’고 하면 될 일.

    하지만 이런 단순한 시각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구체적으로 4ㆍ15 총선이 끝난 뒤 두 사람은 지금까지와 다른 갈등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두 사람 모두의 정치적 사활이 걸린 총선을 앞두고 갈등론은 터무니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3월5일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의 긴급 당직자 회의. 마이크를 잡은 정동영 의장은 여택수 전 청와대 행정관이 기업에서 받은 자금 가운데 일부가 창당자금으로 쓰였다는 검찰 조사결과를 거론하면서 격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호화 당사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 총선을 치를 수 없으며, 불법자금이 유입된 당사를 깔고 앉아 1당이 될 수 없는 만큼 오늘부로 당사 퇴거를 준비하라.”

    갑작스러운 당사 이전 발언에 김혁규 중앙위원을 중심으로 “선거가 코앞인데 당장 그럴 필요까지야 있느냐. 뜻은 알겠지만 시간을 갖고 일을 처리하자”는 신중론이 제기됐다.



    그러나 정의장은 단호했다. “월요일(8일)에는 폐 공장부지로 가든, 천막을 치고서라도 떠나야 한다”며 논란을 잠재웠다. 정의장이 세게 나가자 이부영 의원 등이 “양평동에 폐건물이 있다” “여의도 중소기업전시관도 괜찮다”고 거들고 나섰다. 정의장의 추상같은 호령에 그날부터 당직자들은 그야말로 ‘정처 없이’ 짐을 꾸려야 했다. 총무국 실무자들도 여의도 주변 빈 건물 탐색에 들어갔다. 한 당직자는 “이렇게 덩치가 큰 당사를 단 3일 만에 옮길 수 있나. 하지만 정의장이 하자고 하니까 말도 못하는 분위기다”고 말했다.

    경쟁자→협력자→또다시 경쟁자?

    애당초 우리당 당직자들 사이에 현 당사에 대한 불만은 대단했다. 당사가 입주해 있는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이 외관이 호화롭고 관리비가 비싼 데 반해 공간이 좁아 당직자들의 이런저런 민원이 그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당장 이삿짐을 꾸리라는 정의장의 지시가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앞서의 당직자는 “전자정당을 한다며 랜 망을 까는 데 든 비용만도 수억원이다. 2억원이라는 불법자금 때문에 그 열 배 가까이 든 시설비용을 포기하고 당사를 옮긴다는 게 말이 되느냐. 한마디로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 아니냐”며 반문했다. 그는 “가장 최근에는 기자실을 새로 꾸미면서 1억원이 넘는 비용을 썼다. 이런 시설을 고스란히 뜯어 새 당사로 옮긴다고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앞서 2월 말 한 중앙일간지가 보도한 우리당 내부문건 사건에 대한 정의장의 일 처리 방식을 놓고도 뒷말이 나돌았다.

    문제의 문건은 당 총선기획단의 한 계약직 실무자가 작성한 것으로 총선 승리를 위해 ‘당·정·청 컨트롤타워 구성’을 제안하는 한편 독도와 고구려사 문제를 선거 이슈화하자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문건이 공개된 직후 우리당은 정의장 주재로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도 정의장의 태도는 강경했다고 한다. 정의장은 실무자 해고는 물론, 이 실무자의 상급자인 최모씨에 대해 대기발령을 내리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최씨가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한 예비후보인데 지나친 처사”라는 주위의 만류에 대기발령건은 철회됐다.

    정의장이 등장하는 앞서의 두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두 사건 모두 우리당과 청와대가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는 점이다. 우리당 창당 과정에 노대통령의 측근이 창당자금 형식의 돈을 건넸다는 점, 또 청와대와 당정이 협력해 선거를 치르자는 내부문건이 문제가 됐다는 것 등이 그렇다.

    둘째, 정의장의 태도가 몹시 강경했다는 사실이다. 청와대 관계자의 돈이 당에 들어왔다고 하자 “불법자금이니 돈은 돌려주고 당사마저 옮기자”고 한 것이나, 당과 청와대가 협력해 선거를 치르자는 내부문건 파동에 중징계를 거론한 것 등이 그렇다는 것이다.

    정의장의 화난 목소리가 메아리 친 긴급당직자 회의 직후 우리당 내부에서는 “총선이 끝난 뒤 우리당이 1당이 되면 정의장의 본격적인 권력 장악 행보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기 시작했다. 원내1당에게 총리제청권을 주는 책임총리제가 예고된 마당에 제1당이 누릴 정치적 프리미엄은 적지 않을 전망. 만약 정의장이 제1당의 대표가 된다면 노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역학관계는 한순간에 뒤집힐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런 전망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근거는 5일 회의 직전 ‘여권 고위인사’의 전언 형태로 보도된 노대통령의 입당 시기와 관련한 기사. 이 기사에서 문제의 여권 고위인사는 “노대통령의 우리당 입당 시기는 총선이 끝난 뒤가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당 주변에서는 이 고위인사가 정의장의 측근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그 배경을 놓고 해석이 난무했다.

    제1당 땐 역학관계 역전 목소리도

    평소 정의장은 노대통령의 입당 시기와 관련해 “노대통령이 적당한 시기에 입당할 것으로 안다”고 말해왔다. 겉으로 드러난 발언만 보면 정의장은 노대통령의 입당을 그다지 절박하게 바라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 이런 정의장의 평소 발언을 주목해 일부 언론은 정의장이 노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사실상 총선전략으로 택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차별화로 승부하겠다는 생각이 지나쳐 총선을 앞두고 당사를 옮기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에 대해 정의장 진영는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 측근인사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사태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선 노대통령의 우리당 입당 시기와 관련한 이런저런 오해 때문에 최근 당론으로 노대통령의 입당 시기를 분명히 하지 않았느냐. 대선자금 특검 수사가 종결되고 한나라당이 새 대표를 뽑는 3월18일 이후 적당한 날을 택해 노대통령이 우리당에 입당할 것”이라며 “정의장의 생각도 이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했다.

    김근태 원내대표도 3월5일 논평을 통해 “‘책임정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도 대통령이 조속한 시일 내에 입당하는 것이 옳다. 이번 총선이 ‘참여정부 1년’의 공과에 대한 판단을 바탕으로 여당인 우리당을 평가하는 것인 만큼 최대한 빨리 대통령이 입당해 우리당과 함께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는데 김대표의 논평은 총선 후 입당론을 당내 갈등으로 몰아가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적극 공세로 해석된다.

    여택수 전 행정관으로부터 2억원 창당자금 수수에 대한 대응으로 당사 이전을 강행하는 것에 대해서도 정의장측은 “청와대와의 차별화를 위해 당사 이전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는 입장이다. 한 측근은 “이번 일로 청와대 쪽에서 난처해하니까 그런 얘기를 흘리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당사 이전 논의의 배경 자체가 정치권 일각의 생각과는 다르며 오히려 한나라당에 대한 적극공세라고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그동안 한나라당은 불법 대선자금 환수 차원에서 당사 매각을 하겠다, 대표 집무실을 국회로 옮기겠다는 공약을 해왔다. 그러나 최대표는 다시 당사로 들어가 일하고 있고 당사 매각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이런 한나라당과의 차별화를 위해 당사 이전을 강행하게 된 것으로 해석해달라”고 덧붙였다.

    정의장측은 또 3월7~8일 공개된 여론조사를 근거로 “청와대와 노대통령의 실책에도 우리당 지지율은 오히려 높아졌다”며 “정동영식 정면돌파가 국민들에게 먹혀들고 있다”고 즐거워했다.

    과연 우리당에서 벌어진 두 상황의 진짜 배경은 무엇일까. 정의장과의 정치적 인연에 따라 해석은 크게 엇갈리고 있지만 4ㆍ15 총선이 끝나면 그 모범답안이 자연스레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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