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6

..

영국은 지금 ‘수학교육 위기’

대입 수험생들 선택 기피, 전공자 급감 … 고교 수학교사 3400여명이나 모자라

  • 런던=안병억 통신원 anpye@hanmail.net

    입력2004-03-11 16:1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영국은 지금 ‘수학교육 위기’
    칠 전 영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공부하는 한국 학생 몇 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한국과 영국 고등학교에서의 교수방법을 비교하다가 영국의 수학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들은 “한국에 있을 때 중학교에서 배운 수학을 영국에서는 고등학교에서 배운다. 영국에서 배우는 수학 교과과정이 한국과 비교할 때 최소한 1~2년 늦다. 물론 문제 하나하나를 푸는 데보다 원리를 배우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이런 와중에 영국 고등학교에서 수학교육의 위기를 분석한 보고서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으로 선택하는 학생의 수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으며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도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경우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는 경종이 울려졌다.

    영국의 고교생들은 전국적으로 고교 졸업시험을 치른다. 중등교육이수시험 (GCSE·General 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고교 교육을 마쳤음을 증명하는 시험이다.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시험을 본 다음 보통 1년 정도 더 공부한 뒤 ‘에이레벨’ (A-Level·Advanced Level·2000년부터 AS level로 명칭이 바뀜)을 치러야 한다. 에이레벨은 우리나라로 치면 대학교 1학년 정도 수준의 공부를 하고 보는 시험이다. 대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하려는 학생은 역사와 영어, 외국어 등 여러 과목 가운데 원하는 시험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 학부에서 자연과학을 공부하려는 학생은 물리나 화학, 수학 등을 선택해 시험을 본다.

    수학교사 30% 정도가 非전공자

    과거 5년간의 추세를 보면 GCSE를 본 고교생 가운데 에이레벨에서 수학을 시험과목으로 선택한 학생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문과나 이과를 선택하는 학생의 비율이 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연과학을 선택하는 학생들조차 수학을 시험과목으로 선택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에이레벨에서 수학을 선택하지 않은 학생 가운데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으로 선택하는 학생 역시 10%가 되지 않는다. 에이레벨 시험에 자연과학을 전공하려는 수험생은 수학을 필수 과목으로 선택하라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수학을 선택하는 학생 수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전체적으로 에이레벨에서 수학을 선택한 학생 수가 5년 전과 비교해 20%나 줄었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한 영국정부는 고교 수학교육에 관한 실태와 정책대안을 전문가에게 의뢰했고, 15개월의 실태조사를 통해 최근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수학교육의 미래’라는 보고서가 발표됐다.



    이 보고서는 수학을 전공으로 선택하는 학생의 수가 줄어들다 보니 이는 곧바로 수학교사의 부족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불러왔다고 분석했다. 현재 고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의 30% 정도가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다. 에이레벨에서는 수학시험을 치렀으나 대학교에서 다른 과목을 공부한 이들이 수학교사가 부족하다 보니 고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즉 고교 수학교사의 3분의 1이 수학을 가르치기에 부적합한 사람이지만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부족한 고교 수학교사 수는 3400여명. 이를 메우기 위해서는 현재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하는 학생의 40%가 고교 수학교사로 가야 한다. 수학 전공자가 부족한 실정에서 상당수가 고교 교사로 갈 경우 수학 전공자를 필요로 하는 다른 분야는 어려움에 부닥칠 것이 뻔하다.

    보고서는 이처럼 심각한 고교 수학교육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하는 학생의 학비를 유예해주고 정부가 대신 이들의 학비를 납부해주는 유인책을 제공하라는 것이다. 둘째, 수학을 가르칠 만한 자격은 갖추고 있지 못하지만 실제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들을 재교육하기 위한 투자와 함께 수학교사 교육기관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해마다 2600만 파운드(약 520억원) 정도를 투자해야 한다는 게 보고서의 예상이다. 현재 상황대로 수학교육이 계속될 경우 장기적으로 영국 사회와 경제에 미칠 엄청난 부정적 영향을 감안하면 이 정도 투자는 적은 비용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셋째, 대학교도 자연과학 전공자에게 수학을 필수 과목으로 선택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 교육부에 수학교육의 문제점을 시정해나갈 책임자를 임명할 것도 제시했다. 교과과정을 개편하며 각종 관련 정책을 장관에게 자문하는 직속기구의 성격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자문기구에 지나지 않는 ‘수학교육자문위원회’의 권한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비교적 짧은 기간 에 실행할 수 있는 방안으로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는 학부생들을 보조교사로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런던대학 퀸메리컬리지의 에이드리언 스미스 교수(전 왕립통계학회 회장)는 “수학은 논리적 사고와 분석틀을 키워주는 매우 중요한 학문이다. 수학교육에 대한 과감한 투자 없이는 장기적 관점에서 사회와 경제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며 “정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찰스 클라크 교육부 장관(수학ㆍ경제학 전공)은 이 보고서의 발표를 환영했다. 클라크 장관은 “보고서의 내용과 정책대안이 매우 포괄적이며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보고서에 제시된 과감한 투자와 관련해서는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내년 9월부터 대학생 수업료를 현재보다 3배나 많은 연간 3000파운드까지 받을 수 있는 법이 통과된 마당에 자칫 실행에 옮기지도 못할 수학교육 개선을 위한 과감한 투자약속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관련 단체도 보고서에 제시된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며 정부에 대책을 촉구했다. ‘전국교사·강사협회’ 사무총장 메리 부스테드는 “교사교육기관에 입교하는 수학교사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 보고서의 정확성을 알 수 있다”며 “정부가 방관하지 말고 문제해결을 위한 정책실행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교사노동조합’도 이 보고서의 주요 내용에 동감의 뜻을 나타내며 “수학뿐만 아니라 과학과 정보기술(IT), 외국어 등 교사가 많이 부족한 다른 분야의 실태도 조사해 보고서를 발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모처럼 정부와 관련 단체 모두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는 보고서가 발표됐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보고서에 제시된 정책대안을 실행할 만한 재정이 뒷받침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교육재정이 좋은 편이 아닌 상황에서 특정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수학교육 개선은 장기적, 점진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게 영국 언론의 진단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