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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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 꺾던 날 밤새 펑펑 울었어요”

월드컵 응원 ‘승리의 삼지창’ 전지영양… “승리 기원한 것뿐인데…” 유명세 톡톡

  •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04-10-15 15: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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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伊 꺾던 날 밤새 펑펑 울었어요”
    ”그친구 누굴까?” 월드컵 기간에 한국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머리에 붉은 뿔 달고, 삼지창 들고 열렬하게 응원하던 깜찍한 여학생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독특한 분장으로 유난히 방송 화면에 자주 잡혔던 그 소녀는 여기저기서 화제의 중심이 됐다. ‘붉은 악마’ 서포터즈에 섞여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치던 그 소녀, 각 방송사에서 월드컵 특집으로 붉은 악마를 다룰 때마다 브라운관에 ‘꼭’ 등장했던 그 소녀는 과연 누굴까?

    평범한 고등학생, 안양예고 2학년 전지영양(18)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고무장갑 악녀’ ‘붉은 천사’ ‘승리의 삼지창’…. 월드컵 중계를 보던 사람들이 지어준 별명도 그의 독특한 차림새만큼이나 다양하다.

    전양은 한국이 치른 7경기를 모두 경기장에서 직접 응원했다. 부모의 도움 없이 2년 동안 용돈을 모아 한국팀의 조별 리그 경기 입장권을 구입했을 정도로 축구를 사랑하는 ‘축구 마니아’.

    “사람들이 제 복장을 보고 ‘천사 같다. 아니다 악마 같다’고 싸운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악마이기도 하고 천사이기도 해요. 천사는 한국의 승리를 기원하고, 악마는 상대팀을 무찌르기를 비는 거예요.”

    전양은 응원도구를 모두 직접 만들었다. 머리에 단 붉은색 뿔, 천사/악마의 날개, 황금 삼지창, 구멍난 고무장갑까지. 날개를 만드는 데는 꼬박 이틀 밤을 세웠다고 한다. 동대문시장에서 깃털과 철사, 옷감을 구입해서 태극을 상징하는 붉은색, 푸른색 페인트로 칠하고 글자를 새겨넣었다. 방송 화면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날개 뒤편에는 깃털로 쓴 ‘COREA 승리한다’는 글귀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제가 그렇게 유명한지 몰랐어요. TV 중계를 한 번도 보지 못했거든요. 승리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열심히 응원한 것뿐인데 부끄럽기도 해요.”

    “伊 꺾던 날 밤새 펑펑 울었어요”
    전양이 축구에 푹 빠지게 된 것은 98프랑스 월드컵 때부터. 국가대표팀은 1무2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경기를 마쳤지만, 선수들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골이 터졌을 때의 환희를 잊지 못해 붉은 악마 회원이 됐다. 2000년부터 포항의 서포터가 돼 축구 경기장을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전양의 앨범엔 히딩크 감독을 비롯해 축구선수들과 찍은 사진 200여장이 정성스럽게 보관돼 있다. 이 사진들은 전양이 직접 국가대표팀을 쫓아다니며 찍은 것. 다른 사람들이 국가대표팀에 대해 지금처럼 큰 관심을 두지 않을 때, 그는 파주 경주 등 국가대표팀 훈련지를 따라다니며 선수들을 응원했다.

    “가장 많이 울었을 때요? 이탈리아전에서 안정환 선수가 ‘황금골’을 넣었을 때요. 밤새도록 울었는데도 눈물이 마르지 않더라구요. 독일에 패했을 때도 울었는데 이상하게도 금방 멈췄어요. 눈물은 ‘슬픔’보다는 ‘기쁨’하고 더 친한가 봐요.”

    예고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하는 전양의 꿈은 연극배우가 되는 것이다. 연극을 보기 위해 1년에 100번 이상 공연장을 찾을 정도로 ‘연극 마니아’이기도 하다. 학교 성적도 상위권으로 반에서 5등 밖으로 떨어져본 적이 없다. 경쟁률이 높은 대학의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고.

    기말고사 기간엔 공부하느라 하루에 4시간밖에 자지 못했다는 지영양. 7월7일 포항과 성남의 K-리그 개막전이 펼쳐진 성남공설운동장에서도 그의 모습은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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