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에 대한 불신, 학교와 가정 사이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가정방문’을 부활시킨 교사들이 있다. ‘좋은교사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기독교사연합 소속 3000여명의 교사들은 오래 전부터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 가정방문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지난해부터 전국 캠페인으로 확대했다.
4월9일 오후 서울 은평구 불광동 연천중 3학년 5반 김순애 선생님(36)의 가정방문에 동행했다. 멀리서 한 부대의 학생들을 이끌고 김순애 선생님이 나타났다. 가정방문 6일째. 내일이면 이 강행군도 끝난다. 오늘은 경남, 경학이, 형민이, 성우, 지혜 이렇게 5명의 아이들 집을 방문할 예정이다. ‘그래, 선생님도 너희들 마음 다 안다. 담임이 부모님 만나는데 마음 편할 아이가 몇 명이나 되겠니.’ 김순애 선생님은 미적거리는 아이들의 뒤통수를 보며 미소 짓는다. 교문을 나서니 구불구불 끝없이 이어지는 불광동 언덕길이 펼쳐졌다.
한 달간 전국서 3천여명 참여
첫번째 방문은 경남이네 집. 부모님은 일하러 나가시고 아무도 없다. 김선생님은 사느라고 바쁜 부모님들에게 “가정방문 때 꼭 집에 계셔야 한다”고 부담을 주지 않는다. 부모님과 면담을 하지 못해도 아이의 공부방을 쓱 둘러보면 평소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금세 안다. 경남이처럼 귀가 후 혼자 저녁을 챙겨 먹어야 하는 아이 집에서는 부엌에 들어가 밥솥도 한번 열어본다. “절대로 저녁에 라면 끓여 먹지 말라”는 다짐도 잊지 않는다.
두 번째 경학이네 집으로 향할 때 경민이도 책가방을 던져놓고 따라 나선다. 김선생님의 가정방문은 특이해서 아이들과 함께 다닌다. 오늘 예정은 5명이지만 이미 지난 주 가정방문을 끝낸 성경이가 따라붙어 6명이 동행했다. “어머니와 일 대 일로 만나는 것보다 아이들과 함께 가면 분위기가 훨씬 자연스러워져요. 학기 초니까 친구들 집에 가보고 싶을 테고, 아이들끼리 방에서 놀고 있는 동안 부모님과 상담을 하죠.”
경학이 어머니는 “아이가 미리 이야기해 주지 않아 하마터면 모르고 지나갈 뻔했어요”라며 함박 웃음을 터뜨린다. 아이들은 가정방문을 싫어한다. 학기 초 ‘가정통신’에 가정방문의 취지와 일정을 알려도 집에 전달하지 않고 ‘꿀꺽’하는 경우가 많다. 경학이도 슬쩍 넘어가려다 전날 선생님과 어머니가 전화통화를 하는 바람에 들통났다.
“경학이가 워낙 농구를 좋아해 체육 관련 학교로 진학하고 싶어하는데 가능할까요?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요?” 진학과 관련한 어머니의 질문에 선생님은 우선 아이들에게 답을 구한다. “얘가 농구를 잘하는 편이니?” “네, 잘해요.” 아이들의 대답이 시원스럽다.
어느새 아이들은 경학이 방으로 몰려가고 선생님과 어머니만 남았다. 경학이의 고등학교 진학 문제나 생활 태도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인생 상담으로 바뀌었다. 어머니는 삶의 고비고비를 잘 넘기고 이제는 두 아들을 키우며 단란한 가정을 이뤄낸 밝고 씩씩한 분이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 더 물을 게 없다.
세 번째 형민이네 집. 반갑게 맞는 형민이 어머니 뒤로 아버지도 보이는가 싶더니 사라졌다.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자녀 교육을 아내에게 미루고 뒷전에 선다. 여교사의 가정방문이라 더 쑥스러운지도 모르겠다. “형민이가 요즘 뭔가 불만이 있는 것 같은데 어머니는 짚이는 데가 없으세요?” 선생님의 질문에 어머니는 “예, 아무 일도 아닌데 자꾸 투덜거려요”라며 맞장구를 친다. 말을 부드럽고 바르게 하려는 습관을 들이라고 주의를 줬다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그것만 빼면 형민이의 학교생활이나 가정생활은 건강한 편이다. “공부에 좀더 집중해 주면 좋겠지만, 몸이 건강하고 친구들과의 관계가 원만한 것도 중요하죠.” 형민이 어머니의 교육관도 건강했다.
앞집에서 지체해 네 번째 성우네 집 가정방문은 예정보다 1시간이나 늦어버렸다. 아이들을 위해 피자를 주문해 놓고 기다리던 성우 어머니는 식어버린 피자가 안타깝다. 그래도 선생님과 아이들은 둘러앉아 맛있게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어머니도 그 자리에 끼인다. 자연스럽게 성우의 학교생활이나 학원 문제, 고교 진학 등이 화제가 되었다. 성우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가정방문 때 아버지도 꼭 계셔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단다. 그만큼 아버지가 자랑스러운 아이다.
지혜네 집은 가장 멀리 있는 데다 출발할 때 이미 어둑어둑해져, 나머지 친구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선생님과 지혜, 단짝 성경이만 지혜네 집에 가기로 했다. 외진 곳이어서 밤길이 으슥하다. “지혜야, 밤늦게 돌아다니면 위험하겠다. 일찍 집에 들어가. 알았지?” 귀가 시간이 늦은 편인 지혜에게 선생님이 잔소리를 한다. 싱긋 웃기만 하는 지혜.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너무 좋아하는 게 탈이다. 막 퇴근했다며 반갑게 맞는 지혜 어머니도 똑같은 생각이다. “언니처럼 얌전했으면 좋겠는데, 지혜는 엄마 말을 무서워하지 않아요.” 선생님은 얼른 “자꾸 언니와 비교하시면 더 반발심이 생기죠. 앞으로 공부를 하겠다고 자기가 먼저 약속했으니까 지켜보시죠”라며 지혜 편을 들어준다. 편찮으신 아버지, 언니와 남동생 틈에 끼인 지혜의 입장을 짐작할 수 있다.
어느새 저녁 8시가 되어 밖이 캄캄하다. 김선생님 집에도 세 아이가 기다리고 있다. 서둘러 돌아가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잊어버리기 전에 가정방문 내용을 기록해야 한다. 경학이네는 두 형제, 지혜는 삼남매, 성우는 쌍둥이 동생까지 사남매…. 오늘은 유난히 형제 많은 다복한 집들을 방문했다. 김선생님 집이 바로 학교 근처라 골목에서 아이들과 자주 마주친다. 가정방문 때 보았던 그 집 형제들까지 꾸뻑 인사한다. “네가 형민이 동생이구나!” 내일이면 3학년 5반 33명의 가정방문이 끝난다.
가정방문이 끝나면 선생님들은 한동안 후유증을 앓는다. 지난해 교사 생활 17년 만에 첫 가정방문을 했던 한 선생님이 ‘좋은교사’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띄웠다. “지각한 아이들을 야무지게 야단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 아이들 집에 가려고 헐레벌떡 전철 타고 마을버스 갈아타고 가면서 아이들이 등교 시간에 맞춰 학교 오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죠. 학부모들도 저를 어려워하지 않고 전화로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시고, 전에는 길에서 만나면 그냥 지나쳤을 어머니들과 이야기하느라 시간을 많이 지체합니다. 그리고 가정방문을 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저를 정말 ‘좋은 교사’로 판단해 주셔서 부담이 큽니다. 앞으로도 ‘좋은 교사’인 것처럼 행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걸어다닐 힘이 있는 한 가정방문을 계속하겠다는 신병준 선생님(전주 신흥중)과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이 오늘도 아픈 다리를 주무르며 골목을 누빈다. “엄마, 선생님 오셨어요.”
4월9일 오후 서울 은평구 불광동 연천중 3학년 5반 김순애 선생님(36)의 가정방문에 동행했다. 멀리서 한 부대의 학생들을 이끌고 김순애 선생님이 나타났다. 가정방문 6일째. 내일이면 이 강행군도 끝난다. 오늘은 경남, 경학이, 형민이, 성우, 지혜 이렇게 5명의 아이들 집을 방문할 예정이다. ‘그래, 선생님도 너희들 마음 다 안다. 담임이 부모님 만나는데 마음 편할 아이가 몇 명이나 되겠니.’ 김순애 선생님은 미적거리는 아이들의 뒤통수를 보며 미소 짓는다. 교문을 나서니 구불구불 끝없이 이어지는 불광동 언덕길이 펼쳐졌다.
한 달간 전국서 3천여명 참여
첫번째 방문은 경남이네 집. 부모님은 일하러 나가시고 아무도 없다. 김선생님은 사느라고 바쁜 부모님들에게 “가정방문 때 꼭 집에 계셔야 한다”고 부담을 주지 않는다. 부모님과 면담을 하지 못해도 아이의 공부방을 쓱 둘러보면 평소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금세 안다. 경남이처럼 귀가 후 혼자 저녁을 챙겨 먹어야 하는 아이 집에서는 부엌에 들어가 밥솥도 한번 열어본다. “절대로 저녁에 라면 끓여 먹지 말라”는 다짐도 잊지 않는다.
두 번째 경학이네 집으로 향할 때 경민이도 책가방을 던져놓고 따라 나선다. 김선생님의 가정방문은 특이해서 아이들과 함께 다닌다. 오늘 예정은 5명이지만 이미 지난 주 가정방문을 끝낸 성경이가 따라붙어 6명이 동행했다. “어머니와 일 대 일로 만나는 것보다 아이들과 함께 가면 분위기가 훨씬 자연스러워져요. 학기 초니까 친구들 집에 가보고 싶을 테고, 아이들끼리 방에서 놀고 있는 동안 부모님과 상담을 하죠.”
경학이 어머니는 “아이가 미리 이야기해 주지 않아 하마터면 모르고 지나갈 뻔했어요”라며 함박 웃음을 터뜨린다. 아이들은 가정방문을 싫어한다. 학기 초 ‘가정통신’에 가정방문의 취지와 일정을 알려도 집에 전달하지 않고 ‘꿀꺽’하는 경우가 많다. 경학이도 슬쩍 넘어가려다 전날 선생님과 어머니가 전화통화를 하는 바람에 들통났다.
“경학이가 워낙 농구를 좋아해 체육 관련 학교로 진학하고 싶어하는데 가능할까요?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요?” 진학과 관련한 어머니의 질문에 선생님은 우선 아이들에게 답을 구한다. “얘가 농구를 잘하는 편이니?” “네, 잘해요.” 아이들의 대답이 시원스럽다.
어느새 아이들은 경학이 방으로 몰려가고 선생님과 어머니만 남았다. 경학이의 고등학교 진학 문제나 생활 태도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인생 상담으로 바뀌었다. 어머니는 삶의 고비고비를 잘 넘기고 이제는 두 아들을 키우며 단란한 가정을 이뤄낸 밝고 씩씩한 분이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 더 물을 게 없다.
세 번째 형민이네 집. 반갑게 맞는 형민이 어머니 뒤로 아버지도 보이는가 싶더니 사라졌다.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자녀 교육을 아내에게 미루고 뒷전에 선다. 여교사의 가정방문이라 더 쑥스러운지도 모르겠다. “형민이가 요즘 뭔가 불만이 있는 것 같은데 어머니는 짚이는 데가 없으세요?” 선생님의 질문에 어머니는 “예, 아무 일도 아닌데 자꾸 투덜거려요”라며 맞장구를 친다. 말을 부드럽고 바르게 하려는 습관을 들이라고 주의를 줬다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그것만 빼면 형민이의 학교생활이나 가정생활은 건강한 편이다. “공부에 좀더 집중해 주면 좋겠지만, 몸이 건강하고 친구들과의 관계가 원만한 것도 중요하죠.” 형민이 어머니의 교육관도 건강했다.
앞집에서 지체해 네 번째 성우네 집 가정방문은 예정보다 1시간이나 늦어버렸다. 아이들을 위해 피자를 주문해 놓고 기다리던 성우 어머니는 식어버린 피자가 안타깝다. 그래도 선생님과 아이들은 둘러앉아 맛있게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어머니도 그 자리에 끼인다. 자연스럽게 성우의 학교생활이나 학원 문제, 고교 진학 등이 화제가 되었다. 성우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가정방문 때 아버지도 꼭 계셔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단다. 그만큼 아버지가 자랑스러운 아이다.
지혜네 집은 가장 멀리 있는 데다 출발할 때 이미 어둑어둑해져, 나머지 친구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선생님과 지혜, 단짝 성경이만 지혜네 집에 가기로 했다. 외진 곳이어서 밤길이 으슥하다. “지혜야, 밤늦게 돌아다니면 위험하겠다. 일찍 집에 들어가. 알았지?” 귀가 시간이 늦은 편인 지혜에게 선생님이 잔소리를 한다. 싱긋 웃기만 하는 지혜.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너무 좋아하는 게 탈이다. 막 퇴근했다며 반갑게 맞는 지혜 어머니도 똑같은 생각이다. “언니처럼 얌전했으면 좋겠는데, 지혜는 엄마 말을 무서워하지 않아요.” 선생님은 얼른 “자꾸 언니와 비교하시면 더 반발심이 생기죠. 앞으로 공부를 하겠다고 자기가 먼저 약속했으니까 지켜보시죠”라며 지혜 편을 들어준다. 편찮으신 아버지, 언니와 남동생 틈에 끼인 지혜의 입장을 짐작할 수 있다.
어느새 저녁 8시가 되어 밖이 캄캄하다. 김선생님 집에도 세 아이가 기다리고 있다. 서둘러 돌아가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잊어버리기 전에 가정방문 내용을 기록해야 한다. 경학이네는 두 형제, 지혜는 삼남매, 성우는 쌍둥이 동생까지 사남매…. 오늘은 유난히 형제 많은 다복한 집들을 방문했다. 김선생님 집이 바로 학교 근처라 골목에서 아이들과 자주 마주친다. 가정방문 때 보았던 그 집 형제들까지 꾸뻑 인사한다. “네가 형민이 동생이구나!” 내일이면 3학년 5반 33명의 가정방문이 끝난다.
가정방문이 끝나면 선생님들은 한동안 후유증을 앓는다. 지난해 교사 생활 17년 만에 첫 가정방문을 했던 한 선생님이 ‘좋은교사’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띄웠다. “지각한 아이들을 야무지게 야단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 아이들 집에 가려고 헐레벌떡 전철 타고 마을버스 갈아타고 가면서 아이들이 등교 시간에 맞춰 학교 오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죠. 학부모들도 저를 어려워하지 않고 전화로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시고, 전에는 길에서 만나면 그냥 지나쳤을 어머니들과 이야기하느라 시간을 많이 지체합니다. 그리고 가정방문을 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저를 정말 ‘좋은 교사’로 판단해 주셔서 부담이 큽니다. 앞으로도 ‘좋은 교사’인 것처럼 행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걸어다닐 힘이 있는 한 가정방문을 계속하겠다는 신병준 선생님(전주 신흥중)과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이 오늘도 아픈 다리를 주무르며 골목을 누빈다. “엄마, 선생님 오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