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억울하다. 조지 소로스(국제 금융투자가), 알 왈리드(사우디아라비아 왕자)를 불러 외자유치에 일조했는데 청와대와 권력 주변의 음해로 (청와대) 비서실에 못 들어갔다 … 권 전 위원도 빨리 (정계에) 복귀해야 하는데 김쭛쭛, 장쭛쭛이 방해하고 있다. 내가 청와대에 갔으면 그×들을….”
지난 1999년 말, 일본 도쿄 오쿠라 호텔. 권노갑 전 민주당 최고위원은 불쑥 찾아와 답답한 심정을 호소하는 한 젊은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국내 복귀를 하고 싶었으나 “시기가 이르다”는 권력 핵심부의 의중에 따라 해외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권 전 위원의 속마음을 읽고 있는 듯 젊은이의 말은 시원시원했다. 한참 듣고 있던 권 전 위원은 함께 식사할 것을 제의했고 식사를 마친 권 전 위원은 그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국내에) 들어가면 같이 일하세.”
최규선씨(미래도시환경 대표)와 권노갑 전 위원의 ‘연’(緣)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때 맺은 인연으로 권 전 위원은 김대중 대통령의 3남 홍걸씨와 함께 ‘최규선 게이트’의 의혹의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검찰은 최씨를 소환해 그와 관련한 각종 의혹 사건의 진상을 조사할 예정이다. 검찰이 가장 신경 쓰는 대목은 최씨와 홍걸씨의 돈 거래 및 정치인과의 유착 관계. 검찰 조사에 따라 최규선 게이트는 또 다른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최씨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를 ‘타고난 로비스트’로 평가한다. 뛰어난 사교술과 언변을 가진 데다,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로 세계적 석학 스칼라피노 교수와 막역한 친분을 나누는 그는 누가 보더라도 ‘국제통’으로 손색이 없었다.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던 한 인사의 전언. “그의 강남 사무실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악수하는 사진이 여러 장 걸려 있다. 또 알 왈리드 왕자 방한 때 공항에 영접 나가 대화하는 비디오 테이프도 꼭 틀어준다. 사진과 비디오 테이프를 보면 최씨는 영락없이 DJ(김대중 대통령)의 핵심이었다.”
최씨는 DJ 정부 출범 전부터 핵심 실세 주변으로의 진입을 꾸준히 시도했다. 그가 처음 정치권에 줄을 댄 것은 97년 DJ 캠프. 그가 DJ 캠프를 노크한 것은 출신지(전남 나주) 탓도 있었지만, 미국에서 김홍걸씨와 교분을 나눴기 때문이라거나, 김대통령과도 막역한 사이인 스칼라피노 교수의 추천 덕분이었다는 등으로 의견이 엇갈린다.
94년 버클리대에 유학중이던 최씨는 남가주대에 다니던 홍걸씨를 찾아 친분을 나눴다. 97년 5월 대선후보 선출 전당대회 때 김대중 후보의 대외 담당 보좌역을 맡은 그는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의 딸인 진지 만델라를 초청할 것을 제의했다. 주변에서 반신반의하는 분위기 속에 김후보는 “정말 데려올 수 있느냐”고 세 번이나 확인했다. 최씨는 그런 김후보에게 “책임지겠다”고 말했고 진지 만델라의 방한을 성사시켰다. 김대통령이 최씨를 신뢰할 수 있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그 후 최씨는 세계적인 금융투자가 조지 소로스 퀀텀펀드 회장과 김대통령의 인터넷 화상회의를 성사시켰고, 알 왈리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의 30억 달러 국내 투자 유치에도 한 역할을 했다. 최씨를 잘 아는 정치권 한 인사는 “국제적 명사들을 초청한 배경에는 미국의 팝 가수 마이클 잭슨의 역할이 컸다”고 말한다. 그는 마이클 잭슨과 연을 맺기 위해 그의 미국 전 지역 순회공연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따라다니는가 하면, 색동옷을 입힌 그의 아들과 함께 마이클 잭슨의 집 앞에서 기다리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씨의 권력 진입은 실패로 끝났다. 그에 대해 좋지 않은 얘기들이 따라다닌 데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 10여일 전에 가진 TV 인터뷰를 통해 북한 결식 어린이를 돕기 위해 마이클 잭슨의 판문점 공연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사실이 김당선자의 노여움을 샀다는 후문이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간 최씨는 재기의 꿈을 키웠다. 1년 정도 미국에서 와신상담한 최씨가 정치권 재진입을 위해 빼든 카드가 권 전 위원이었던 것. 앞서 언급한 대로 그는 도쿄 오쿠라 호텔 회동을 준비했고 그 계획은 보기 좋게 적중했다.
권 전 위원은 정현준·진승현 게이트 등 각종 의혹 사건 때마다 여권 실세 ‘K’라는 이니셜로 거론됐다. 이번 최규선 게이트에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최씨가 권 전 위원의 보좌역 출신이고, 최씨의 대책회의 참석 의혹을 받고 있는 김희완 전 서울시 부시장도 권 전 위원의 참모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의혹의 눈길을 피하기는 어렵다. 최씨와 김 전 부시장은 거의 같은 시기에 권 전 위원의 캠프에 들어갔다. 더구나 최씨의 운전 기사였던 천호영씨가 공개한 녹음 테이프에는 “그러면 K씨 사위 얘기가 안 나올 수 없잖아”라는 멘트가 나오는 등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그동안 정치권에는 “최씨가 미국에 있는 권 전 위원의 아들을 제너럴일렉트릭(GE)에 취직시켰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그러나 권 전 위원의 한 측근은 “최씨가 오기 전에 이미 GE와 보잉사 두 곳에 합격, 인터뷰가 끝난 상태”라며 “최씨가 취직을 시켰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말한다. 최씨가 자신과 권 전 위원의 관계를 부각하기 위해 꾸며낸 말이라는 것.
그렇다고 해도 새 정부 초기 청와대 입성에 실패한 최씨가 단시간 내에 DJ 정부의 핵심 인사들과 교분을 쌓은 것은 권 전 위원 사무실의 문지기 역할이 큰 힘이 됐던 것이 사실이다. 최씨는 당시 당 안보자문위원이었던 김동신 장관을 서너 차례 만났고 이때의 연을 이용해 FX사업 로비에 활용하려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정보기관은 최씨가 권 전 위원의 방을 지키며 여러 가지 ‘로비’활동을 벌인 것으로 파악하고 이를 권 전 위원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확인한 권 전 위원은 2000년 10월 최씨에게 ‘금족령’을 내렸다. 권 전 위원측은 “금족령이 내려진 후 권 전 위원이 최씨를 만난 적은 없다”고 말한다.
권력 중심으로의 비상에 실패한 최씨는 이후부터 ‘비즈니스’에 심혈을 기울였다. 최근 터진 각종 이권 개입 의혹 등 대부분의 사건은 이때부터 그가 연출한 것들이다. 정치에서 발을 뗐지만 최씨는 정치권 인맥을 적절하게 활용했다. 최씨의 행적을 추적한 한 언론인의 말은 최씨가 ‘여권 실세’인 권 전 위원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최씨는 외국의 기업인이나 금융인을 한국으로 데려와 ‘권 전 위원의 뜻’이라며 대통령 행사 일정에 슬쩍 끼어넣기도 했다. 행사 실무자들이 권 전 위원에게 이를 확인할 수야있나. 또 한국의 대통령과 악수하거나 식사를 같이 한 그 외국인이 최씨를 어떻게 보겠는가.”
최씨는 이렇게 마음을 산 외국의 기업인이나 금융인 등을 통해 외자유치 문제 등을 논의했고 이런 일들이 최근 리베이트 의혹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권 전 위원은 비교적 최씨에게 냉정한 자세로 일관했다는 평가도 있다. 비서진이 과거 연을 이용해 ‘사고’친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지만, 권 전 위원이 직접 개입한 흔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홍걸씨는 최씨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그가 하는 일에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최씨는 사석에서 홍걸씨와 ‘의형제’ 사이라고 과시하고 다녔다. 최씨와 교분이 있는 정치권 한 인사는 홍걸씨를 이용하는 최씨의 행각을 이렇게 설명했다.
“여러 명이 모인 자리에서 홍걸씨에게 전화 해 청와대 등 여권 내부의 고급 정보를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홍걸씨가 청와대나 여권 인사들에 대해 관심을 보이면 다시 청와대에 전화해 ‘홍걸씨가 이런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확인을 좀 해달라’고 한다. 그러면 청와대에서도 여러 가지 정보와 설명이 곁들여져 되돌아온다. 이런 상황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이 최씨와 홍걸씨와의 관계를 어떻게 보겠는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최씨는 자연히 로열 패밀리와 통하는 인물로 각인됐다. 주변에 사람이 모였고 그들은 하나둘씩 최씨에게 ‘민원’ 보따리를 풀었다. 그러나 그의 행적은 곧바로 정보기관 안테나에 잡혀 청와대에 보고되었다. 김대통령의 가족회의(일요일 예배 후 가족의 식사 자리)는 홍걸씨와 최씨의 관계에 대해 대책을 논의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대통령 친인척 사정에 밝은 한 여권 인사의 설명이다. “최씨와 홍걸씨 문제는 새 정부 초기부터 문제가 됐다. 이 때문에 청와대 가족모임에서 말이 나올 정도였다. 지난해(2001년)에도 두 사람 얘기가 나돌아 가족모임에서 ‘홍걸씨의 귀국을 자제시키고 최씨와 만나지 말게 하라’는 결론을 내렸다. 최씨에게도 경고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홍걸씨는 이런 주변의 지적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청와대와 정보기관 내부에서 자신들의 관계나 활동을 악의적으로 보고해 문제가 생긴다는 생각이 강했다는 것. 권력 내부에서도 이런 홍걸씨를 제재할 묘수를 찾지 못했고 최씨의 활동 공간은 점점 확대됐다. 그 과정에 홍걸씨는 알게 모르게 ‘병풍’으로서 역할을 수행한 부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최근 유심히 관찰하는 부분도 이 점이다.
최규선 게이트의 첫번째 의혹 당사자인 홍걸씨와 최씨의 커넥션 흔적은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우선 ‘자금’이 오갔다. 최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98년부터 주택 구입비, 용돈 등 명목으로 9억원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홍걸씨가 최씨 등 제삼자 명의로 상당량의 타이거풀스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최씨는 부인하고 있지만 홍걸씨의 동서 H씨도 자신의 회사 직원 명의로 1만주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사실이 드러났다. 최씨의 차명계좌에서 100억원대 비자금이 발견된 것도 홍걸씨와의 관계에 대한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과연 홍걸씨가 최씨로부터 아무 조건 없이 받기만 했을까 하는 점이다. 최씨는 물론 “조건 없이 도와주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들의 동선(動線) 곳곳에는 권력의 힘이 작용한 흔적들이 엿보이고, 그 정점에 홍걸씨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홍걸씨는 최씨에게 과연 무엇이었을까. 임기 말을 맞은 김대통령은 아들 3형제의 꼬리를 무는 의혹 사건 연루설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도 김대통령만큼이나 조마조마해 보인다.
지난 1999년 말, 일본 도쿄 오쿠라 호텔. 권노갑 전 민주당 최고위원은 불쑥 찾아와 답답한 심정을 호소하는 한 젊은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국내 복귀를 하고 싶었으나 “시기가 이르다”는 권력 핵심부의 의중에 따라 해외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권 전 위원의 속마음을 읽고 있는 듯 젊은이의 말은 시원시원했다. 한참 듣고 있던 권 전 위원은 함께 식사할 것을 제의했고 식사를 마친 권 전 위원은 그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국내에) 들어가면 같이 일하세.”
최규선씨(미래도시환경 대표)와 권노갑 전 위원의 ‘연’(緣)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때 맺은 인연으로 권 전 위원은 김대중 대통령의 3남 홍걸씨와 함께 ‘최규선 게이트’의 의혹의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검찰은 최씨를 소환해 그와 관련한 각종 의혹 사건의 진상을 조사할 예정이다. 검찰이 가장 신경 쓰는 대목은 최씨와 홍걸씨의 돈 거래 및 정치인과의 유착 관계. 검찰 조사에 따라 최규선 게이트는 또 다른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최씨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를 ‘타고난 로비스트’로 평가한다. 뛰어난 사교술과 언변을 가진 데다,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로 세계적 석학 스칼라피노 교수와 막역한 친분을 나누는 그는 누가 보더라도 ‘국제통’으로 손색이 없었다.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던 한 인사의 전언. “그의 강남 사무실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악수하는 사진이 여러 장 걸려 있다. 또 알 왈리드 왕자 방한 때 공항에 영접 나가 대화하는 비디오 테이프도 꼭 틀어준다. 사진과 비디오 테이프를 보면 최씨는 영락없이 DJ(김대중 대통령)의 핵심이었다.”
최씨는 DJ 정부 출범 전부터 핵심 실세 주변으로의 진입을 꾸준히 시도했다. 그가 처음 정치권에 줄을 댄 것은 97년 DJ 캠프. 그가 DJ 캠프를 노크한 것은 출신지(전남 나주) 탓도 있었지만, 미국에서 김홍걸씨와 교분을 나눴기 때문이라거나, 김대통령과도 막역한 사이인 스칼라피노 교수의 추천 덕분이었다는 등으로 의견이 엇갈린다.
94년 버클리대에 유학중이던 최씨는 남가주대에 다니던 홍걸씨를 찾아 친분을 나눴다. 97년 5월 대선후보 선출 전당대회 때 김대중 후보의 대외 담당 보좌역을 맡은 그는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의 딸인 진지 만델라를 초청할 것을 제의했다. 주변에서 반신반의하는 분위기 속에 김후보는 “정말 데려올 수 있느냐”고 세 번이나 확인했다. 최씨는 그런 김후보에게 “책임지겠다”고 말했고 진지 만델라의 방한을 성사시켰다. 김대통령이 최씨를 신뢰할 수 있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그 후 최씨는 세계적인 금융투자가 조지 소로스 퀀텀펀드 회장과 김대통령의 인터넷 화상회의를 성사시켰고, 알 왈리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의 30억 달러 국내 투자 유치에도 한 역할을 했다. 최씨를 잘 아는 정치권 한 인사는 “국제적 명사들을 초청한 배경에는 미국의 팝 가수 마이클 잭슨의 역할이 컸다”고 말한다. 그는 마이클 잭슨과 연을 맺기 위해 그의 미국 전 지역 순회공연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따라다니는가 하면, 색동옷을 입힌 그의 아들과 함께 마이클 잭슨의 집 앞에서 기다리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씨의 권력 진입은 실패로 끝났다. 그에 대해 좋지 않은 얘기들이 따라다닌 데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 10여일 전에 가진 TV 인터뷰를 통해 북한 결식 어린이를 돕기 위해 마이클 잭슨의 판문점 공연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사실이 김당선자의 노여움을 샀다는 후문이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간 최씨는 재기의 꿈을 키웠다. 1년 정도 미국에서 와신상담한 최씨가 정치권 재진입을 위해 빼든 카드가 권 전 위원이었던 것. 앞서 언급한 대로 그는 도쿄 오쿠라 호텔 회동을 준비했고 그 계획은 보기 좋게 적중했다.
권 전 위원은 정현준·진승현 게이트 등 각종 의혹 사건 때마다 여권 실세 ‘K’라는 이니셜로 거론됐다. 이번 최규선 게이트에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최씨가 권 전 위원의 보좌역 출신이고, 최씨의 대책회의 참석 의혹을 받고 있는 김희완 전 서울시 부시장도 권 전 위원의 참모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의혹의 눈길을 피하기는 어렵다. 최씨와 김 전 부시장은 거의 같은 시기에 권 전 위원의 캠프에 들어갔다. 더구나 최씨의 운전 기사였던 천호영씨가 공개한 녹음 테이프에는 “그러면 K씨 사위 얘기가 안 나올 수 없잖아”라는 멘트가 나오는 등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그동안 정치권에는 “최씨가 미국에 있는 권 전 위원의 아들을 제너럴일렉트릭(GE)에 취직시켰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그러나 권 전 위원의 한 측근은 “최씨가 오기 전에 이미 GE와 보잉사 두 곳에 합격, 인터뷰가 끝난 상태”라며 “최씨가 취직을 시켰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말한다. 최씨가 자신과 권 전 위원의 관계를 부각하기 위해 꾸며낸 말이라는 것.
그렇다고 해도 새 정부 초기 청와대 입성에 실패한 최씨가 단시간 내에 DJ 정부의 핵심 인사들과 교분을 쌓은 것은 권 전 위원 사무실의 문지기 역할이 큰 힘이 됐던 것이 사실이다. 최씨는 당시 당 안보자문위원이었던 김동신 장관을 서너 차례 만났고 이때의 연을 이용해 FX사업 로비에 활용하려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정보기관은 최씨가 권 전 위원의 방을 지키며 여러 가지 ‘로비’활동을 벌인 것으로 파악하고 이를 권 전 위원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확인한 권 전 위원은 2000년 10월 최씨에게 ‘금족령’을 내렸다. 권 전 위원측은 “금족령이 내려진 후 권 전 위원이 최씨를 만난 적은 없다”고 말한다.
권력 중심으로의 비상에 실패한 최씨는 이후부터 ‘비즈니스’에 심혈을 기울였다. 최근 터진 각종 이권 개입 의혹 등 대부분의 사건은 이때부터 그가 연출한 것들이다. 정치에서 발을 뗐지만 최씨는 정치권 인맥을 적절하게 활용했다. 최씨의 행적을 추적한 한 언론인의 말은 최씨가 ‘여권 실세’인 권 전 위원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최씨는 외국의 기업인이나 금융인을 한국으로 데려와 ‘권 전 위원의 뜻’이라며 대통령 행사 일정에 슬쩍 끼어넣기도 했다. 행사 실무자들이 권 전 위원에게 이를 확인할 수야있나. 또 한국의 대통령과 악수하거나 식사를 같이 한 그 외국인이 최씨를 어떻게 보겠는가.”
최씨는 이렇게 마음을 산 외국의 기업인이나 금융인 등을 통해 외자유치 문제 등을 논의했고 이런 일들이 최근 리베이트 의혹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권 전 위원은 비교적 최씨에게 냉정한 자세로 일관했다는 평가도 있다. 비서진이 과거 연을 이용해 ‘사고’친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지만, 권 전 위원이 직접 개입한 흔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홍걸씨는 최씨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그가 하는 일에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최씨는 사석에서 홍걸씨와 ‘의형제’ 사이라고 과시하고 다녔다. 최씨와 교분이 있는 정치권 한 인사는 홍걸씨를 이용하는 최씨의 행각을 이렇게 설명했다.
“여러 명이 모인 자리에서 홍걸씨에게 전화 해 청와대 등 여권 내부의 고급 정보를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홍걸씨가 청와대나 여권 인사들에 대해 관심을 보이면 다시 청와대에 전화해 ‘홍걸씨가 이런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확인을 좀 해달라’고 한다. 그러면 청와대에서도 여러 가지 정보와 설명이 곁들여져 되돌아온다. 이런 상황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이 최씨와 홍걸씨와의 관계를 어떻게 보겠는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최씨는 자연히 로열 패밀리와 통하는 인물로 각인됐다. 주변에 사람이 모였고 그들은 하나둘씩 최씨에게 ‘민원’ 보따리를 풀었다. 그러나 그의 행적은 곧바로 정보기관 안테나에 잡혀 청와대에 보고되었다. 김대통령의 가족회의(일요일 예배 후 가족의 식사 자리)는 홍걸씨와 최씨의 관계에 대해 대책을 논의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대통령 친인척 사정에 밝은 한 여권 인사의 설명이다. “최씨와 홍걸씨 문제는 새 정부 초기부터 문제가 됐다. 이 때문에 청와대 가족모임에서 말이 나올 정도였다. 지난해(2001년)에도 두 사람 얘기가 나돌아 가족모임에서 ‘홍걸씨의 귀국을 자제시키고 최씨와 만나지 말게 하라’는 결론을 내렸다. 최씨에게도 경고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홍걸씨는 이런 주변의 지적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청와대와 정보기관 내부에서 자신들의 관계나 활동을 악의적으로 보고해 문제가 생긴다는 생각이 강했다는 것. 권력 내부에서도 이런 홍걸씨를 제재할 묘수를 찾지 못했고 최씨의 활동 공간은 점점 확대됐다. 그 과정에 홍걸씨는 알게 모르게 ‘병풍’으로서 역할을 수행한 부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최근 유심히 관찰하는 부분도 이 점이다.
최규선 게이트의 첫번째 의혹 당사자인 홍걸씨와 최씨의 커넥션 흔적은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우선 ‘자금’이 오갔다. 최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98년부터 주택 구입비, 용돈 등 명목으로 9억원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홍걸씨가 최씨 등 제삼자 명의로 상당량의 타이거풀스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최씨는 부인하고 있지만 홍걸씨의 동서 H씨도 자신의 회사 직원 명의로 1만주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사실이 드러났다. 최씨의 차명계좌에서 100억원대 비자금이 발견된 것도 홍걸씨와의 관계에 대한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과연 홍걸씨가 최씨로부터 아무 조건 없이 받기만 했을까 하는 점이다. 최씨는 물론 “조건 없이 도와주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들의 동선(動線) 곳곳에는 권력의 힘이 작용한 흔적들이 엿보이고, 그 정점에 홍걸씨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홍걸씨는 최씨에게 과연 무엇이었을까. 임기 말을 맞은 김대통령은 아들 3형제의 꼬리를 무는 의혹 사건 연루설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도 김대통령만큼이나 조마조마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