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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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팔’ 한인들, 가슴 졸이는 타향살이

테러·포격 잇따라 불안한 나날 … 대부분 생계 접고 예루살렘 피신

  • < 남성준/ 예루살렘 통신원 > darom21@hanmail.net

    입력2004-11-01 15: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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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를 찢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폭탄테러 소식을 알리는 긴급 뉴스 속보, 하룻밤 지나고 나면 외신을 보고 숨넘어갈 듯이 안부전화를 걸어오는 한국의 가족들….’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요즘 매일같이 이런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 끝없는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한인들의 두려움도 점점 커져가고 있다.

    이스라엘에 상주하는 한인 수는 400여명으로 추산된다. 그중 대부분은 예루살렘에 거주한다. 유학생과 선교사 가정이 가장 많고 그 밖에는 여행업 종사자, 공관 및 상사 직원들로 구성된다. 다른 외국의 한인 규모보다는 작지만 이스라엘의 인구 규모(600만)에 비하면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예루살렘의 경우 250여명의 한인이 거주하고 있는데 도시가 작아 자동차로 30분 이내에 모든 지역을 돌아볼 수 있다. 따라서 폭탄테러 등의 사고 소식도 뉴스를 통해 아는 것이 아니라, 요란한 구급차 사이렌 소리, 강력한 폭발음을 듣고 안다. 예루살렘에서 발생하는 폭탄테러의 대부분은 시내 중심가인 야포거리를 중심으로 반경 500m 이내에서 일어난다.

    이렇게 위험한데도 이 지역에 가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이스라엘 내무부, 시청, 중앙우체국, 재래시장 등이 이곳에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한인들의 경우 비자 발급, 시세(市稅) 납부, 생필품 구입 등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야포거리를 방문해야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 이번 사태와 관련해 한인들의 인명 피해는 없다. 그러나 폭발 당시 현장에서 불과 몇 m 이내에 있었거나, 몇 분 차이로 그 지역을 지나갔던 아찔한 경우는 여러 차례 있었다.

    예루살렘에 19년째 거주하는 이정복 목사(57)는 1차 인티파다(1987~1992 ·반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무장봉기) 때와 비교하여 “그때는 버스나 관광객을 향해 돌을 던지는 수준이었고 사건 발생 장소도 웨스트뱅크(서안) 지역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외부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위협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안전지대가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지난해 9월 ‘프렌치 힐’에 거주하는 이 목사의 집 바로 앞에 있는 슈퍼마켓 주차장에서 하룻밤 사이에 세 건의 차량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예루살렘 북동쪽에 자리한 ‘프렌치 힐’ 은 한인들 사이에서 예루살렘의 코리아타운이라고 불리는 ‘피스갓 제에브’와 함께 가장 많은 한인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사고가 발생한 슈퍼마켓은 이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한인들이 늘 이용하는 단골 상점이었다.

    재(在)이스라엘한인회(회장 정현호· 43·목사)는 이스라엘 주재 한국대사관과 적극 협조해 홈페이지(www.kr`-`il.net)와 이메일을 통해 수시로 대사관과 한인회 공지 사항들을 알리고 비상연락망을 조직해 한인들의 안전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대사관측에서는 유사시에 대비해 한인들에게 지급할 방독면을 비치하고 있으며, 본국에 이스라엘 지역 여행 자제 요청을 하는 한편, 각종 채널을 통해 수시로 현지 상황을 알리고 있다.

    웨스트뱅크 내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경우는 위험과 피해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이들은 테러가 아닌 이스라엘군에 의한 총격과 폭격으로 직접 피해를 당하고 있다. 베들레헴에서 10년째 생활하고 있는 강태윤 선교사(44)와 그의 가족은 현재 예루살렘으로 피신중이다. 강선교사는 7년 전부터 베들레헴에 한국문화원을 겸한 유치원을 운영하며 선교센터로 활용하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폭격 여파로 강선교사의 집은 거실 유리창이 박살나고 지붕 위 태양열 보일러판이 파손되었다. 집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관공서와 인접한 지역에 있어 이스라엘군의 직접 공격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집이 예수탄생교회 주변에 있어 상대적으로 안전한 유치원으로 피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군의 폭격이 주로 밤에 이루어져 강선교사 가족은 낮에는 집, 밤에는 유치원을 오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무장 요원들이 예수탄생교회로 숨어든 뒤 이 지역에도 공격이 이루어져 더 이상 안전하지 않자 예루살렘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열한 살과 세 살 된 두 아이를 볼 때 가장으로서 한계를 느낍니다. 마찬가지로 이번 사태로 가장 염려 되는 것은 팔레스타인의 아이들입니다.” 강선교사가 유치원을 운영하게 된 계기는 이 아이들이 평화의 지도자로 성장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도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게 강선교사의 소망이다.

    이철수 목사(45)가 거주하는 나블루스도 밤마다 폭격이 계속되고 단전·단수되었다. 창문을 열기만 해도 총알이 날아오는 상황이다. 이목사는 두 달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초청을 받아 가나안 농군학교 설립을 목적으로 이곳에 왔다. 당초에는 가족과 함께 정착할 계획이었지만 사태가 심각해 일단 혼자 와 있다. 1년 정도를 준비기간으로 삼아 언어를 익히고, 농군학교 설립에 관련한 법적 절차를 마무리하려 했던 당초 계획은 답보 상태다. 집도 마련하지 못한 채 임시 숙소에 머물면서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라말라에 거주하는 백현중씨(37) 가족도 현재 예루살렘으로 피신해 있다. 이스라엘에 3년째 거주하고 있는 백씨는 한국에서의 오랜 자동차 회사 근무경력을 바탕으로 자동차 정비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오슬로 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 독립국가가 곧 창설될 것으로 예상하고 국가가 설립되면 자동차 관련 부문에 많은 수요가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사업체를 낸 계기였다.

    “단순히 이익 차원뿐 아니라 기술력이 뒤떨어진 팔레스타인에 한국의 선진 기술을 교육한다는 자부심도 있었다”고 말하는 백씨는 실제로 사업을 시작하기 전 라말라에 있는 자동차 서비스센터에서 60여명의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자동차 정비교육을 실시했다. 그 후 2000년 6월 개인사업을 시작했는데 이번 사태 발생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7명의 현지 직원을 고용해 시작한 회사는 계속된 경기 침체로 현재는 직원이 3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사업장 설비를 현지에 그대로 두고 몸만 빠져나와 한 달째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는 백씨는 “아홉 살, 일곱 살짜리 두 딸이 자다가 놀라 비명을 지르면서 깨어날 때면 내가 왜 한국의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이곳에 와 고생하고 있나 하는 후회가 든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번 사태와 관련해 한국으로 돌아간 한인들은 아직 없다. 현재 학업중이거나 선교의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움직일 수 없다.

    일부 팔레스타인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경우 몇 배나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지만, 대다수 한인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이스라엘 거주 한인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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