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야금야금 소리소문 없이 올라서 오른 줄도 몰라요.” 술값 계산에 예민한 사람들이라면 지난해 7월 이후 술집들의 주류판매 가격이 조금씩 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 병에 3500원 하던 맥주가 3700원으로, 어떤 업소는 매달 100원씩 가격을 올리는 술집도 있다. 몇 천원씩 딱 떨어지던 술값 뒤에 100원 단위의 ‘꼭지 가격’이 붙는 경우가 잦아진 것.
이들 업소는 가격 상승을 눈치챈 손님들에게 “술의 원가가 비싸졌으니 어쩔 수 없다”며 오히려 볼멘소리를 한다. 술의 원가가 비싸졌다는 말은 곧 이들 업소에 공급되는 주류 가격이 인상됐다는 것. 그런데 지난해 7월 이후 국내에서 생산되는 주류 중 공급가가 오른 것은 단 한 종류도 없다. 맥주, 소주, 양주 가릴 것 없이 술의 가격은 국세청이 최초 제조판매가를 정하기 때문에 특정 도매업소가 갑자기 마진을 올린다는 것은 경쟁을 포기하겠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원가가 인상됐다’는 술집들의 이야기는 거짓말일까. “신용카드 수수료 때문에 죽겠는데, 이젠 주류구매 전용카드 수수료까지 우리에게 책임지라니 술값을 올릴 수밖에요.”
술집 업주들은 지난해 7월1일 도입된 주류구매 전용카드제를 술값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한다. 주류구매 전용카드제(이하 전용카드제)란 국세청과 주류도매업중앙회가 주류의 거래 과정을 투명화하고 탈세를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지난해 7월1일 도입한 것으로, 일종의 직불카드제도. 소비자가 직접 술을 살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술거래 결제를 은행의 전용카드로만 하도록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음식점, 술집, 일반 가게 등 소매상들은 주류 도매업체가 거래하는 은행에 계좌를 트고 돈을 입금한 뒤 그 액수에 해당하는 술을 공급받는 것이다. 말이 카드지 현금을 먼저 입금해야 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현금 거래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결제 은행들이 도매업소를 대상으로 0.12~0.14%의 카드 수수료를 거두자 도매업자들은 이를 모두 공급 마진에 포함시켰고, 술집들은 이를 구실로 2%에서 많게는 10% 이상 판매액을 올렸다. 유통과정 투명화에 따른 부담이 소비자에게 모두 전가되고 있는 셈이다.
“수수료는 0.14%에 불과하지만 주류 매입이 많은 곳은 무시할 수 없는 돈이죠. 게다가 예전에는 모두 외상으로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니 부담이 클 수밖에 없지요.” 서울시 종로구에서 호프집을 경영하는 이돈희씨(34)는 술값 상승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씨는 “카드만 만들어놓고 아직 전표 처리하는 집이 부지기수인데 손님들에게 욕먹을 각오 하고 술값을 올린 게 무슨 잘못이냐”고 항변한다.
1월16일 서울시 서대문구의 A카페. 주인 김모씨는 주류구매 전용카드를 아예 가지고 있지 않았다. “주류구매 카드를 이용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도매업자에게 줘버렸다”고 답한다. “카드 없이 어떻게 주류를 살 수 있느냐”고 다시 묻자 김씨는 “예전처럼 외상 거래가 안 되면 도매상을 바꾸겠다고 말했더니 전용카드를 주면 자신들이 다 알아서 해주겠다고 했다. 술 매입량을 술집 매출에 맞춰 과세점 아래로 해달라고 하면 그렇게 해준다”고 털어놓았다.
인근 B주점의 업주 최모씨도 “보통 한 주점에서 술 종류별로 2, 3개 도매상에서 술을 받는데 그중 한 도매상만 전용카드로 거래하고 나머지 1, 2개 도매상은 그대로 외상 거래를 하고 있다. 넓은 보관창고를 가진 업소가 아니면 매일 주류를 구입해야 하는데 언제 통장에 돈을 계속 넣어두냐”고 호소한다.
이들 업소가 전용카드 사용을 기피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또 있다. 전용카드 결제 금융기관이 서울지역의 경우 조흥은행과 농협으로 제한돼 있어 이들 기관의 점포가 가까이 있지 않은 업주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 지방은 사정이 더욱 심각해 아예 결제은행이 지방은행 한 곳으로 한정돼 있다. “가까운 지점에서 계좌이체를 하려면 또 송금수수료를 내야 하는데 결제 금융기관을 왜 한두 개로 제한했는지 알 수 없다. 술집 업주들은 결제은행을 한정한 조치에 대해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못한다. 이에 대해 전용카드 결제은행을 선정한 전국종합주류도매업중앙회측은 “각 은행들에 결제은행에 참여하도록 요구했지만 수수료율이 맞지 않는다며 포기해서 그렇지 선정 과정에서 의혹을 살 만한 일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작은 업소들이 아니다. 주류구매 전용카드를 구입하면서 국세청이 주 타깃으로 삼은 곳은 룸살롱과 같은 대형 유흥주점들. 그동안 무자료 주류거래와 탈세의 온상으로 지목된 이들 유흥주점에게 국세청은 “전용카드제를 도입하면 거래가 투명해지고, 매출이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며 매출액의 20%나 하던 특별소비세를 올해부터 10%로 하향 조정했다. 이를 두고 국회에서 특소세 인하 특혜 논란까지 일었다. 그러나 국세청의 이런 주장은 실효를 거두지 못한 채 말 그대로 ‘주장’만으로 끝나버렸다.
“신용카드 매출도 분산시키는데 전용카드로 나오는 술 매입을 분산시키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죠. 주변에 작은 술집들 많잖아요. ‘나카마’가 모두 사라진 것도 아니고….” 서울 강남지역의 한 룸살롱 업주 이모씨(38)는 전용카드제가 실시된 후 각 유흥주점들이 매입액 분산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김씨가 말하는 주류 매입금액 분산 방법은 쉽고도 간단하다.
“각 업소마다 신용카드 결제액을 뿌리는 위장 카드 가맹업소를 5, 6군데 가지고 있는데, 그 가게 명의로 전용카드를 만들고 술을 매입하면 세무서에서 알 리가 없다. 그게 여의치 못하면 친분이 있는 카페 명의로 술을 사고, 감사의 표시를 하면 된다.”(이씨)
그렇다면 김씨가 말하는 ‘나카마’란 또 무엇일까. 나카마란 주류업계의 속어로 할증된 가격에 거래되는 무자료 술을 가리키는 말. 주류 전용카드 도입 이후에도 나카마가 전혀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게 유흥업계의 중론이다. 서울 중구 북창동 S룸싸롱의 김모 전무는 “전용카드 수수료를 대신 내주는 것보다 돈 좀 더 주고 무자료 술을 구입하는 게 훨씬 이득이다. 매입액 노출도 막고, 수수료 부담도 없으니 누가 전용카드로 술을 구입하겠느냐”고 실토한다.
결국 주류구매 전용카드제는 탈세를 막고 주류 유통의 투명화를 이루겠다는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해진 채 주류의 최종 소비자인 국민의 돈으로 카드결제 은행 수수료만 올려주는 꼴이 돼버렸다.
평소 세무관서에 대해 ‘고양이 앞에 쥐’ 격인 주류 판매업소들이 전용카드제를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배짱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전국종합주류도매업중앙회 이재선 전무이사는 “주류 전용카드제를 어겨도 세무조사를 제외하고는 처벌수단이 없는 것이 문제다. 이 때문에 보완책을 마련중이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어 고민이 많다”고 말한다. 반면 국세청 소비세과 관계자의 한 관계자는 “전용카드제는 주류 도매업체의 자율적 참여로 결정된 것이고 우리는 다만 행정지도를 통해 참여를 유도할 뿐”이라며 주류 전용카드제의 부작용에 대한 비판을 일축했다.
“주류업계가 하는 일 중 국세청의 허락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제도가 뜻대로 안 되니까 애꿎은 도매업체에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것이죠.” 주류업자들의 이런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국세청은 주류구매 전용카드제 참여율이 90~95%에 이른다며 주류 전용카드제가 정착 단계에 들어섰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이들 업소는 가격 상승을 눈치챈 손님들에게 “술의 원가가 비싸졌으니 어쩔 수 없다”며 오히려 볼멘소리를 한다. 술의 원가가 비싸졌다는 말은 곧 이들 업소에 공급되는 주류 가격이 인상됐다는 것. 그런데 지난해 7월 이후 국내에서 생산되는 주류 중 공급가가 오른 것은 단 한 종류도 없다. 맥주, 소주, 양주 가릴 것 없이 술의 가격은 국세청이 최초 제조판매가를 정하기 때문에 특정 도매업소가 갑자기 마진을 올린다는 것은 경쟁을 포기하겠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원가가 인상됐다’는 술집들의 이야기는 거짓말일까. “신용카드 수수료 때문에 죽겠는데, 이젠 주류구매 전용카드 수수료까지 우리에게 책임지라니 술값을 올릴 수밖에요.”
술집 업주들은 지난해 7월1일 도입된 주류구매 전용카드제를 술값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한다. 주류구매 전용카드제(이하 전용카드제)란 국세청과 주류도매업중앙회가 주류의 거래 과정을 투명화하고 탈세를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지난해 7월1일 도입한 것으로, 일종의 직불카드제도. 소비자가 직접 술을 살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술거래 결제를 은행의 전용카드로만 하도록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음식점, 술집, 일반 가게 등 소매상들은 주류 도매업체가 거래하는 은행에 계좌를 트고 돈을 입금한 뒤 그 액수에 해당하는 술을 공급받는 것이다. 말이 카드지 현금을 먼저 입금해야 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현금 거래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결제 은행들이 도매업소를 대상으로 0.12~0.14%의 카드 수수료를 거두자 도매업자들은 이를 모두 공급 마진에 포함시켰고, 술집들은 이를 구실로 2%에서 많게는 10% 이상 판매액을 올렸다. 유통과정 투명화에 따른 부담이 소비자에게 모두 전가되고 있는 셈이다.
“수수료는 0.14%에 불과하지만 주류 매입이 많은 곳은 무시할 수 없는 돈이죠. 게다가 예전에는 모두 외상으로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니 부담이 클 수밖에 없지요.” 서울시 종로구에서 호프집을 경영하는 이돈희씨(34)는 술값 상승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씨는 “카드만 만들어놓고 아직 전표 처리하는 집이 부지기수인데 손님들에게 욕먹을 각오 하고 술값을 올린 게 무슨 잘못이냐”고 항변한다.
1월16일 서울시 서대문구의 A카페. 주인 김모씨는 주류구매 전용카드를 아예 가지고 있지 않았다. “주류구매 카드를 이용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도매업자에게 줘버렸다”고 답한다. “카드 없이 어떻게 주류를 살 수 있느냐”고 다시 묻자 김씨는 “예전처럼 외상 거래가 안 되면 도매상을 바꾸겠다고 말했더니 전용카드를 주면 자신들이 다 알아서 해주겠다고 했다. 술 매입량을 술집 매출에 맞춰 과세점 아래로 해달라고 하면 그렇게 해준다”고 털어놓았다.
인근 B주점의 업주 최모씨도 “보통 한 주점에서 술 종류별로 2, 3개 도매상에서 술을 받는데 그중 한 도매상만 전용카드로 거래하고 나머지 1, 2개 도매상은 그대로 외상 거래를 하고 있다. 넓은 보관창고를 가진 업소가 아니면 매일 주류를 구입해야 하는데 언제 통장에 돈을 계속 넣어두냐”고 호소한다.
이들 업소가 전용카드 사용을 기피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또 있다. 전용카드 결제 금융기관이 서울지역의 경우 조흥은행과 농협으로 제한돼 있어 이들 기관의 점포가 가까이 있지 않은 업주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 지방은 사정이 더욱 심각해 아예 결제은행이 지방은행 한 곳으로 한정돼 있다. “가까운 지점에서 계좌이체를 하려면 또 송금수수료를 내야 하는데 결제 금융기관을 왜 한두 개로 제한했는지 알 수 없다. 술집 업주들은 결제은행을 한정한 조치에 대해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못한다. 이에 대해 전용카드 결제은행을 선정한 전국종합주류도매업중앙회측은 “각 은행들에 결제은행에 참여하도록 요구했지만 수수료율이 맞지 않는다며 포기해서 그렇지 선정 과정에서 의혹을 살 만한 일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작은 업소들이 아니다. 주류구매 전용카드를 구입하면서 국세청이 주 타깃으로 삼은 곳은 룸살롱과 같은 대형 유흥주점들. 그동안 무자료 주류거래와 탈세의 온상으로 지목된 이들 유흥주점에게 국세청은 “전용카드제를 도입하면 거래가 투명해지고, 매출이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며 매출액의 20%나 하던 특별소비세를 올해부터 10%로 하향 조정했다. 이를 두고 국회에서 특소세 인하 특혜 논란까지 일었다. 그러나 국세청의 이런 주장은 실효를 거두지 못한 채 말 그대로 ‘주장’만으로 끝나버렸다.
“신용카드 매출도 분산시키는데 전용카드로 나오는 술 매입을 분산시키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죠. 주변에 작은 술집들 많잖아요. ‘나카마’가 모두 사라진 것도 아니고….” 서울 강남지역의 한 룸살롱 업주 이모씨(38)는 전용카드제가 실시된 후 각 유흥주점들이 매입액 분산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김씨가 말하는 주류 매입금액 분산 방법은 쉽고도 간단하다.
“각 업소마다 신용카드 결제액을 뿌리는 위장 카드 가맹업소를 5, 6군데 가지고 있는데, 그 가게 명의로 전용카드를 만들고 술을 매입하면 세무서에서 알 리가 없다. 그게 여의치 못하면 친분이 있는 카페 명의로 술을 사고, 감사의 표시를 하면 된다.”(이씨)
그렇다면 김씨가 말하는 ‘나카마’란 또 무엇일까. 나카마란 주류업계의 속어로 할증된 가격에 거래되는 무자료 술을 가리키는 말. 주류 전용카드 도입 이후에도 나카마가 전혀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게 유흥업계의 중론이다. 서울 중구 북창동 S룸싸롱의 김모 전무는 “전용카드 수수료를 대신 내주는 것보다 돈 좀 더 주고 무자료 술을 구입하는 게 훨씬 이득이다. 매입액 노출도 막고, 수수료 부담도 없으니 누가 전용카드로 술을 구입하겠느냐”고 실토한다.
결국 주류구매 전용카드제는 탈세를 막고 주류 유통의 투명화를 이루겠다는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해진 채 주류의 최종 소비자인 국민의 돈으로 카드결제 은행 수수료만 올려주는 꼴이 돼버렸다.
평소 세무관서에 대해 ‘고양이 앞에 쥐’ 격인 주류 판매업소들이 전용카드제를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배짱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전국종합주류도매업중앙회 이재선 전무이사는 “주류 전용카드제를 어겨도 세무조사를 제외하고는 처벌수단이 없는 것이 문제다. 이 때문에 보완책을 마련중이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어 고민이 많다”고 말한다. 반면 국세청 소비세과 관계자의 한 관계자는 “전용카드제는 주류 도매업체의 자율적 참여로 결정된 것이고 우리는 다만 행정지도를 통해 참여를 유도할 뿐”이라며 주류 전용카드제의 부작용에 대한 비판을 일축했다.
“주류업계가 하는 일 중 국세청의 허락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제도가 뜻대로 안 되니까 애꿎은 도매업체에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것이죠.” 주류업자들의 이런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국세청은 주류구매 전용카드제 참여율이 90~95%에 이른다며 주류 전용카드제가 정착 단계에 들어섰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