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천민 ‘달리트’ 1000년의 차별 설움](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4/11/10/200411100500003_1.jpg)
얼마 전 인도의 민영 뉴스 채널인 ‘스타뉴스’는 인도 중부 지방인 안드라 프라데시주(州) 마부브나가르 지역의 찻집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카스트 차별 실태를 보도했다. 내용인즉, 이 지역 찻집들이 찻잔의 종류를 두 가지로 구분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일반인용, 또 하나는 과거 카스트 제도 아래에서 ‘불가촉 천민’이라 불리던 ‘달리트’용이다. 달리트들은 일반인과 구분되는 찻잔을 사용해야 함은 물론, 자신이 사용한 찻잔도 스스로 씻어야만 한다. 이러한 극단적 차별행위는 한두 군데가 아니라 마부브나가르 안의 모든 호텔과 찻집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이중 찻잔제’로 인한 소송은 현재 16건에 이른다. 이 소송들은 대부분 의식 있는 지식층 달리트나 달리트 인권운동 단체가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수천년 동안 굳어진 관습 때문인지 시민들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마부브나가르 주민인 망게시 나익씨는 “달리트들과 같은 찻잔을 사용해야 한다면 아무도 차를 마시지 않을 것이다”고 잘라 말했다.
찻집들도 소송을 피하기 위해 일회용 찻잔을 이용하는 추세다. 환경보호에 역행하는 행위라는 비난도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 1, 2루피(우리 돈으로 30~60원)에 불과하던 ‘길거리표’ 찻값이 15원 인상되었다. 그러나 찻집 주인들은 찻잔을 구별 없이 사용할 경우 손님이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사실 두 종류의 찻잔을 사용하는 찻집은 마부브나가르뿐 아니라 인도 전역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인도 천민 ‘달리트’ 1000년의 차별 설움](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4/11/10/200411100500003_2.jpg)
20세기 들어서면서 불가촉 천민들의 인권 운동과 카스트 철폐 운동이 시작되었다. 1948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며 제정한 헌법은 카스트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불가촉 천민 차별과 잔혹행위 금지법’이라는 특별법도 따로 제정되었다. 현재 인도 정부는 약 9000만에 달하는 인구를 ‘지정 카스트’로 묶어 특별 관리하고 있다. 또 하층 카스트 출신자들에 대한 교육과 직업할당제에 힘입어 이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도 지역에 따라서는 몰라보게 높아졌다. 의원직에도 할당제가 마련되어 있어 달리트들의 정치 참여 역시 어느 정도는 보장되어 있는 상태다.
이 같은 법률적 조치들은 모두 인도 헌법의 아버지인 암베드카르(B. R. Ambedkar) 박사에 의해 마련된 것이다. 그 자신이 불가촉 천민 출신인 암베드카르 박사는 달리트 인권 투쟁과 활발한 정치 참여로 ‘달리트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사후 4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인도 달리트 운동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마부브나가르의 찻잔 사건에서 보듯 법적 규제와 실제 생활에서 자행되는 차별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불가촉 천민제는 1000년 이상 지속된 뿌리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대다수 인도인이 신봉하는 힌두교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힌두교는 공식적으로 더 이상 불가촉 천민 차별제를 지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저들과 접촉하면 나도 불결해진다’는 인도인의 의식 속에 깊이 자리잡은 관념은 아직도 이들이 정(淨)-부정(不淨) 개념과 이에 따른 종교적 정화(淨化) 의례를 고도로 발전시켰던 과거의 믿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도 천민 ‘달리트’ 1000년의 차별 설움](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4/11/10/200411100500003_3.jpg)
얼마 전 개봉된 한 달리트 여성에 대한 집단 강간 사건을 그린 영화는 이러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실례였다. 보복성 집단 강간을 당하고서도 어이없게 재판에서 패소한 영화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영화 개봉 후 일어난 사건도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 영화가 개봉된 후 실제 사건의 주인공인 피해여성과 그 가족은 자기 마을에서 철저히 ‘왕따’당했다. 대학에 다니던 아들은 학교 친구들의 비웃음과 협박을 견디다 못해 학교를 그만두고 말았다.
많은 인권단체와 달리트 운동 단체들은 꾸준한 교육과 캠페인으로 달리트들을 자각시키는 한편, UN이나 국제 인권위원회 등을 통해 국제사회의 시선을 모으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인도 정부 역시 모든 국민에게 부여된 평등권을 보장하기 위해 부심하는 중이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도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한 수많은 불평등 사례를 살펴보면 달리트들이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는 날은 참으로 요원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