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겨야 어머니가 먹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위가 최소한의 운동으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양만큼 먹었다. 위가 느리게 소화할 수 있게 거의 씹지 않고 목구멍으로 넘겼다. 오늘따라 자장면은 목구멍을 타고 잘도 미끄러져 내려갔다. ‘딱 한 젓가락만 더 먹고 남기자. 딱 한 젓가락만 더 먹고….’ 뱃속은 자꾸만 집어넣으라고 유혹했고, 양심은 어머니를 생각해야 된다고 꾸짖었다.”(‘둥지’에서)
자장면 한 그릇을 놓고 관석이를 끊임없이 망설이게 만든 것은 가난이었다. 1997년 11월 아버지의 사업부도로 중학교 2학년이던 관석이는 갑자기 어른이 되었다. ‘둥지’는 지난 4년 동안 관석이와 누나 민영이, 어머니 세 식구가 살아온 기록이다.
사실 관석이네처럼 사업실패로 풍비박산한 집이 한둘인가. 그러나 한때 자살을 생각했던 열아홉 소년이 “사람의 인생은 모두 가치가 있다”고 말할 때 그 이야기에 귀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둥지’는 열넷에서 열아홉까지 가장 예민한 시기를 관통한 집안의 몰락과 관석이의 성장과정을 담고 있다. 그것은 이 책의 추천사를 쓰면서 김진경 시인이 던진 ‘사람은 무엇으로 크는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97년 어느 날 아버지가 외국으로 간다며 사라졌다. 두 달 후 새벽 6시가 조금 지난 시간 쾅쾅쾅 대문 두드리는 소리에 관석이는 잠을 깼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집 안으로 들어온 아저씨들이 옷과 가재도구를 실어내가기 시작했다. 사업이 망하자 아버지는 가족에게 집이라도 남겨주려고 먼 친척 이름으로 명의를 변경해 놓았는데 이 친척이 소송을 걸어 집을 빼앗아버렸다. 집에서 나올 때 어머니의 지갑에는 달랑 7만원뿐이었고 그 돈으로 당장 세 식구가 살 방부터 구해야 했다. 관석이네가 망하자 이웃은 물론 친척들조차 외면했다. 이미 꿔준 돈을 못 받았거나 새로 꿔달라고 할까봐 그들은 아예 접촉을 끊었다.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사채를 빌렸고 한 달 새 100만원이 500만원으로 불어 있었다.
그 후 관석이네 셋방에는 새벽에는 아버지 회사 채권자들이 찾아오고, 아침과 저녁에는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 밤에는 옛 동네 아줌마들이 찾아와 “숨겨놓은 돈 내놓으라”고 을러댔다. 어머니는 살기 위해 뭔가를 계속했지만 빚쟁이들의 독촉에 계속하지 못했다. 빚쟁이들은 남매의 학교까지 찾아왔고 심지어 납치까지 했다.
그럴수록 남매는 공부에 몰두했다. 관석이는 하루 용돈 1000원 중 매일 250원씩 모아 헌책방에서 문제집을 샀다. 누나 민영이는 이화외고 2학년 2학기 때 전교 수석을 했다. 하지만 누나의 수능시험 전날까지도 집은 빚을 독촉하는 사람들로 소란스러웠고, 시험 당일에는 관석이네 가족이 몰래 도망갈까봐 집 밖에 지키고 섰던 사채업자의 차를 얻어 타고 시험장을 향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때도 흔들리지 않던 민영은 대학으로 사채업자가 찾아와 멱살을 잡고 흔들며 얼굴에 침을 뱉었을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동생 앞에서 울었다.
2002년 1월 관석이, 민영이 남매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여전히 단칸 셋방에서 책상 하나를 번갈아 사용하고, 그들이 만져보지도 못한 돈을 재촉받으며 살아간다. 연세대 법대에 합격한 민영은 세 군데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벌고 동생 용돈까지 쥐어준다. 자신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졸업 때까지 학비 걱정은 안 하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관석이도 지난해 수능시험을 보고 세 군데 대학의 경영학과에 원서를 넣었다. 상황은 별로 나아진 게 없지만 그들은 웃으면서 살아간다. 생각을 바꾼 덕분이다. “나는 한발 앞서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즐기기로 했다. 나는 인생이란 연극의 주인공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제정신을 갖고 살아나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사람은 무엇으로 크는가’에 대해 김진경 시인은 ‘가슴속에 숨어 있는 자주성’이라 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은 좋은 환경에서만 훌륭하게 자라는 것도 아니고, 좋은 것만 본다고 해서 훌륭하게 자라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은 때로 극악한 상황 속에서도 놀랍게 건강한 모습으로 자란다.” ‘둥지’는 아버지가 읽고 자식에게 권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둥지/ 최관석 지음/ 북하우스 펴냄/ 277쪽/ 8000원
자장면 한 그릇을 놓고 관석이를 끊임없이 망설이게 만든 것은 가난이었다. 1997년 11월 아버지의 사업부도로 중학교 2학년이던 관석이는 갑자기 어른이 되었다. ‘둥지’는 지난 4년 동안 관석이와 누나 민영이, 어머니 세 식구가 살아온 기록이다.
사실 관석이네처럼 사업실패로 풍비박산한 집이 한둘인가. 그러나 한때 자살을 생각했던 열아홉 소년이 “사람의 인생은 모두 가치가 있다”고 말할 때 그 이야기에 귀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둥지’는 열넷에서 열아홉까지 가장 예민한 시기를 관통한 집안의 몰락과 관석이의 성장과정을 담고 있다. 그것은 이 책의 추천사를 쓰면서 김진경 시인이 던진 ‘사람은 무엇으로 크는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97년 어느 날 아버지가 외국으로 간다며 사라졌다. 두 달 후 새벽 6시가 조금 지난 시간 쾅쾅쾅 대문 두드리는 소리에 관석이는 잠을 깼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집 안으로 들어온 아저씨들이 옷과 가재도구를 실어내가기 시작했다. 사업이 망하자 아버지는 가족에게 집이라도 남겨주려고 먼 친척 이름으로 명의를 변경해 놓았는데 이 친척이 소송을 걸어 집을 빼앗아버렸다. 집에서 나올 때 어머니의 지갑에는 달랑 7만원뿐이었고 그 돈으로 당장 세 식구가 살 방부터 구해야 했다. 관석이네가 망하자 이웃은 물론 친척들조차 외면했다. 이미 꿔준 돈을 못 받았거나 새로 꿔달라고 할까봐 그들은 아예 접촉을 끊었다.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사채를 빌렸고 한 달 새 100만원이 500만원으로 불어 있었다.
그 후 관석이네 셋방에는 새벽에는 아버지 회사 채권자들이 찾아오고, 아침과 저녁에는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 밤에는 옛 동네 아줌마들이 찾아와 “숨겨놓은 돈 내놓으라”고 을러댔다. 어머니는 살기 위해 뭔가를 계속했지만 빚쟁이들의 독촉에 계속하지 못했다. 빚쟁이들은 남매의 학교까지 찾아왔고 심지어 납치까지 했다.
그럴수록 남매는 공부에 몰두했다. 관석이는 하루 용돈 1000원 중 매일 250원씩 모아 헌책방에서 문제집을 샀다. 누나 민영이는 이화외고 2학년 2학기 때 전교 수석을 했다. 하지만 누나의 수능시험 전날까지도 집은 빚을 독촉하는 사람들로 소란스러웠고, 시험 당일에는 관석이네 가족이 몰래 도망갈까봐 집 밖에 지키고 섰던 사채업자의 차를 얻어 타고 시험장을 향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때도 흔들리지 않던 민영은 대학으로 사채업자가 찾아와 멱살을 잡고 흔들며 얼굴에 침을 뱉었을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동생 앞에서 울었다.
2002년 1월 관석이, 민영이 남매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여전히 단칸 셋방에서 책상 하나를 번갈아 사용하고, 그들이 만져보지도 못한 돈을 재촉받으며 살아간다. 연세대 법대에 합격한 민영은 세 군데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벌고 동생 용돈까지 쥐어준다. 자신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졸업 때까지 학비 걱정은 안 하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관석이도 지난해 수능시험을 보고 세 군데 대학의 경영학과에 원서를 넣었다. 상황은 별로 나아진 게 없지만 그들은 웃으면서 살아간다. 생각을 바꾼 덕분이다. “나는 한발 앞서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즐기기로 했다. 나는 인생이란 연극의 주인공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제정신을 갖고 살아나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사람은 무엇으로 크는가’에 대해 김진경 시인은 ‘가슴속에 숨어 있는 자주성’이라 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은 좋은 환경에서만 훌륭하게 자라는 것도 아니고, 좋은 것만 본다고 해서 훌륭하게 자라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은 때로 극악한 상황 속에서도 놀랍게 건강한 모습으로 자란다.” ‘둥지’는 아버지가 읽고 자식에게 권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둥지/ 최관석 지음/ 북하우스 펴냄/ 277쪽/ 8000원